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풍자냐 폭력이냐 - 표창원 의원의 풍자 예술

어둠속검은고양이 2017. 2. 1. 06:22

이번에는 다소 위험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요즘 풍자예술로 인한 표창원의원에 대한 공격이 거세다.

여성민우회라는 단체에서 표창원의원의 해명에 대해 첨삭지도까지 발표했는데, 필자가 한번 읽어보았다. 그리고 여성혐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앞서 명확히 밝히자면, 필자는 이번 일에 대해서 표창원 의원을 지지하는 편이다. 딴에는 사전에 작품들을 살펴보고 논란이 될 것들은 제외했어야 한다고 말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사전검열이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 필자도 사전검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하는데, 아직까지 확답하지는 못하겠다.


이 사건의 본질은 '이것이 과연 풍자로 볼 수 있느냐, 아니냐' 다.

풍자와 금기의 경계라고 할까... 이 경계는 상당히 모호해서 논란은 항상 일어날 수 밖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매우 불쾌해 하고, 어떤 이들은 이정도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그림을 풍자로 보고 있는 편이다.

간단하게 폭력이냐 풍자냐.


첫 번째 기준은 희화화하고 있는 대상이 사회적으로 약자냐 아니냐가 가장 큰 기준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이 그림은 이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을 지닌 인물에 대한 풍자로 보여진다.


두 번째 기준은 해당 풍자가 그 인물의 모순점,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과 연관이 있느냐다. '더러운 잠'이라는 제목에도 붙어 있고,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은 세월호 7시간에 관련하여 대통령의 밝혀지지 않는 일정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보여지기에 풍자로 보여진다.


표창원의 의원에 대한 첨삭지도에서 여성민우회는 '단, 성별/성적지향/지역/학력/인종/장애 등을 근거로 한 희화화, 패러디, 풍자 '예술'은 저열한 방식의 폭력일뿐 사회모순을 향하고, 권력을 해체할 수 있는 상상력을 주는 것이 풍자' 라고 썼다.


이 말에는 동의하는 바인데, 그렇다면 저 '더러운 잠'에서 어디부분을 여성성을 대상으로 한 희화화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여성' 대통령으로서 '누드화'를 차용해서 패러디한 것 자체가 '여성성'을 희화화한 것인가?


--------------------- 부분은 문제가 있는 부분입니다. 정정합니다.---------------

만약 그렇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면, 이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오로지 사회적 권력을 '성'으로서만 판단하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을 동일한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남성과 여성을 동일한, 수평적 사람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지닌 사회적 권력관계는 여러 층위에서 판단해야지, 오로지 성으로만 판단한다는 것은 여성주의가 지양해야 하는 사고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남자의 누드화는 '남성' 자체가 이미 권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풍자이며, 여자의 누드화는 '여성'이라는 부분을 지적하므로 폭력이다??? 사회적 권력 관계로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약자인 것은 사실이나, 해당 누드화는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지닌 한 사람'에 대해서 풍자하고 있으므로, 약자라고 할 수 없다.


성별에 의한 권력관계가 나뉘어지긴 하지만, 그전에 기존에 지니고 있는 사회적 지위, 명성 등에 의해 먼저 권력관계가 나뉘어진다. 따라서 여성대통령은 이미 사회 최상위에 근접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여성'대통령을 대상으로 '누드화'를 차용했기 때문에 여성성을 공격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사고 방식은 권력 유무와 상관없이 남자면 강자 / 여자면 약자라는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남자 대통령을 누드화로 차용해서 패러디한 것은 정상적인 풍자라고 주장할 것이다.


 필자의 논리적인 사고의 문제점

이 부분은 더러운 잠을 풍자화로 생각하지 않는다. -> 풍자화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 권력이 약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여성 대통령을 사회적 권력이 약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 식의 생각구조인데, 1번 문장에서 2번 문장에 넘어감에 있어서 다소 논리적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여성성'을 희화화 한다는 것 때문에 풍자가 아니다-였는데 말이다. 결국 여성성을 희화화한다는 것 그 자체가 무엇이냐? 라고 필자는 되묻고 싶다.

-------------------------------------------------------------------

줄을 친 윗 부분은 필자가 논리적으로 생각함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고 글을 올린다.


풍자화가 아니라고 말하는 측이 지적하는 바는 사회적 권력이 없으니까 풍자가 아니다 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적 권력을 가지고 있든 없든 간에 '여성성'을 희화화했기 때문에 풍자화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다시 말한대로 '여성' 대통령을 '누드화'로 그린 것이 여성성을 희화화한 것이라면, 이 세상의 여성의 나체를 그린 모든 누드화는 전부 여성성을 희화화한 것인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대체 여성 대통령을 누드화로 패러디 한 저 그림은 어딜 봐서 '여성성'을 희화화한 것인가? 비꼰다는 것 그 자체인가. 비꼰다는 것은 풍자에 들어가는 요소다. 결국 여성의 누드화도 여성성을 희화화한 것이 아니고, 비꼰다는 것 그 자체도 여성성을 희화화한 것이 아니라면, 여성의 누드화를 차용해서 비꼰다는 것이 여성성을 희화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다시 질문이 돌아갈 것이다.


더러운 잠이 패러디한,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가 '그가 살던 시대의 창녀를 모델'로 했다는 사실이 여성성을 희화화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작 역시도 '창녀'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살던 '동시대의 인간상을 담고자' 창녀를 모델로 삼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해당 패러디 역시도 '창녀'라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다.


필자의 생각에는 작품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참 항간에 떠돌던, 7시간동안 약에 취해 잠이 들었다, 그 시간동안 외간남자를 만났다는 그런 맥락에서 이 작품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해서 해석이 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그럼 왜 하필 창녀를 모델로 했다는 이 작품으로 패러디 했는가? 하고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세월호 7시간의 풍자와 창녀라는 단어가 풍자로서 서로 연관이 되느냐? 이다. 다른 작품도 많을 것인데, 하필 왜 이 작품을 썼는가? 이 작품을 썼다는 이유가 '창녀'라는 그 느낌을 주기 위해 차용한 것은 아닌가? 만약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 썼다고 할지라도, 어느 맥락에서 온 것인가? 앞서 말한 풍자라는 비꼼에서 오는 맥락인가?


서 말했듯이 항간에 떠돌던 '7시간 동안 외간남자를 만나고 다녔다'라는 취지에서 그린 작품이라면 풍자적 연관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그 7시간에 대해 밝혀진 바가 없어서 이런저런 헛소문들이 많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 풍자의 연관 속에 우연히 '여성성'이 일부 '묻은' 느낌일 뿐, 그게 과연 '여성성'을 회화하기 위한 전면적인 의도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가지고 풍자한 것이 문제일 수는 있겠다.)


게다가 그 부분은 표창원 의원이 해명해야 할 부분도 아니고, 작가가 해명해야 할 부분이다.


이에 여성성을 희화화했다고 주장하는 측은 어떤 전면적인 의도를 지니고 있었을지라도, '여성성'이 들어가게 된 것은 사실이고, 굳이 안 들어가게끔 패러디, 풍자할 수도 있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다. 아예 여성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풍자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언어적 사고체계에서 '여성성'을 아예 배제할 수 있을까? 결국 현 체제의 한계다.

무슨 말이냐면, 항간에서 떠돌던 '외간남자를 만나고 다녔다'는 소문을 패러디하기 위해서 작품을 차용하고자 할 때, 저 소문에서 '여성성'을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기존 언어적 사고체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저 소문이 아니라 다른 소문으로 패러디를 했다면 이런 논란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패러디, 풍자, 모든 작품활동을 하기에 앞서서 '여성성'을 포함하는가 하지 않은가가 최우선적인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말인데......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여성혐오를 제거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 여성단체 입장에서는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최우선으로 삼는 가치의 순서가 '일반인'들과 '여성단체'간에 맞지 않는다는데 있다. 여성단체는 그 최우선의 가치 순서가 다르다는 사실이야 말로, '일반인'들이 무의식적으로 여성혐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만약, 이렇게까지 주장한다면 필자도 할 말은 없다.

가치 충돌의 영역이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양보가 없는 지점이니까.


다시 돌아가서, 현 언어적 사고체계 아래서 일어나는 패러디, 풍자를 보고 여성혐오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고 지적한다면, 그에 대한 대체 방안은 있는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적, 사회적, 문화적 요소에 여성혐오가 숨어 있는데,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가. 언어를 다 바꾸고, 사회, 문화적 요소를 다 바꿀 수 있는가. 또한 그 요소를 바꾼다고 해서 과연 여성혐오가 사라질 수는 있는가. 애초에 그 요소보다도 그 요소를 사용하면서 동반된 '의식'이 문제의 본질인데 말이다. 대체할 것이 없으니 일단은 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혐오적인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면, 좀 더 유연하게 지적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일반인들과 여성단체 간의 최우선적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을 지적하느냐'라는 답변이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여성단체 라고 구분지어 불쾌하실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부득이하게 마땅히 쓸 언어가 없어 썼으니 양해 바란다.)


그렇다면 또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작가의 의도도 좋지만, 애초에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할 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른 의도로 받아들여지는데 문제가 아닌가? 하고.


하지만 이에 대해서 필자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세상 어느 예술작품도 한 가지 의도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 예술작품은 작가의 생각과 독자의 생각이 만나는 장소다.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인 것이고, 우리는 그 작품을 통해 의미를 찾기 위해 작품을 보는 것이다.


또한, 모든 작품, 대화에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중요하듯 말하는 입장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화는 '쌍방향'이다. 내가 A의 의도로 말했을지라도 B라는 의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말할 때, 발화자는 말을 할 때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만, 그 말이 다의적으로 해석될 '모든 상황'에 대해 가정하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다.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청취자 역시도 나름대로 발화자의 의도를 좀 더 살펴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무조건적으로 청취자가 그렇게 생각안하니까, 발화자가 문제야 라고 주장한다면, 세상 어느 누가 발화자가 될 수가 있는가.


무조건적으로 청취자가 받아들이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것은 지양될 필요가 있다.


p.s

여담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만을 중시하는 태도는 아마도 모든 관계를 가해자-피해자의 도식구조로 보는 것과 연관이 깊어 보인다. 가해자-피해자 도식 구조에 있어서 피해자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도식 구조가 모든 일상행활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작품/대화와 같은 쌍방향 소통에서는 더더욱 적용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