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당신의 이름은 뭐에요?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6. 3. 10:55

음...뭐라 불러야 할까요. 당신?
그래요, 당신이라고 부를게요.

'당신'을 지칭할 수 있는 단어가 생긴 기념으로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어요.

"당신의 이름은 뭐에요?"

문득 당신의 이름이 궁금해졌어요.
당신은 무수히 많은 이름으로 불릴 거에요. 당신을 가리킬 수 있는 것들로 말이에요.
예를 들자면, 한국인, 대학생, 24살, 취준생, 갈색빛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안경을 쓴 사람, 걱정이 많은 사람,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과 같이 말이지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당신의 부분만을 가리킬 수 있을 뿐이에요.

그런 까닭에, 당신을 온전히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이름 뿐이에요.

태어나서 걷고, 배우고, 자라온 - 지금까지의 모든 당신들은 당신의 이름 하나에 담겨 있지요.
그래서 당신의 이름이 궁금해졌어요. 비록 이름마저도 당신을 가리키는 하나의 호칭에 지나지 않지만요.
 

사실, 우리 사이에는 이름은 없었어요.
오히려 우리에게 있어, 이름은 피해야할 것들 중 하나였지요. 이름이라는 것은 서로를 더 잘 인식할 수 있게 해주지만, 그만큼 서로를 왜곡되게 만들기 때문이.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았어요. 그것은 서로를 궁금하게 만들었지만, 궁금한만큼이나 서로를 왜곡되지 않게 해주었거든요. 우리의 연결고리는 미약했지만, 그 미약함은 솔직함으로 이루어졌죠.

이제와 생각해보면, 왜곡되지 않게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순수함은 좋은 것 / 왜곡된 것은 나쁜 것'과 같이 이분법적 생각에 갇혀 있는 것 아니었을까요. 세상의 수 많은 텍스트 속엔 왜곡되지 않은 순수함의 추구라는 생각이 담겨 있어요. 왜곡되지 않게 보는 것이 의사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순수하게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추구하게 되지요.

하지만 좀 왜곡되면 어때요.
완전한 이해라는 그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도달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의 삶 그 자체인걸요. 우리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단 한 사람만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함께 살아가는 걸요. 그렇다고 '왜곡되면 어때요' 라는 말이 왜곡된 채로 받아들이며 그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당신은 잘 아실테지요?

이름을 안다는 것은 분명히 우릴 좀 더 멀리 돌아가게 만들테지만, 결국엔 더 가깝게 도달할 수 있게 해 줄 거라 믿어요. 그래서 묻고 싶었어요.

"당신의 이름은 뭐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