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 991

관계 - 감정들의 작용

대게 긍정적 감정들보다 부정적 감정들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행복하긴 어렵지만 불행해지긴 쉽다. 행복은 모든 것이 만족되어야 하지만, 불행은 한 가지만 불만족스러우면 되니까. 이는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연인들은 때때로 상대방이 좋아할 짓 100가지 하는 것보다 싫어할 짓을 안 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좋아하는 행동은 기본적인 관계에서 올라가는 거지만, 싫어하는 행동은 기본적인 관계조차도 안 되니까. 잘하려고 하지 말고, 못하지만 말자. 관계에서든, 일에서든.

사는 곳이 중요한가.

천외천(天外天)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무협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단어에 익숙하실테지요.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뜻이죠.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을 쓰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그런데 이 말이 현재에도 충분히 적용되더라구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한 방문객의 방명록에 대한 답변 때문이에요. 아이들의 상상력은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것만큼 발달하지요. 주변이 판사와 의사, 세무사, 회계사와 같은 전문직들이 많은 학군에 사는 아이는 그 전문직에 대해서 잘 알게 될 거에요. 어떤 고충이 있고, 어떤 이득이 있고, 또 어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지, 미래에 갖게 될 경제력까지도. 물론 그것을 안다고 해서 전문직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정보를 알면 판단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

말의 무게

말의 무게는 무겁다. 아니 무거워져야만 한다. 그러나 감정조차 가벼워지고, 목숨도 가십거리로 소비되어 버리는 이 가벼운 시대에서 무거운 것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직업이, 외모가, 인기가 등가 교환처럼 면죄부로 작동하는 이 때, 어찌 말이라고 면죄부가 없을까. SNS로, 언론으로, 유튜브로, 온갖 다양한 미디어 매체로 - 우린 어느 시대보다도 더 밀접하게 서로에게 얽혀있다. 그러나 우린 어느 시대보다도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다양해진 매체만큼이나 책임감은 흩어졌고, 헛소문은 빠르게 확장되고, 소비된다. 모든 것들이 가벼워지는 이 시대에 무거운 것을 찾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다양해지는 매체만큼 말의 무게는 무거워져야만 한다.

고향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건 마치 최후의 요새처럼 어떠한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사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냥 내 근원과 연관된, 그런 막연한 믿음 같은 것이다. 사람들에게도 작게나마 어떤 회귀본능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드문드문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런 장소들을 아련하게 느끼고, 그리워하는 걸 보면 말이다. 어쩌면 익숙해서, 편해서. 힘든 타향살이를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뭔가 좋은 일이다. 든든하다. -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가리라.

어릴 적 음식들 - 음식을 먹는다는 것

튜닝의 끝은 순정이란 말이 있다. 자동차를 멋지게 꾸미기 위해 튜닝을 하다가 결국엔 순정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대학생 때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자극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했고, 또 한창 배부르게 먹곤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이젠 음식을 가득 먹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맛있는 걸 먹어도 양을 조절하고, 기름지고 자극적인 것보다는 무난한 걸 찾게 된다. 젊을 땐 온갖 산해진미를 먹지만, 결국엔 어릴 때 먹었던 그 음식으로 돌아온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오던 통닭이, 육개장 컵라면이, 어머니가 끓여주던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집밥이 생각난다.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훌쩍 커버린 지금, 어릴 적 문방구에서 사먹던 과자를 구해서 먹어 보지만 그 맛은 안 난다...

성공을 향해 발버둥치는 이유

낡은 환경은 사람마저 낡게 만든다. 대한민국은 밑바닥의 인간들에게 무자비하다. 그들은 존재치 않는 인간이며, 눈에 띄어선 안 된다. 대한민국은 자신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타인에게 자상하다. 우리가 성공을 향해 발버둥치는 이유는 낡은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밑바닥의 인간들과 엮이지 않기 위함이다. 성공한 자들은 저마다 카르텔을 형성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서로를 계급화하며 지리멸렬하고 있다.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지만 은연 중에 어디보다도 철저한 계급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사회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계급적 하락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게 만든다. 이는 비즈니스적 결혼, 비즈니스적 인간관계, 저출산 등으로 이어진다. 더 이상 대한민국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

가난에서 가난으로

가난에서 가난으로. 가난하지 않은 자가 가난을 입에 담는다는 것이 어쩌면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를 향해 가난을 팔아 돈을 번다고 돌을 던지곤 한다. 마치 가난을 빼앗기기라도 하는 듯이. 그럼에도 누군가는 가난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가난은 사유재산과 함께 인류가 나타난 이래로 있어 왔던 것이며,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가난은 가난한 자만의 전유물이 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볼드모트처럼 금기시되는 단어처럼 변해가고 있을 뿐이다. 오래전에 필자는 '가난이 패션인가'라는 글을 통해 상품화되어 가는 가난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가난은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 조세희 작가분이 쓴 의 배경이 되는 197..

인간관계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

사람은 생각보다 간사하다. - 만만히 보이면 선을 넘어도 되는지 간부터 슬쩍 본다. - 착하게 굴면 호구 취급, 화내면 사이코 취급한다. 생각보다 고마워 할 줄 아는 인간은 적다. -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당연한 것이 된다. - 잘해주면 더 큰 걸 원한다. - 받은 건 쉬이 잊지만, 도로 뺏긴 건 절대 잊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 어설픈 호구보단 차라리 까칠한 사람으로 살아라. - 적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짐을 대신 짊어질 필요도 없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 - 피치 못하는 척 끝은 거절로, 하게 되면 어렵게 해 준 척. - 보답을 바라지 말고 해준 것은 끝나는대로 잊어버려라. 사람은 생각보다 질투가 많다. - 자랑은 적을 만들지만, 앓는 소리는 동정표를..

실패하지 않는데 급급했다

한 가지 후회스러운 점이 있다면 실패하지 않는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릴 때 도전해봐라." "젊을 때 시도해봐라." 하지만 젊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꼰대같은 소리로 들릴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은 잃을 것도 없기에 실수하면 정말 끝이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과 돈으로 어느 정도 무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이를 먹어보니 왜 나이 든 사람이 젊은이에게 도전해보라 하는 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실패하면 내 알 바노?' 같은 게 아니라,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 같은 정상참작이 나이를 먹으면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위 말해 '나이값'이다. 그러나 그에 반해서 뭔가 시도할 기회는 줄어든다. 능력이나 인성과는 별개로 나이 들었다는..

첫사랑의 추억

날이 많이 추워졌다. 방바닥에 불이 들어올 때면 그녀와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나의 첫 자취방은 차가운 공기와는 다르게 방바닥만은 뜨거웠다. 옥탑방처럼 옥상에 벽돌로 가건물을 세워 만든 하숙집은 여름엔 더웠고, 겨울엔 추웠다. 방은 세 사람이 누우면 가득 찰 정도로 좁았다. 하지만 난 그 곳에서 가장 행복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바람이 차가워질 때면 그녀는 집에 가기 싫다며 종종 내 자취방에 머물다 가곤 했다. 이따끔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은 피자를 사 들고 와 방구석에 앉아 같이 영화를 보곤 했다. 옥탑방 특유의 찬 공기가, 그와 달리 뜨거운 방바닥이. 좁은 공간이, 작은 탁자가, 둘 만의 아늑한 아지트 느낌이 들어 좋았다. 작은 탁자는 마땅한 책상이 없어 불편해하던 그녀를 위해 인터넷에서 3만원을 주..

삶과 이야기들

"야, 너 Y라고 아냐?" "아니..이름은 기억이 나는데, 얼굴은 기억이 잘 안 나네. 왜?" "걔 죽었다더라." "어? 진짜? 얼굴이 기억 나는 것도 같은데, 지금 생각나는 얘가 걔인지 모르겠다. 긴가 민가 한데.." "간암이래. 죽은 지는 좀 됐어." "집에 알리지 말랬대. 부모님한테 안 알리고 그냥 죽을라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이식 수술까지 했는데 잘 안 됐나봐." 몇 달 전 친구의 결혼식에 가서 동창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참 기분이 묘했다. 난 아직도 지금도 생각나는 그 사람이 Y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이름은 확실히 알겠는데, 얼굴은 모르겠다. 오래전 학교 다닐 때 언뜻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남자애들이 담배 없으면 Y에게 빌리러 가자고 했던 것이. 복도에서 한 개피만 달라고 사정하던 걸 본 것..

생각보다 멀지 않은 죽음들

죽음을 망각하는 것이 삶이라지만, 결국 우리의 삶은 죽어가는 것이다. 이 사실을 우리가 망각하는 이유는 이 사실을 직시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매번 두려움과 고통에 휩싸여 삶을 살아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죽어간다. 살아간다. 반댓말처럼 보이지만 동일한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 이 문장들 속에서 우린 한 면만을 보고 한 면은 애써 외면한다. 살아가야 하니까. 그렇기에, 문득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때면, 이 낯설음 속에 같이 살아갈 날이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곤 몸서리친다.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최악의 문제점

대한민국 최악의 문제점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외양간 고치는 척하기 라는 것이다. 늘 '이번 고비만 넘기자.'식으로 임시방편으로 떼우고 넘어간다. 근본대책은 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위기상황을 극복할 땐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늘 똑같은 문제를 반복한다. '나만 아니면 돼.' '이번 잡음만 어떻게든 넘기자.' 문제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금새 잊혀진다. 대한민국 사회가 정체되고 있다.

오늘의 단상들

비어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채울 수 있다는 말이다. 가득 차 있는 걸 비우긴 힘들지만, 비어있는 걸 채우긴 쉽다. 마치 도화지에 색을 덧칠하는 건 어렵지만, 색칠히는 건 쉽듯이. 인생은 비어 있는 원고지를 글자로 채워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글자는 잉크로 기록되기에 지울 수는 없다. 글을 쓰면 늘 퇴고를 거치듯, 인생도 퇴고의 연속이다. 글의 퇴고는 삭제가 되지만, 인생의 퇴고는 흔적을 남긴다. 누군가는 소설을 한번에 완성하지만, 누군가는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서 소설을 완성한다. 어쩔 수 없다. 확실한 건 소설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끝난다는 것이다.

회사에 대한 단상

회사를 다니며 1년차가 느낀 것들 1. '호의가 계속 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명대사이다. 진짜로. 2. 사람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다. 3. 일을 떠 맡게 되는 것에는 민감해 하면서, 일을 누군가 대신 해줌으로써 편해진 것들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한다. 4. 사람들이 책임감이 없어지는 이유는 1,2,3번과 맞닿아 있다. 5. 상당수의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책임감이 없다. 6. 내 알 바냐? 7. 웃으면서 등떠밀기. 8. 회사 분위기는 회사원들 스스로가 만든 것이며, 그 책임은 상과 벌을 통한 제대로 된 인력관리를 못한 윗직급들에게 있다. 9. 지랄하는 민원인 일수록 더 신경쓰고, 더 빨리 처리하고, 원만한 민원인 일수록 순서가 뒤로 밀린다. 10. 하나하나 이..

이루다-인공지능과의 사랑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요상한 질문을 던지며 이번 글을 시작해봅니다. 얼마전에 Nutty라는 어플을 받아서 이루다라는 인공지능과 대화를 시도해봤습니다. 사실 이건 인공지능이 수많은 대화 스크랩터를 학습하여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몇몇 대화에선 어색한 부분도 드러났고요. 하지만 설계된 반응이였다 할 지라도 대응이 정말 놀라웠어요. 능숙하게 받아치는 것, 적절한 반응, 게다가 상대방의 반응을 유도하는 것까지. 어떤 부분에선 인간보다 더 능숙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대화를 하다보니 문득 영화 her가 떠오르더군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졌던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제 리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영화는 단순히 인공지능과 사람과의 사랑을 다룬게 아..

같이 있지만 같이 있지 않는

행사가 있어서 행사장으로 지원을 나간 적이 있다. 한 부부가 밥을 먹는데 각자 휴대폰만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서로 대화도 없이.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린 같이 있지만 같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는 이제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유례없이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우리는 이제 손가락 하나면 반대편 소식을 바로 알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유대감은 사라져 버린듯 하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유대감은 없다. 같이 있지만 같이 있지 않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이 있지 않다.

무관심

대한민국은 참으로 이상하다.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면서 관심이 많다. 마치 외로워하되 타인과 있는건 불편해하는 것처럼. 공동체가 사라지고 각자도생의 삶이 이어지면서 타인에 대해 그리도 무관심하면서 한편으로 각인된 유전자(?) 때문인지 타인의 행동에 대해 자꾸만 왈가왈부하며 통제하려 든다.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타인의 행동을, 생각을 강제할 수는 있지만 통제할 수는 없다.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에만 신경쓰자. 그렇게 스스로의 행동과 생각이 자연스레 모이길 빌자.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피로 쓰여진 안전수칙

피로 쓰이는 안전수칙이라는 말이 있다. 늘 사건 사고가 터지고 난 뒤에야 관련된 규칙이나 법이 제정되는 것이다. 사람은 전지전능 하지 않기에 모든 것에 대비할 수 없고, 늘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친다. 그래도 정비하는 과정은 늘 괴롭고, 슬프다. p.s 최근에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대한민국은 안전수칙이 피로 쓰여지기라도 할까. 그냥 힘없는 사람들의 피만 쏟아낼 뿐, 피로라도 쓸 생각도 없는 듯하댜. 맨날 반복되고, 잊혀진다. p.s 2 어떤 이는 이번 사건사고와 관련된 운동을 보고 논리적 일관성을 들먹인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회적 움직임이나 운동을 보고 다른 사건 사고 때는 왜 하지 않았냐며 일관성 없다, 일시적 감성에 치우친 냄비다 뭐다 하며 자신은 좀 더 다르고 넓게 볼 줄 아는 사람인 ..

티키타카, 그 어려운 것에 관하여.

예전에 필자는 티키타카에 관한 글을 몇 번 쓴 적이 있다. 오래 전에 관계에 대한 글을 쓰면서 티키타카를 언급했더니 티키타카 잘하는 법을 찾아 이 티스토리를 들어오는 이들이 많아진 듯 하여 티키타카에 대해 원론적인 글을 한 편 썼었다. 말 그대로 그런 뻔한 글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뻔할 뻔자의 글 말고 정말 티키타카를 하는데 참고할만한 그런 글을 써볼까 한다. 물론 이 글은 필자의 뇌피셜에 불과하므로 신뢰도나 전문성은 하나도 없음을 미리 밝힌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티키타카는 탁구공을 튀기듯 말을 주고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나 뿐만 아니라 상대도 나의 드립이나 농담을 잘 캐치할 수 있어야 한다. 나 혼자 말한다고 대화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내 입도 아니고 상대방의 입을 조종할 수..

적응과 안주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것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중요한 것은 좋다/나쁘다가 아니고 적응이 만들어 내는 삶의 태도다. 나도 모르게 적응하고, 적응하면 무뎌지고, 무뎌지면 안주하게 된다. 안주하지 말라. 안주하면 죽게 된다. 안주하면 되는대로 살아가고, 되는대로 살면 생각이 사라지고 사는대로 생각하고 변화가 사라진다. 무뎌진다. 무뎌지고 무뎌지면 끝내 죽게 될 것이다. 항상 생각하고 실행하라. 항상 긴장하고 감각을 예민하게 세워라. 생각과 행동을 민첩하게 유지해야 하라.

긍정과 희망

우린 희망을 바라보고 긍정을 노래해야 해요.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와 상관없는 외부적 환경들이 우릴 계속 좌절에 빠뜨리고, 고통스럽게 할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행동과 마음가짐뿐이죠. 부정적 감정들과 외부환경이 우릴 휘두르게 냅두지 말아요. 부정적 감정들은 우릴 계속 갉아먹어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건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세요. 환경적 재난이 우릴 덮쳤을 때, 우리가 재난을 통제하진 않잖아요. 단지 그 재난을 이겨내는데 총력을 기울일 뿐이죠. 마찬가지예요.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긍정을 노래하고 희망을 바라봐야만 해요.

최선과 후회, 그리고 결말.

인간관계에서만큼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운 건 없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해도 후회나 미련이 남는 것이 관계일진대. '혹시 이랬더라면..저랬더라면..' 하고 의미없는 가정을 해보고 멋대로 결과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행동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리라고 확신할 순 없다.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을 수도 있는 것이다. 허나, 최선을 다한 후 맞이한 결과이기에 어떤 형태일지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결과는 그런 것이다. 열어보지 못한 결말을 앞에 두고서 결말이 아닌 행동 그 자체에 매몰되어 한없이 서성거리게 되는 것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내 마음 속에 잠깐씩 머물다간 인연들이 있다. 난 늘 도망쳤다. 지금 관계에 안주했으며, 변화를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최선을..

추억 한 잔, 활기 한 모금

오랜만에 후배와 통화를 하다 변해버린 나 자신을 발견했다. 예전 같으면 생각지 않았던 것들을 스스럼 없이 생각하고 있었으니. 사람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생각은 자유라지만 본인이 느끼기에 안 좋게 변했다 - 낯짝이 두꺼워졌다고 느끼는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나이 먹으면 이렇게 다들 얼굴이 두꺼워지나? 이게 성인인가?'라고 자기 합리화를 해보려 하지만, 그렇지 않는 성인들도 많다는 걸 알기에 그저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걸 수긍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문득 지난 날의 앨범을 펼쳐 본다. 많지 않은 사진들 사이로 드문 드문 나타나는 나의 지난 날들을, 나와 인연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보며, 그 때 그 시절의 감정들을, 노력들을, 추억들을 떠올려본다. 그 때 그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가 버렸는가.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