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 991

기억들

살아가다 보면 부끄러운 일들, 잊고 싶은 일들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 기억들은 오히려 더욱 기억에 남아 우릴 괴롭히는 반면에 평화로웠던 기억들, 일상적인 일들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당연시되던 일이었으니까. 우린 당연하다 느끼는 것들을 소중히 하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마치 체화된 것과 같다. 말 그대로 내 몸처럼 일상적인 거니까. 내일도 해가 동쪽에서 뜰 거라 믿는 것처럼 당연히 그러하며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까. 반면에 비일상적인 일들은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의 기억이 되어 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슬픈 일, 부끄러운 일, 잊고 싶은 일들은 만들고 싶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그런 일들을 만들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시도를 하지 않으..

미련한 짓

인터넷을 하다 우연히 네가 좋아하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이젠 숨겨진 명곡이라는 말로 많이 알려진 노래다. 그런 노래들이 하나씩 있다. 유명한 가수들의 유명한 앨범들 사이로 유명하지 않은 노래들이. 들어보면 역시 유명한 가수답게 노래가 꽤나 괜찮다. 노래에 관심없던 나였으니 네가 좋아하던 그 노래도 잘 모를 만도 했다. 네가 가수는 유명한데, 잘 안 알려진, 진짜 좋은 노래라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노래방에서 불러주었을 때 처음 알게 된 노래였다. 세월이 흐르고 문득 이 노래를 듣게 되니 이 노래를 부르던 네 모습이 떠오른다. 사랑을 말하는 노래 가사가 마음에 닿아서 그럴까. 그 때 그 시절의 아련함들이 나를 뒤덮는다. 이제 너는 이곳에 없다. 하지만 쓸데없게도 이 노랠 부르던 너는 어떤 마음..

믿음과 의심, 사랑의 과정-한꺼풀 벗긴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의심과 극복의 과정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에 대해, 너에 대해 친밀감을 쌓으면서 한꺼풀 한꺼풀 벗겨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한꺼풀 벗으려 할 때마다 나의 모습을 상대방이 변함없이 사랑해줄까?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내적 친말감에, 상대방의 믿음에 확신을 갖게 되는 순간, 마침내 한꺼풀을 벗고서 상대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우린 우리의 의심을 상대방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그것은 사랑하는 동안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사랑할수록, 믿을수록 의심하고, 의심을 해소해야만 한다. 무관심한 것을 믿음이라 포장해선 안된다.

골짜기를 지나가야 할 때

산이 높으면 골짜기는 깊다. 필자는 작년 1월쯤 이 글을 쓰며 우려를 나타낸 적이 있다. 이제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파티는 끝난 지 오래다. 이젠 골짜기를 지나가야 할 때다. 아니, 땅을 파고 들어가야 할 지도 모른다. 부동산 거품이 터지기 전이다. 폭발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땅 파고 들어가는 수 밖에. 어쩌면 한국은 예전 2007년 모기지 사태 보다 더 심각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온난화, 환경 오염, 러시아의 전쟁, 미중의 패권 싸움, 새로운 질병의 창궐과 코로나로 인한 더뎌진 경제회복까지. 모두가 합심해서 온난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하기에 힘이 모자란 상황인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예고된 대규모 경기 침체 앞에서 각자도생하기 바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분리수거와 일회용품 사용 줄이..

평화롭기를

오랜만에 초저녁 거리를 걸었다.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깃털 구름이 번져가는 푸른 하늘 아래. 천천히. 천천히. 아주 느리게. 기온은 선선했고. 바람은 서늘했고. 햇빛은 저물어가고. 거리엔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이어폰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뉴에이지 음악이 오늘 하루 평화로움과 너무도 닮아서 너를 떠올랐다. 딱 오늘 만큼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만큼만 너의 앞날이 평화롭기를. p.s october-Romance

마음 조심

말 조심하라고 하는 이들은 많지만, 마음을 조심하라는 이들은 많지 않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말 실수는 할 수 있지만, 마음 실수는 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생각들이, 마음들이 말로, 행동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때가 바로 말 실수, 행동 실수할 때다.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것.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평소의 마음들이 보이는 순간이다. 우리가 마음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소나기

하늘이 열리고 닫히길 반복한다. 햇볕이 퍼붓고, 비가 퍼붓길 여러번. 한 때 너를 향했던 내 마음처럼. 너와 잘 풀리는 날에는 내 마음에도 찬란하게 해가 떴었고, 너와의 약속이 깨지거나, 연락이 닿지 않아, 무언가 풀리지 않는 날엔 내 마음에도 세차게 비가 퍼붓고 마침내 어두워졌더랜다. 그래도 너를 사랑했던 순간은 매일 매일이 행복이였다. 다시금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고 모든 것이 흐려진다. 흐려지고 어두워져 경계조차 불분명해진다. 그래도. 그래도 다시금 해가 뜰 것을 의심치 않는다. 너를 사랑했던 그 때처럼.

소중한 존재들

"난 네가 좋아." "하지만 난 네 가족까지 책임져 줄 순 없어. 물론 너에겐 가족도 소중한 사람이고, 나도 소중한 사람이겠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둘 다 소중한 사람일 거야. 하지만 난 그릇이 작아서 너 하나만 소중해. 너 하나만 책임질 수 있어." "너에게 소중한 존재라고 해서, 그 존재들이 나에게도 소중한 존재들인 것은 아니야!" 그 사람의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나 조차도 때때로 애증이 섞이는 내 가족들을 누구에게 이해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몰랐더라면. 차라리 이 사람을, 이 사랑을 몰랐더라면 싶다. 행복했던 지난 순간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아프다. 그 사람은 분명하게 말했고, 이제 선택은 오직 나의 몫으로 남았다. 이젠 결심..

직업

특정 직업에 사람이 많이 몰린다면 몰리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사람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특정 직업에 사람이 늘 부족하다는 것은 노동 강도에 비해 연봉이 적거나, 대우가 안 좋거나, 처우가 열악하다는 걸 의미한다. 사람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은 인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만한 정당한 대가가 없는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정당하지 않은 노동의 대가, 열악한 노동 환경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직업은 몰리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직업, 사람들이 몰리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

성장과 결핍

인생은 만족한 순간부터 도태되기 시작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결핍은 고통스럽지만 우릴 성장하게 만든다. 우린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강요당한다. 만족하는 순간, 성장은 멈추고 사회는 원동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경쟁 사회에서 성장이 멈춘다는 것은 결국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은 결핍에서 나오는 법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니체 p.s 하지만 우린 언제쯤 가서야 만족할 수 있게 될까. 죽는 날까지 우린 만족을 모른 채 결핍과 굶주림에 시달릴 것이다.

불확실-두려움

불확실하기에 두렵다. 두려움은 확실하지 않다는 것, 모른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불확실하기에 가능성의 상태로 머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그만큼 명확하기에 달라질 수 없다. 불확실한 것이 두려울지라도 우린 그 불확실함을 즐기면서 받아들여야만 한다. 불확실함만이 가능성을 통해 미래를 더 낫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린 불확실함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야만 한다. 인생이란 빗속에서도 춤을 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도덕적 자부심과 도덕적 우월감

자부심과 우월감은 한 끗 차이다. 하지만 두 감정의 성질은 매우 다르다. 자부심이 강한 이는 타인을 공격지 않는다. 본인 그 자체를 믿기에 타인을 신경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허나, 우월감을 강한 이는 타인을 공격한다. 본인 그 자체보다 타인을 신경쓰고, 타인의 가치를 깎아 내림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가치가 내려간다고 해서 본인 가치가 올라가진 않는다. 그냥 평균이 하향 평준화 된 것일 뿐이다. 인터넷에는 우월감에 목말라 있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타인을 지적하고, 비난함으로써 본인을 도덕적 우월감을 뽐내려 든다. 얼마나 내세울 게 없는 비루한 인생이면 그럴까. 고작 충족하려는 것이 도덕적 우월감 뿐이라니! 도덕적 자부심과 도덕적 우월감은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도덕적 우월감..

좋은 건 아닌데 나빠지지 않기 위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성적이 좋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다. 하지만 성적이 안 좋은건 불행의 씨앗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수입이 높은 건 아니다. 수입은 오히려 성적보다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 졸업 후 어떤 준비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공부를 못한다고 재능이나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을 기대하는 것보다 공부하는 것이 그나마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길이다. 공부는 대게 성실성과 연관되어 판단된다. 공부를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낫다. 모든 것은 잘하기 위한 게 아니라 못 했을 때 불이익 받지 않기 위함이다.

차별에 대한 도덕적 관점과 이익

오래 전에 써두었던 주제를 이제야 꺼내본다. 바로 차별에 관한 도덕적 관점과 이익이다. 대게 차별이라는 것과 도덕이라는 것은 꽤나 오래된 사회적 논쟁이다. 차별은 도덕적으로 나빠요. 도덕적으로 나쁜 것은 하면 안돼요. 뭐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생각들 - 논쟁들이 사회 속에서 일어남에 있어서 단어의 경계선 - 정의부터가 불분명한 채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차별을 어디까지를 차별로 볼 것인지 경계선을 짓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경계선이 분명치 않으면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차별이다 아니다 이야기를 할 것이고, 그러한 기준이 합의 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도덕적 싸움은 집단적 독백의 현장으로서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토론은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함이지, 집단적 ..

평범한 것이 모자람을 뜻하게 된 이때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되면 글이 쓰고 싶어져서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다. 그리고 어떤 글을 쓸까 간략하게 메모해 두었던 수첩을 뒤적거리곤 한다. 그외에도 티토리를 보면 쓰다만 여러 글들이 임시저장되어 있는 걸 보곤 한다. 글을 한번 썼으면 마무리를 지어야 할텐데. 하잘 것 없는 글일지라도 글을 쓰다보면 어떨 땐 왠지 내키지가 않거나 글이 잘 풀어지지 않아서 그렇게 잠시 덮어버리게 된다. 그리고선 이렇듯 글을 쓰고 싶은 밤이 되면 이따끔씩 꺼내보는 것이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처럼 업무를 처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나면 생각이 점차 줄어드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정신적, 육체적 자원들을 현재 굴러가는 내 삶을 유지하는데 집중하다보니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

지난 날보단 현재를

살아가다 보면 이따끔씩 지난 날의 사랑이 얼굴을 빼꼼 내밀곤 한다. 살아가면서 점차 일상에 매몰되고, 감정 또한 메말라가는 것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지난 날의 추억들이라든가, 감정들 또한 더 이상 생생함을 갖지 못하고 단순한 글자체 혹은 그림의 나열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이따끔식 괜시리 감정들과 함께 지난 날의 모습 - 추억들이 되살아나곤 한다. 마치 메말라 붙은 땅에 물을 조금이나마 적시듯이 말이다. 그렇게 마음 속 선인장에 물 한방울 떨어지면 추억 - 감정과 함께 '이랬더라면..'하는 가정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허나 그것은 이젠 절대 바꿀 수 없는 과거라는 점에서 단순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금새 훌훌 털어버린다. 추억을 되새기며 감정을 곱..

두려워하지 말기

비대면의 시대가 되어서 그런가. 아니면 공급자와 수요자가 마주칠 일 없이 편하게 서비스를 공급하고 받을 수 있게 돼서 그런가.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려워하기보단 그 낯섦에 대한 거북함이라고 해야 하나. 자주 얼굴을 보거나 일상에서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과는 친밀하게 잘 다가가지만, 1회용 인간관계 - 잠깐의 필요함에 의해 만나는 관계는 굳이 관계를 맺고 싶지도 않고, 정체를 모른다는 경계심이나 낯섦 때문에 대면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편안함을 선호하다 보니 불편함에 대해 비선호하는 것을 넘어서서 두려워하는 느낌이랄까요. 오래전 한 다큐멘터리로 유행했던 '불편한 진실'이란 단어처럼, [어떤 사실-진실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어느 방식으로..

안주하지 말라.

살아가면서 느낀건데, 사람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불편함을 겪지 않으면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안주할 수 있는 범위가 존재한다면 - 살아가는데 지금 당장 큰 문제가 있지 않다면, 기존에 살아왔던대로 살아가려 한다. 어떻게든 삶이 흘러가기 때문이고, 흘러가는대로 살아가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변화하려면 직접적인 불편함을 느껴야만 한다. 물론 불편해도 좀 더 편하게 바꾸려 하지 않고, 그냥 불편한대로 적응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우리가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삶은 개선되지 않고 퇴보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안주해선 안 된다.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는 안주하는 것이다.

도구와 능력 그리고 앞날

오래 전 저는 도구의 효율성과 사람의 능력에 관해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이야기했던 것을 다시 꺼내보려 합니다. 도구가 발전될수록 사람의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도구가 발전될수록 우린 효율적으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게 되지만, 우리 자체의 능력은 퇴화하는 방향으로 변해갑니다. 어쩌면 해당 도구들을 사용하는 능력이 발전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도구들이 갑작스러운 일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일입니다.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온갖 도구들이 주변에 넘쳐납니다. 우린 약간의 돈만 지불하면 언제든지 해당 도구들을 신속하고 정확한 시간에 받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혹은 돈은 있지..

있는 그대로 : 진실은 없다.

'있는 그대로.' 라는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유사한 말로는 '말 그대로'가 있겠군요. 말하는 내용에서 덜어내지도, 덧붙이지도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길 강조하기 위해 종종 쓰이는 말입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라는 말만큼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행간을 읽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실을 언급할 때, 사람들은 그 사실들을 저마다의 생각대로 왜곡하여 해석할 것입니다. 진실은 없습니다. 인간은 행간을 읽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전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p.s 행간을 지배하는 자가 사람을 지배할 것입니다.

과거를 사는 인간

과거를 사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과거를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과거를 되내인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과거를 되내이는 현재일 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를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과거는 잡을 수 없고, 미래는 닿을 수 없다. 우린 오직 현재만을 붙잡을 수 있다. 앞으로, 앞으로. 현재만을 살아냄으로써 나아가 잡을 건 미래뿐이다. 우린 답을 찾아낼 것이다. 늘 그랬듯이. 미래가 긍정적으로 흐를 것이라 믿는 수 밖에.

세월 속의 기억들과 감정들

세월이 흐르며 모든 것들이 삭아가도 가슴 깊게 박힌 감정과 기억들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있다. 그러한 감정과 기억들은 어떤 까닭으로 한번씩 한번씩 상자가 열려 사람을 괴롭힌다. 난 과거를 존재 않았던 것으로 취급하기로 했었다. 실제로 많은 부분을 지워버렸다. 허나, 까닭 모를 증오와 분노, 슬픔만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어떠한 계기로 감정들이 떠오를 때면 사건조차 지워지고 이름조차 희미해질 과거의 인물들을 떠올리며, 만나게 된다면 비꼬고, 저주를 퍼부어 주고 싶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들은 뭐 그런 걸 가지고 아직까지 그러고 있느냐고 그럴 것이다. 분명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은 스스로 독을 품고 있는 것이다. 멋지게 사는 것이 복수고, 그대로 잊어버리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말은 분명 정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