문득 글을 쓰고 싶은 밤이 있다.
아무런 이유없이 감성적이 되어서 글을 써재껴야만 할 것 같은 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서울을 도망치듯 나왔다.
마치 졸업과 함께 나란 존재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나는 모든 짐을 집으로 보낸 채 간단한 옷차림으로 그렇게 서울을, 대학로를 도망쳐버렸다. 집에 틀어박히고,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고향에 있는 친구에게도, 그리고 서울에 있는 지인들에게도. 특히나 도망치던 날 자꾸만 떠오르던 너조차도.
어느 날 너에게 문자가 한 통 왔다.
오빠 잘 지내요? 라고.
너는 늘 그런 아이였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걸 믿는 나이기에, 늘 나는 헤어짐으로부터 도망치곤 했다. 헤어짐이 싫어서 잠수를 타는 일이 있었다. 이런 나에게 가끔씩 오는 문자는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저 스쳐 지났던 선배로 기억하면 될 나조차도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바로 너였다.
하지만 너에게 남자친구가 생기고 난 후로 너의 그 안부는 다른 의미가 되어 버렸다.
남자친구와 싸우고 난 후, 혹은 무슨 일이 있을 때, 간단하게 다독여주면서 상담해줄 사람이 필요할 때 하는 첫 한 마디로.
그래도 그 첫 마디가, 나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나를 이렇게라도 찾아주는 이가 있구나 하는 마음에 위로가 되곤 했었다.
잘 지내고 있지. 넌 어때?
라는 나의 답장에 너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역시나 너의 첫 한 마디는 상담을 들어가기에 앞서 목차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너에게 어느 날 또 문자가 왔다.
오빠 잘 지내요? 라고.
너는 내가 어딨는지 묻지 않았다. 서울에 있을 때, 한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던 문자는, 내가 자취를 감춘 뒤로 2주, 1주 간격으로 짧아졌다.
나는 내 존재를 감추고 싶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헤어짐이라는 것이 싫었고, 못난 나 자신을 세상에 보이기 싫었다.
그런 나를 너의 문자는 자꾸만 세상에 돌아오라는 듯 나를 끄집었다.
어느 날 전화를 했다.
서울이야. 너 보고 싶어서 연락했어. 한 번 볼까?
너는 반갑게 응했고, 우리는 다시 그 때 그 시절처럼 대학로에서 만나게 되었다.
우린 오랜 선후배 관계처럼 평소대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나는 그 아이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 아이는 문자에 관해 나에게 어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문자에 대해 어떤 한 마디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과거로 돌아간듯, 학창시절로 시작된 이야기는 학창시절로 마무리 지었다.
너는 또 보자고 말했지만, 이것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여전히 서울에서 사라진 나를 향해 문자를 보낸다.
오빠 잘 지내요? 하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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