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떠오르는

사회는 가난한 자에게 가난할 것을 강요하곤 했다.

어둠속검은고양이 2018. 3. 24. 14:29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것. 

정확히 말해, 돈 벌 능력이 없다는 것은 죽은 목숨과도 같다. 씁쓸하게도.

우리는 돈 벌 능력을 키우도록 끝없이 노력해야 하고, 자본가에 선택을 받기 위해 우리 자신을 포장해야만 한다. 뽑기에 들어 있는 무수한 상품처럼. 오로지 능력과 경쟁으로만 결정되어지는 우리의 삶 속에서 돈 벌 능력이 없는 이들은 도태되고 죽어간다. 

유사한 이유로, 가난한 자는 부의 재생산 수단이 없다는 의미이기에 무능력자로서 도태될 것이라는 낙인을 받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난에 대해서 부정해야 할 것으로 보고, 가난한 자에겐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지 모른다. 나는 저 도태되는 무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알량한 안도감을 내비치면서....


하지만 이러한 시선은 가난한 이들에게 가난하기를 강요한다.

가난은 창피한 것이자, 부정해야 할 대상이며, 가난한 자는 실패자의 아이콘이자, 약자로서 남아 있어야만 한다. 함부로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줘선 안되고, 절약하는 모습, 돈에 목매이는 모습, 돈을 두려워하는 모습 등 약자로서 보일 수 있는 면모만을 보여야만 한다.

가난하다고 좋은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다고 욕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여느 타인과 다르지 않게, 좋은 브랜드 입고 싶고, 비싼 음식을 먹고 싶다. 남들처럼 소소한 취미 생활도 가지고 싶고, 기본적인 문화생활, 여행도 즐기고 싶다. 허나, 사회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가난한 이들에게 가난한 이미지를 강요한다. '가난한 주제에 사치부린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여 '그럴 돈은 있나봐?'하는 가시 돋힌 말을 내뱉는다.

우리는 돈 벌 능력이 있고, 돈을 벌기에, 최소한 그들보다 낫다는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운다. 나의 세금이 감히 '돈 벌 능력도 없는 가난한 이들이 나보다 더 좋은 의식주로 지원되는 것'을 눈 뜨고 못 보는 것이다. 그들의 의식주는 항상 나보다 밑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가난에 대한 어느 한 신문기사를 보고 떠올린 생각이다.




p.s 자본주의의 무서운 점은 모든 것들이 '돈으로 환산되어 버린다는 것'에 있다.

돈이 되지 않는 것, 돈이 되지 않는 능력들은 모조리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회주의는 평등과 공공성에 가치를 좀 더 두는 편이니 '돈 벌 능력이 없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버려두진 않는다. 이것이 세상이 좌우날개로 날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약자에 대한 사회적 안정망이 보장되어야 좀 더 과감한 경쟁과 혁신이 일어나는 법이다.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대한민국에서 어느 직업이 가장 선호되는지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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