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내용/문학

설야, 와사등, 외인촌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7. 14. 12:55

벌써 일요일이네요.
오늘은 전에 말씀드렸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김광균의 시 3개를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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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

어느 머언-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발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눈을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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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등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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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촌

하이얀 모색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을 단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라를 향한 산마루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힌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었다.

외인 묘지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 내리고,

공백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의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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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함, 공허함 등의 느낌을 자아내는 것과 그것 느낌들을 이미지를 묘사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지요. 다른 작품으로는 김광균의 추일서정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냥 감각적이라서, 이미지적이라서 좋아합니다. 

위 3개의 시와 김광균의 '추일서정'과 '은수저' 를 포함하여 5개의 시는 교과서에 실린 대표적인 시이기도 해서 고등학생들이 많이 배우는 시이기도 합니다. 필자 같은 경우엔 좋아하는 시 암기 평가에서 설야를 선택해 외우기도 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을 시험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문학 작품 자체로서 한번 즐겨보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일거라 생각합니다. : )

오랜만에 시를 다시 읽어 보니 즐겁네요. : )


p.s
시 공부를 어려워 하시는 어린 학생분들이 있지 않을까해서 감히 덧붙여봅니다.
무작정 의미를 암기하기 보단, 이미지를 떠올리고, 감각적으로 생각하면서 분석해보는 것이 좋아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분석하다보면 이해력이 좋아져서 낯선 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도전해볼만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방법이 오히려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대표적으로 '눈'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금방 녹는다, 하얗다, 차갑다. 이런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요. 그래서 시에서 단독으로 쓰이는 눈은 순수, 순결, 긍정적인 느낌으로 쓰일 때가 많지요. '차가운' 겨울과 대조해서 쓰일 때는 따뜻한 느낌의 이미지도 가지게 돼요. 하지만 이별 했을 때가 눈 오던 날이었다면, 이별을 상기시키는 물체, 아픔의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겠지요. 기본적인 이미지를 생각하며 접근하되, 앞뒤 맥락을 보면서 분석을 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훨씬 부담을 덜게 되지요. (중요한 것은 시어의 기본적인 이미지는 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닌, 그 시어 자체가 지닌 이미지로만 봐야한다는 것이에요.)

만약 내가 분석한 것이 정답지와 다르다면, 왜 다르게 해석하게 됐는지 생각을 다시 해보시는 것이 좋아요. 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감각적 이해상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외우세요.....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다를 수' 있어요. 분명히 틀린 건 아니에요. 하지만 '답'을 맞춰야하는 입장에선 어쩔 수 없지요. 좋은 결과 있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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