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에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에는 눈이 조금 쌓였네요.
전 여전히 철이 없어서 그런지 눈이 내리는 날을 좋아해요.
모처럼 비가 내린 날도 나름 좋았지만, 그래도 역시 겨울은 눈이에요.
청명한 날씨에 얕게 흩날리는 눈 덕분에 늦게나마 겨울을 느껴요. 꽃샘추위인가하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본격적인 봄이 찾아오진 않았어요. 그러니 이 추위가 꽃샘추위는 아닌 셈이지요. 입춘이 지나긴 했지만, 봄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겨울이 보내는 끝자락을 펼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이리 글을 쓰는 것도 오랜만이에요.
맨날 하는 핑계지만, 최근엔 그냥 뭔가 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냅뒀어요. 그러다보니 글도 안 쓰게 됐는데, 안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없어지더라구요. 아예. 생각이 없어지니 글을 쓸 시도 자체도 안떠오르게 되는. 그냥 생각없이 흘려보내는 것 같달까. 그래서 새로운 한 주에 다시금 정신 차리고, 이렇게 글도 써봐요.
바로 며칠 전이었죠. 봉준호 감독님께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것이요.
전 봉준호 감독님께서 그 상을 받는다는 사실이 막 감격스럽거나, 자부심이 느껴진다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아카데미라든지, 칸 영화제라든지 그저 '대단한 상이구나' 딱 그정도로만 아는 문외한인데다, 그만큼 관심이 없어서요.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상을 받는다는 것보다 기록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계적인 기록으로 이름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부럽달까, 대단하달까. 상을 수상한 결과 기록이 세워진 것이긴 하지만요.
한 번 본 영화를 원래 두 번, 세 번 다시 안 보는 편이에요. 분명 다시 보면 새로운 것들이 보일테고, 또 다른 재미도 있을텐데, 세상에는 볼 영화는 많고, 즐길 것이 많아서 그런지, 막상 다시 봐야겠다고 다짐해도 선뜻 손이 가질 않더라구요. 영화 기생충도 마찬가지에요. 보는 당시에 신선한 충격과 즐거움을 느꼈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수상한것과는 별개로 이참에 영화를 다시 봐야겠어요. 제가 리뷰에 썼던 것처럼, 신선한 접근이 와닿았고, 영화 자체도 짧은 단막극을 보듯 부담없이 볼 수 있었거든요. 영화관에서 봤었는데, 이번엔 집에서 볼까 생각중이에요.
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을 보면서 빈부격차에 의한 불평등과 그로 인한 여러 문제점은 수 많은 국가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분명 능력에 의한 소득 차이는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들어요. 좀 더 빠르게, 좀 더 싸게, 좀 더 효율적으로! 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밑거름이 되지요. 매우 중요한 것이에요.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차이가 스노우볼처럼 갈수록 벌어지고,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에요. 몇 년 전에 해외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피케티 열풍이 불었어요. 그 때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 자본으로 인한 소득의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돈이 돈을 번다고 말하죠. 이젠 노동소득만으론 자본소득을 따라가기 힘들 지경까지 왔어요. 초기엔 너도나도 없는 상황에서 노력과 능력에 의한 차이는 확연히 보였죠. 그리고 이것은 후기의 씨앗이 됐구요. 그러나 그 씨앗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이젠 너무나도 차이가 나서 뒤늦게 씨앗을 심어도 티가 나지 않게 됐어요. 이건 분명히 문제에요. 노동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갈수록 작아져서, 노력과 능력에 의한 발전적-생산적 싸움이 아니라, 돈 내고 돈 먹기 식의 자본싸움으로 번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니 고인물싸움터가 되지 않도록, 늘 새로운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마치 실리콘밸리처럼 말이에요.
현재 대한민국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10년, 20년 순수하게 노동소득만을 저축해서 집값을 마련했을 때, 그 집값은 배로 가격이 올라가 있어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의식주가 가장 기본이며,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주'가 없어요. 그래서 '주'를 갖기 위해서 대출끼고, 무리한 투자를 감행해요. 인생을 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지요. 노동으로 벌어들인 소득을 모아봐야 티끌이에요. 이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암담한 이 미래 대신 현재를 즐기는 욜로족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전문직이라는 하나의 방법도 있어요. 전문직은 아직까지는 그래도 노동소득만으로 어느 정도 자본 축적이 가능하지요. 아직까지는요.
어쩌면 현재 대한민국이 분기점일지도 모르겠어요.
피케티가 예측한대로 자본주의의 결말을 천천히 밞아나갈지,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다른 미래로 나갈지 말이에요.
쓰다보기 글이 길어졌네요.
글을 쓰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떠올라요. 미숙한 지식이지만 경제 이야기하는 건 즐겁거든요.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에서 혁명이 일어날 거라 주장했던 마르크스라든지, 경제성장의 한계로 인해 저성장국면으로 접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는 소득에 비해 거대한 자본총량을 축적하게 되어 저성장 시대에서 돈의 영향력은 더 커질거라 주장한 피케티라든지 말이에요.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나 피케티가 경고한 결말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편이에요. 수 많은 경제학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결말과 위험성에 대해 걱정하지요. 그러나 영화 기생충에서 보여준 기우의 다짐처럼 결국 어느 누구 하나 예외없이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에 순응하고 살아가게 될 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씁쓸하네요. 다만 그 디스토피아가 최대한 늦게 다가오길 바랄 뿐이에요.
어쩌면 제가 기생충의 기우일지도 모르겠네요.
기우의 다짐처럼 그래도 노력해서 돈을 무진장 많이 벌려고 노력할지, 아니면 기택처럼 그냥 다 내려놓고 살아가든지. 기우는 과연 꿈처럼 그 집을 샀을까요. 그리고 저는 그런 집을 사게 될 수 있을까요.
날씨가 많이 추워요.
마스크 잘 착용하시고, 옷 따뜻하게 입으세요.
p.s
제 절대주소를 지웠던니 썼던 글들이 지워져 버렸어요.
복구가 안돼서 어찌저찌 저녁에 다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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