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일까요.
이틀 전쯤엔 길을 걸었습니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우산을 가지고 나갔지만, 펼치진 않았습니다.
먹구름이 잔뜩 껴서 어두컴컴해진 하늘과는 다르게 비는 가느란 실비였거든요. 걸어가는 길 옆으로는 개나리가 폈고, 하늘엔 까치소리가 들렸습니다. 봄이라기엔 추운 날씨였지만, 풍경만은 봄이었습니다.
4월이네요. 슬슬 벚꽃이 피어날 시기입니다. 남부지방에는 벚꽃이 이미 개화한 곳도 있지요. 그 만개한 꽃들과 바람과 길을 걷는 연인들을 보며 완연한 봄이 왔음을 느끼겠지요. 그리고 비가 한 차례 내린 후 언제 폈었냐는듯이 꽃들은 금새 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 여름이 왔음을 느끼겠지요. 뭔가 한 것도 없는데 벌써 1년의 1/4이 지나갔습니다. 1년이라는 세월은 무척이나 긴 것 같은데, 살아온 시간과 계절은 빠르게 지나친 것 같이 느껴집니다.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내 수명에서 난 얼마나 살아왔고, 앞으로 얼마나 생이 남았을까요. 벌써 1/3은 지나친 듯 합니다.
고등학생 때 어머니께서 사온 허브가 생각났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여행지에서 허브차를 사면서 받아온 작은 허브 화분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잘 자라서 흙더미 채로 옥상에 있던 깨진 고무대야에 옮겨 심었습니다. 가끔씩 물이나 주다 장마가 와서 '죽으면 죽고 말면 말자'라는 마음으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대야를 가득 채울 만큼 잎사귀가 풍성해졌습니다. 그러다 가을에 압사귀가 하나둘 지더니, 겨울엔 말라 비틀어져 버렸습니다. 제대로 관리도 해주지 않았으면서, 막상 죽어버린 모습을 보니 아쉬운 느낌이 들더군요. 그런데 다음해 여름이 되자 잎사귀가 풍성하게 나왔습니다. 뭐 해준 것도 없는데, 지들이 알아서 자라나는 모습들이 신기해서 허브를 빤히 쳐다보곤 했습니다.
삶이 뭐라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죽을 것 같이 겨울에 웅크리고 있다가 또 다시 피어난 그 모습들이, 어린 식물들이 자라던 그 모습들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와서 문득 치열함을 느낀 것은 아닙니다. 죽은 듯하면서도 씨앗을 땅에 품고서 다시 고개를 내밀었던 그 자그마한 과정들이, 그 사소하지만 한결같음이 삶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분명히 그것은 사소했지만, 강철처럼 단단했습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요, 실존이에요. (0) | 2019.04.12 |
---|---|
amazarashi - さよならごっこ (Play Goodbye) (3) | 2019.04.06 |
눈이 내리지 않은 겨울편지 (2) | 2019.02.14 |
나의 하루 시작은 어느 쪽일지 (0) | 2019.01.26 |
sNoW - night light (0) | 2019.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