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도의적 헌혈과 사적 헌혈, 그리고 목적론적 윤리설과 의무론적 윤리설

어둠속검은고양이 2013. 10. 1. 11:05

얼마전에 친구에게 욕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그건 너의 양심이 썩었다는거지.' 라고.

나는 은근히 자기 주장이 강하지만 논쟁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보류하는 식으로 말을 한다. 애초에 싸움으로 번질게끔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태도가 물론 안 좋다는 것은 알지만, 내가 성격이 좀 그렇다. 부딪치는 걸 두려워한다.

어쨌든,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듣게 되었는가 하면 헌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다.

나 같은 경우는 헌혈을 하지만 그것이 어떠한 환자에 대한 헌신이라든지 '아아, 나의 피가 고귀한 희생이 타인에게 도움을!' 이런

마인드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이유는

1. 헌혈하면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2. 헌혈증을 받아서 모아놓으면 나중에라도 쓸 때가 생기지 않을까?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애초에 쓸 일이 없으면 다행이다.)

3. 영화티켓을 받아서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함이다.

4. 개인적으로 30회, 50회 등을 해서 유공장을 받는게 목적이다. 음..약간 개인 업적 세우는 것 정도.(스펙으로 위함은 아니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손해볼 일 업이, 누이 좋고 매부 좋으니까 하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정말 고귀한 희생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을 했다. 소소한(?) 업적을 세우는 재미랄까...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던 친구는 이해를 못하는 것이었다.

물론 가족 중에 아팠었기에 헌혈도 자주했고, 지금도 여전히 한다. 그렇기에 그 친구는 헌혈에 목적이 분명히 있던 셈이었다.

필자는 그리 말했다. 모든 이들이 그런 도의적인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면, 분명히 개인적인 목적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이란 걸.

그러나, 그 목적이 어찌됐든 간에 그들이 헌혈함으로써 더 많은 환자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이라고.

도의적인 목적으로 헌혈된 것만이 깨끗한 피고, 개인적이고, 자기이익 때문에 헌혈한 것은 더러운 피인가?

헌혈함으로써 발생되는 혈소판이나 피에는 그런 가치가 없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피를 구분지을 수도 없고, 그로 인해

더 많은 환자가 살아나는 것은 현실이라 말을 해주었다.

그 친구는 많이 불쾌했나보다. 

이런 말까지는 그렇지만, 예시도 하나 들어주었는데...부적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신문에 났던 것인데....

어떤 보육시설에 보여주기식으로 회장들이 큰 돈을 기부하고 사진을 찍고 돌아갔다. 인터넷에서 많은 이들이 보여주기식 기부를

보고 욕을 했다. 그랬더니 회장들이 보여주기식 기부마저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보육시설장은 그런 네티즌에게 일침을 가했다.

"당신네들은  남들에게 도덕적 잣대를 내밀면서 비난 한 마디씩만 하면 그만이지만, 실제로 당신들은 와서 도움을 준 적 있냐고.

현재 많은 보육시설들이 항상 재정문제에 시달리는데, 그나마 보여주기식으라도 기부를 받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우리들도

알면서 다 받는거라고. 도움을 실제로 주지도 않을거면 손가락질 해서 적게나마 가식적인 도움을 끊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그리 말했다.

물론 보여주기식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분명히 도움 받는 경우는 있다고. 마찬가지라고.

헌혈을 타인에 대한 도움과 희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숭고하게, 대단하게 비출 수 있지만, 그렇다고 순전 자기이익으로

헌혈하는 이들에게 무작정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분명한 건 도움이 되고 있다는 현실이라고.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나에 대해서 합리화, 변명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현실을 보다보면, 세상을 자신의 생각만큼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분법적으로, 이건 선이고, 저건 악이고 그렇게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선과 악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고, 그것은 현실에 섞여서 고스란히 녹아있다. 선이라는 이상과 현실은 괴리감이 크다.

그러나 그 친구는 나의 '도덕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현실'이라는 말에,

'그렇게 느낀다면 네 양심이 썩은 거지.' 라고 답했다.


어떻게 보면, 그 친구가 순진해보이도 하고, 내가 정말로 썩은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말이 결과적으로는 '보여주기식 도덕'을 옹호, 합리화 하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입장을 현실이라는 미명하에

자연스레 조금씩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싶다.....

늘, 여지를 남겨두는 생각과 말 때문에 조금씩 이 주장, 저 주장 다 생각하다보니 그렇다.

신중함이 줏대없음으로 바뀌어 버린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이 자릴 빌어 다시 결정을 분명히 내려보면,

1. 희생과 타인에 대한 도움의 손길은 칭송받을 만한 것이다.(이것도 일종의 사회체제 유지를 위한 길들여진 무의식적 관념아닐까)

2. 보여주기식 도덕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아...여기서 의무론적 윤리설이 나오는군)

3.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여주기식 도덕일지라도 현실에서는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목적론적 윤리설이군)

4. 나의 사고 메카니즘은 의무론적 윤리설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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