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떠오르는

어둠속검은고양이 2021. 9. 3. 10:01

얼마전에 밤을 주웠다.

그래, 밤.
가시가 잔뜩 달린, 초록빛 나는 밤송이다. 밤송이를 감싸는 가시는 무척 따갑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밤은 무척이나 달고 맛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밤을 좋아한다.

살아가다보면 이렇게 밤송이처럼 가시가 잔뜩 돋칠 때가 있다. 밤송이 안에 밤처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관심도 받고 싶은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해서 밤송이마냥 가시를 잔뜩 세우는 그런 날 말이다. 나도 나름 달고 맛있는 저 밤처럼 매력이 있는데,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한 것이다. 인터넷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나 역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적도 있었고.

그러나 슬프게도 사람들은 밤송이의 가시를 보며 피할 뿐, 그것을 억지로 까서 맛있는 밤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속이 차서 자연스레 나오는 밤을 얻어간다.

마찬가지다.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분노하고, 가시를 세워봐야, 사람들에겐 그 가시를 걷어내고 맛있는 속밤을 얻어야 할 의무가 없다. 그런 가시투성이 밤송이 말고도 잘 익어 밖으로 나온 밤들은 잔뜩 있으니까.

우린 밤송이가 아니라 속이 꽉찬 밤을 드러내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이 뒤돌아볼 정도로 빛나는 우리의 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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