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벚꽃 피는 계절이 오고 말았어요.

어둠속검은고양이 2020. 3. 29. 16:33

벚꽃이 피는 계절이 오고 말었어요.
꽃 피는 계절 속에서 만개한 꽃을 보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지만, 그 대가로 우린 꽃이 지는 계절을 맞이해야만 하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듯이 피고 지는 것은 자연의 순리니까요.

벚꽃길을 걸었어요. 주변을 산책삼아 걸었죠.
날씨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눈부셔서요.
인파가 몰리는 곳으로 가진 않았으니 걱정 말아요. 그저 이렇게 운동삼아 산책 겸 혼자서 걷곤 하죠. 하지만 역시 즐겁지는 않네요. 창문을 통해 본 풍경은 그렇게나 기분 좋아 보였는데 말이에요.

혼자 지내는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봐요.
이 아름다운 꽃길들은 나의 처치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게 해주죠. 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 감정들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요. 좋아 보였던 꽃길을 걸으며 생각했어요. 어째서 별로 즐겁지 않는지요. 역시 산책은 재잘재잘 이야기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걷는 것이 재미인 것 같아요. 말없이 이어폰 꽂고 걷다보니 문득 왜 걷고 있는지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멈춰버렸죠. 모든 행동이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건 아닌데 말이에요. 아름다운 풍경도, 만개한 꽃길도 감정 교류를 위한 조미료일 뿐이에요.

그래서 산책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글을 써요.

벚꽃이 피는 계절이 오고 말았어요.

꽃이 피고 지는 걸 흔히 사랑에 비유하지만, 정작 나는 당신과 함께 벚꽃을 같이 본 적이 없네요. 대학교의 오르막 길은 만개한 벚꽃나무로 가득 했었죠. 대학생들은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라며 낄낄거렸지만, 저는 그 시기에 대학교에 나오지 않는 당신 생각에 아쉬워하며 그 길을 걷곤 했죠.

비가 한바탕 내리고 난 후, 벚꽃이 저물어갈 때쯤에 당신은 나타났어요. 그렇게 그 해 한여름밤의 꿈이 시작됐죠. 우린 동아리방에서 많은 날을 지새웠어요. 과제를 이유로, 시험공부를 이유로, 자격증 공부를 이유로 같은 공간에 머물렀죠. 꽤나 즐거운 추억이었어요.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가고, 초여름날 우린 헤어졌지요. 꽃이 필 때 시작한 관계도 아니었는데, 우리의 헤어짐은 꽃이 저물 때 이뤄졌네요.

당신을 생각하면, 그 무더웠던 여름날 밤길을 함께 걸었던 때가 생각나요.

초여름과 같던 당신.
딸기 우유를 좋아하던 당신.
한여름밤 꿈처럼 보냈지만, 하얀 눈이 떠오르는 당신.

당신이 있을 때도 함께 걸어본 적 없는 꽃길이지만, 지금도 홀로 꽃길을 걷네요.
결심과는 달리 2020년도 벚꽃길을 홀로 걷게 생겼어요.

올해는 벚꽃길이 오래갔으면 싶네요.


p.s
시기가 시기인지라 조심해야죠. 안전수칙 생각하며, 거리를 유지하고, 가까운 곳으로, 짧게 다녀오는 걸로 만족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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