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떠오르는

딸기 우유

어둠속검은고양이 2020. 3. 19. 15:55

'어느 새 딸기가 나오는 계절이 왔구나.

생딸기를 우유와 함께 믹서기에 넣으며 생각한다. 분명 이 딸기는 겨울에 재배해서 나온 딸기였으리라.

탐스럽게 생긴 빨간색에 연초록빛 꼭지, 그리고 그 새콤달콤한 맛과 상큼한 분위기까지.
역시 딸기는 봄을 상징하는데 제격이다. 그러나 지난 글에도 썼듯이 딸기의 제철은 사실 초여름이다. 그래도 봄과 여름, 그 모호한 경계점에 존재하는 싱그러움을 생각해보면 딸기의 제철로도 손색이 없다. 그저 이 어여쁜 딸기를 좀 더 빨리 맛보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딸기를 봄으로 봄으로 끌어들였으리라.

과일음료로는 역시 냉동딸기보단 생딸기가 제격이다. 믹서기에서 다 갈린 딸기우유를 내리면서 문득 당신을 떠올린다. 그러나 당신은 딸기가 아니었다. 당신은 내게 있어서 하얀 눈이었다. 당신을 생각하면 하얀 눈이, 또 너를 생각하면 빨간 센쥬가, 또 누군가를 생각하면 솜사탕이. 그렇게 떠오른다. 당신들을 나타내는 그 몇몇 사물들과 거리는 내 추억속에 곂곂이 쌓여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분명히 당신은 딸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딸기를 좋아하던 당신을 보면서, 당신이 딸기와 무척 잘 어울리는 싱그러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건 분명하다.

그래서 이 딸기 우유르 내리며 당신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딸기 우유를 좋아하던 당신에게 이렇게 직접 딸기 우유를 만들어주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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