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적당히'다.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검은 인간, 회색 인간, 흰 인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색인간에 속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엔 적당히 도덕적아지만,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 것 같으면 돌변한다. 다만 그 불이익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인가에 따라 반응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그래서 회색 인간이다. 흰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회색인간.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신과 무관한 경우에, 자신의 삶에 영향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사람들은 무한하리만큼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이유는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검은 인간보다 흰 인간인 척하는 것이 살아가는데 더 좋기 때문이다. 또한 떳떳해진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하나의 이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은 인간을 곁에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검은 속내가 언제 나의 뒤통수를 후려갈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차라리 불편할지언정 파악하기 쉬운 흰 인간을 곁에 두려하고, 대부분의 회색인간들은 평소엔 흰 인간처럼 지내려 한다. 적당한 배려와 적당한 도덕과 적당한 선이 사회를 원만하게 굴러가게 하기에. 그리고 그것이 서로에게 이득이기 때문에.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문자 그대로 '흰 인간'은 같이 지내는 것이 불편함을 넘어서서 힘들다. 필자 생각에는 정말로 흰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역사상 손가락엔 들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은 흰색인척 하는 회색인간 이거나, 흰색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회색인간이거나, 흰색인간에 가까운 회색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자신과 무관한 영역 하에서, 제 3자 입장에서, 인터넷엔 무한히도 흰 인간들로 넘쳐난다. 과연 현실적 문제들이 그들 곁에 내려왔을 때, 그들은 인터넷에서처럼 흰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말이 옆으로 샜는데, 여튼 간에 세상은 회색인간들로 넘쳐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회색의 명도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결국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적당히'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색인간론이다.
흰색이 되려 하지도 말고, 타인에게 흰색을 강요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검은색이 되지 말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말고.
...........sns엔 자신이 흰색인간인지, 검은색인간인지 보여주려 안달난 이들이 참으로 많다.
흰색이든 검은색이든 양 극단에 있는 색으로서 사회와 거리가 멀다. 그리고 그것은 공격의 대상이 된다.
본인이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당당하게, 자신만의 색으로서 고난의 흰색 삶을 살겠다면 그 또한 존중하겠다.
나보고 소신민이라며, 회색인간은 결국 자기합리화이자, 소극적인 자세라고 비난하겠다면 그 또한 존중하겠다.
난 나를 포장할 생각이 없다.
다만, 회색인간으로서 적당히 도덕적인 척 포장하며 살아갈 것이다.
p.s
나이를 먹으면 변한다더니 맞는 말 같다.
20대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무어라 말할까.
하지만 단 하나의 선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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