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사진에 찍히는 것을 싫어했던 그녀였다.
내가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하면 거절하며 피하곤 했다. 자신의 모습이 내 폰 안에 담기는 것이 싫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모습이 찍히는 것이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그녀가 스며들게 된 것은 그녀와 찍은 스티커 사진 때문이었다. 그 날의 변덕이었는지, 아니면 그녀의 의도였을지....이 사실은 그녀만이 알 수 있을 뿐.
스티커 사진 촬영 후에 내 마음에는 그녀가 스티커처럼 붙어 버렸다.
어느 여름날 밤, 여느 때와 같은 변덕이었는지 아니면 여름 날 밤의 마법이었는지 그녀는 나에게 사진 몇 장을 허락해주었다. 그 이후 내 폰에는, 여름 날 밤에 창경궁 앞에서 단발머리를 한 그녀의 사진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딱 한 장.
내 방에서 예쁜 원피스를 입고 밀짚모자를 장난스럽게 쓴 그녀의 모습도 역시도 남았다.
.................
이제 그 사진들은 더 이상 없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못내 아쉽게 그녀의 사진도 그리 보냈다.
오늘 밤, 문득 휴대폰 사진첩에 사진 한 장이 보인다.
내 집을 올라가고 있는 그녀이 뒷모습이다.
밤하늘 가로등 아래에 하이바 모양의 단발머리, 검은 후드티에 초록색 반바지,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던 조던화까지. 언뜻보면 영락없이 호리호리한 남자처럼 보일 그녀의 뒷모습이 이리도 분명히 찍혀 있다.
그 날 그녀의 모습도 내 마음에 찍혀 있는 듯, 분명하게 떠오른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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