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 991

녹아내리는 계절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계절. 퍼붓는 뙤약볕 아래 피어오르는 열기는 모든 것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환각마저 일으킬듯한 강렬한 빛과 찌르는 듯한 풀벌레 소리는 세상을 백일몽으로 초대한다. 모든 것의 경계가 희미하게 무너져 내린다. 너와의 기억처럼. 너의 모습도. 너와의 추억도. 열기와 함께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 내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더운 날 걷기 싫어하듯, 더운 날 걷는 것을 싫어하던 너. 그러나 너와 난 그 흔한 카페도 자주 가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 너와 난 좁고 더운 방에서 꾸역꾸역 한여름을 종종 보냈다. 그리곤 이따끔씩 밤거릴 거닐며, 해가 저문 뒤 밤바람이 뒤섞인 도시의 열대야를, 그 오묘한 열기를 만끽하곤 했다. 넌 여전히 더운 낮 거리를 싫어할 테지만, 기회가 된다면 너와 함께 이..

생(生) 2

오늘도 한 생명이 죽어간다. 파리는 죽음의 냄새를 맡은 듯 이 어린 생명체를 향해 달라든다. 힘없이 꺼져가는 생명체는 이 죽음의 기운에 저항할 힘도 없다. 무릇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이 순리라지만, 어린 것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 충분히 괴롭다. 엄습하는 파리들을 내쫓으며 이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곁에 있어주는 것이 해줄 수 있는 전부다. 최선을 다했음에 나머지 결과는 하늘의 순리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겠지만서도, 죽음 앞에서 미쳐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에 후회가 남아 괴롭다. 기회는 되돌릴 수 없다. 이 괴로움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이다.

핵심은 자본 소득 시스템의 구축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성이 증대될수록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렇기에 노동 소득 중심의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 아니라 자본 소득 중심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날, 불로소득이니 투기니 하며 매도하고 욕하던 그 시스템 말이다. 돈을 버는 방법은 대게 2가지다. 하나는 능력을 갈고 닦아 노동에 따른 소득을 증대시키는 방법이고, 하나는 노동이 아닌 주어진 자본을 가지고 수익을 증대시키는 방법이다. 전자는 대부분 월급이나 사업, 경영 등을 통해 이뤄지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향하는 방법이자 기초 자산 형성에 원천이 되는 부분이다. 후자는 과거 불로소득이니, 투기니 하며 사람들이 백안시 하던 것으로서, 가장 단순하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에서부터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에 투자..

각자의 인생

.....결국 각자의 인생을 걸어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 하나만 결정할 수 있으니, 우리의 인생 내에서 엮이는 다른 인생의 부분들만으로도 벅찬 것이다. 그래서 우린 타인에게 무관심한 각자의 인생을 걸어갈 수 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일생에 단 한 명만의 반려자를 맞이한다. 단 한 자리만이 여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시간적이든,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어쩌면 그것은 이 힘든 세상 홀로 서기 힘드니 둘이서 하나되어 헤쳐 나가기 위함인 것일지도 모른다. p.s 흔히 부부는 0촌이라고들 한다. 숫자가 0일만큼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헤어지면 혈연적 연결점이 없는 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채우기와 비우기

달이 차오르고 지듯이. 나이에 따라 체력이 정점에 이르다 노쇠하듯이. 채워야 비워낼 수 있고,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며 짊어졌지만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갈 순 없으니 버릴 건 버려야만 한다. 난 지금 비워내야만 하는 상황에 와 있다. 난 늘 뭐하나 확실히 버리지 못한 채 살았다. 그건 회피이자 도피였다. 이젠 두 손 가득 넘치는 것들을 내려놓는다. 잃지 않으려 아등바등 했던 지난 날의 모든 것과 함께. ....무의미한 노력은 없다. 없다고 믿고 싶다. 그 노력들은 그저 하나의 흐름이었다고, 그렇게 믿어야 한다. 무의미하다 생각하는 순간부터 정말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기에. 어떠한 결과가 있어야만 노력에 의미가 있다 한다면, 노력의 가치는 수단 그 이상이 절대로 될 수 없고, 노력..

순간

어느샌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다니는 게 시릴 무렵이었다. 산허리를 감싸 안으며 내려오던 어둠은 생각보다 빠르게 내려왔다. 오후라 하기엔 빛이 조금 모자랐고. 밤이라 하기엔 어둠이 미처 내려앉지 않은. 낙하하는 밤과 낮게 깔린 빛이 사라지는 저녁 무렵. 나는 하릴없이 걷고 있었다. 겨울 밤은 강풍 속을 헤쳐가는 늑대처럼 빠르게 나를 따라잡더니 이윽고 내 주머니 속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겨울 밤을 언제부터 싫어하게 됐을까. 나에게 있어 차가운 겨울밤은 낭만의 계절이었다. 좁아터진 방바닥에 앉아 겨울 영화를 보면서 같이 먹던 음식도. 같이 산책을 하며 보던 조명들과 귓가에 들려오던 캐럴송도. 밤바람을 맞으며 후후 불어가며 마시던 오뎅 국물과 허름한 술집에서 먹던 술도. 그렇게 난 짧은 겨울밤의 ..

외면해선 안되는 이유

예로부터 철학, 사회학, 정치학, 법학, 인문학은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근래에 들어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더욱 있는자들의 전유물이 되어 가는 듯하다. 전쟁 이후 너도 나도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때와는 달리 대한민국은 이제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생겨버렸고, 그 격차도 너무나 커져 버렸으니까. 그럼에도 위 학문들이 있는 자들만의 전유물이라고 기만이라 배척해선 안되는 까닭은 그것이 인류의 발전으로 도움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이 기만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의 학문적 성취가 인류의 토대를 쌓는다는데 도움되어 왔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직간접적으로나마 닿아있다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러나 이 학문이 있는 자들만의 소유물이 될수..

모든 걸 짊어지고 갈 순 없다.

한 때 미니멀리즘이 유행한 적이 있다. 지금도 간간히 시행하는 이들이 보이지만서도. 온갖 정보들을 필요한 만큼만 취사선택, 배제하듯이 온갖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공간 다이어트는 필요한 법이다. 살이 찌면 몸이 무거워지듯 공간도 가득차면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지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사는 확실한 공간 다이어트 요법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공간을 단장하는 것이다. 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놔두고 꼭 필요한 것만 담아오면서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필요한 만큼만 채워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비워내고 왔으면서 다시 채워나기로 결심하는 것은, 비어있던 것을 채워가는 것이 삶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살아가면서 공간은 채워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뇌와 심장에 ..

6시에 만나기로 약속하면

너와 6시에 만나기로 약속하면 나는 5시 반까지 나와 30분 동안 설렘 속에서 기다릴거야. - 언제였더라. 점심 약속을 잡으면 아침부터 정성스레 꾸미고 나가던 때가. 점심 때 어디로 갈 지 만나기 전까지 이곳저곳 알아보던 때가. 만나기 직전에 거울 보며 머리 다듬고 향수를 뿌리던 때가. 늘 오래 기다리면서도 만나면 좋아서 헤헤 거렸던 때가. 꽤나 오래된 시절이다. 이젠 내 일이 먼저고, 약속은 약속일 뿐이다. 약속에 과하게 준비하지 않으며, 기대하며 기다리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며, 시간은 예의만큼만 맞춘다. 한 때의 기다림이 사랑의 징표임을 믿는 때가 있었다. 기다림을 징표로 다시 사랑할 날이 올 때가 있을까.

비난하긴 쉬우나 솔선수범하긴 어렵다.

남을 비난하긴 쉬우나, 솔선수범하는 것은 어렵다. 남을 깎아내리며 자신을 올려치긴 쉬우나, 자신이 다듬어지지 않았다면 그 밑천이 금새 드러나고 만다. 세상사 대부분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ps 이미 혐오 컨텐츠가 훌륭한 돈벌이 수단이 되어 버린 이 시대에 밑천이 드러나는 것이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적당히 입다물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이 다반사인데.

붓이 칼보다 강하다면

붓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문필가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붓으로 이루어진 범죄가 칼로 이루어진 범죄보다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 억울해 합니다. 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붓이 정녕 칼보다 강하다면 그 책임 또한 무거워야 합니다. ps 이영도, 중에서 ps 2 예로부터 글은 지배층만의 전유물로서 지배층은 권력과 자산 형성을 위해 자신들의 지식과 글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왔다. 그렇기에 자신들에 향할 수 있는 직접적 무력엔 엄하게 처벌한 반면에 자신들이 해당되는 범죄엔 늘 관대했다. 오늘날에도 그때 그 관습이 남아 있어서 사람들은 육체적 능력보단 지적 능력을 우위로 취급하곤 한다. 글을 쓴다는 식자층들 중엔 자신이 세상을 이끌어간다는 착각에 빠져 오만하게도 선민의식 갖고 거들먹거..

돈 쓰는 법과 돈 버는 법

물론 둘 다 중요한 것이지만, 돈 쓰는 법과 돈 버는 법 중에 무엇을 먼저 익혀야 할까. 필자 생각엔 돈 쓰는 법이 아닐까 한다. 돈을 버는 것은 재능과 노력의 영역으로써 단기간에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하여 취직한 끝에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된다. 이것은 긴 시간을 요한다. 혹은 누군가는 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벌일 것인즉, 그것은 경제적 안목을 요구하기에 소질, 재능의 영역에 가깝다. 육체적인 일 역시 마찬가지다. 강도 높은 노동을 하려면 그에 맞는 육체적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돈을 쓰는 것은 습관이다. 습관은 꾸준하게 행한 끝에 자연스레 체화된다. 그것은 특별한 능력을 요구하지도 않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것은 의식적인 반복 작업이며, 본인의 욕..

생(生)

"저 어린 것도 살아보겠다고...." 작고 연약한 것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다. 실로 생명이 존귀한 까닭은 단 한번만 건널 수 있는 강을 건너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슬프면서도 찬란하기 때문이며, 실로 생명이 하찮은 까닭은 그 생을 유지하고자 다른 생을 장작으로 삼아 유지하기 때문이다. 나면서부터 생을 향해 발버둥쳐야 하는 것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숙명이지만서도, 생이 얼마되지도 않은 것이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것은 충분히 비극적이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자주 가던 우리 집 뒷골목 만화방 아주머니도 탕수육을 잘하던 집 앞 중화반점 요리사 아저씨도 동네 슈퍼 가게 할머니와 그 옆옆 꽃신발 아저씨도 각종 튀김과 떡볶이, 오뎅, 붕어빵을 팔던 분식집 아주머니도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어린 시절 내 세상의 전부였던, 항상 그대로 있을거라 믿었던 이젠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우리 집은 도로가 나면서 헐리었고 뒷골목 만화방 아주머니도 사라졌고 집 앞 중화반점도 문을 닫았다. 튀김과 분식을 팔던 분식집도 헐렸고 그 옆 집 세탁소는 다른 곳으로 이사갔으며 동네 슈퍼는 장사 안되는 동네 의원집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어떤 분은 세상을 떠나셨을테고 어떤 분은 새로운 곳에 가게를 개업했을 것이며 또 어떤 분은 다른 곳에서 취직을 하셨을 것이다. 우..

루즈해져 가는 인생

나이를 먹어가며 인생이 루즈해지는 것은 인생이 극적으로 변화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이를 먹으니 지켜야 할 것이 있기에 도전정신이나 패기가 사라져서 그렇다는 그저그런 소리가 아니다. 어떤 이는 말년에 이르러서야 잠재력이 폭발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중년에 들어 능력이 만개하기도 한다지만, 그것은 소수일 뿐이며, 대다수 범인들의 삶은 그러지 못하다. 지나온 세월만큼 삶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삶의 변화가 살아오던 것 이상으로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지닌 능력의 한계를 알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기에 막연하게 꿈꿀 수 있었고, 능력의 한계를 몰랐기에 갈망했던 젊은 날의 욕망들은 극적인 변화에 대해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인생이 변할..

퀘스트 게임

인생은 퀘스트 게임이 아닐진대. 시간이 흐르며 인생이 순차적으로만 흘러가서일까. 하나둘 곁에 있던 사람들이 퀘스트 아닌 퀘스트를 헤쳐나갈 때마다, '나는 이대로 괜찮은걸까, 진짜 ㅈ되지 않을까, 아니면 이미 ㅈ된 거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 한다. 퀘스트 게임이 아닌데, 남들처럼 순차적으로 흐르지 못하는 것에 초조함이나 자괴감, 무력감이 비추곤 한다. 난 나약하고 변변치 못해서 내 원하던 대로의 삶을 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난 나대로 내 삶을 나름 만족하고 있지만, 주변과 다르다는 그 이질감이 때때로 부담으로 다가오곤 한다.

돼지와 소크라테스 그 사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길 바란다. 도덕도 좋고, 신념도 좋고, 정의도 좋지만, 그것들은 삶 뒤에서나 오는 것들이다. 우릴 먹고 살게 해주는 것은 일부 단체들이 입으로만 외치는 도덕적 신념이나 정의가 아니라, 먹고 살려는 저마다의 역할이나 행동들이다. 도덕적 신념이나 정의를 현실에 안착시키는 것은 일방적인 주장과 강요가 아니라 서로가 이득을 볼 수 있는 방안이다.

가치

누군가에겐 구슬땀을 흘려 버는 돈이, 누군가에겐 목숨을 걸고 버는 돈이, 누군가에겐 손짓 하나, 눈짓 하나로 버는 돈이기도 하다. 가치란 무엇이며,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돈의 결과물만 놓고 본다면 눈짓 하나, 손짓 하나가 목숨을 거는 일보다 능력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과연 누군가의 눈짓 하나, 손짓 하나가 누군가가 목숨 걸고서 만들어 내는 그 무언가보다 가치가 높다 말할 수 있는가. 우린 돈의 결과물만 가지고 가치를 논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높은 것이 돈을 가져오는 법이다. 시장경제에선 가치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돈이니까. 그러나 그 가치가 항상 일대일로 대응되듯이 물질적인 액수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물질..

고백

그 날은 날씨가 더웠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신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면서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끝내 입을 다문 그 날. 터져 나오려는 말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며 바보같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멋대가리 없는 고백이었다. 입을 다물거면 말을 꺼내지 말든가. 말을 꺼냈으면 확실히 말을 하든가. 그런 나를 두고 무슨 말하려는 거냐며 채근했다. 결국 실토하듯이 더듬더듬거리며 멋대가리 없는 고백을 했다. 사귀어 달라는 내 고백에 생각해보고 답변을 준다고 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우물쭈물 하다 끝내 속으로 삼켜 버리는 나를 말할 수 있도록 떠밀어준 건 당신이었으니까. 어쩌면 그 날 자신의 숨기고 싶은 개인사를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던 것도, 그리고 자신이 살던 곳까지 ..

재회

우리가 서로에게 진정 마음이 없었더라면 자연스레 헤어졌을 것이다. 여느 연인들이 헤어지듯이. 그러나 우린 길고 긴 감정의 줄다리기 끝에 마침표를 찍었다. 내 감정과 네 감정들은 서로 엉켰고 서로를 향해 생채기를 냈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서로를 향해 맞춰주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자그마한 이유라도 만날 기회를 붙잡으려 했고, 만나러 가기 위한 준비시간은 늘 설랬다. 조금씩 커져가는 마음만큼이나 서로에 대해 기대감이 커졌던 탓일까. 품게 되는 기대가 커질수록 실망감도 커졌다. 우린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우린 감정의 줄을 내려놓는다. 서로 등을 돌린 채로. 더 이상 우리의 감정들이 더 뒤엉키는 일은 없을 거라 믿었다. 그것이 서로에게 좋은 거라고,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

국제기구의 민낯

모든 것은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국제기구는 일련의 사태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UN은 상임국가의 반대 앞에서 무력하다. IOC는 평화와 화합이 아니라 각종 로비의 산물이다. WHO 현 총장은 중국의 눈치를 보기에 바쁘다. 국제 기구는 이제 더 이상 국제 기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돈에 목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들은 최소한의 소신조차 잃었고, 기부금과 분담금에 눈이 멀었다. 국제 기구는 이제 돈을 탐하는 무국적 정치적, 관료적 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국제기구로서 위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강대국 앞에서도 국제 공동체로서 주장을 굽히지 않는 소신과 명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을 통해 보여준 편파적이고, 무력한 모습은 국제기구의 존재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국제..

의대,약대 40%, 지역인재 할당제에 대한 생각 마무리

과거에 필자는 지역인재 할당제에 대해 비판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지방 의대, 약대 정원의 40%를 지역인재로 뽑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추후에 지역인재 할당제로 이 티스토리를 찾아오는 이가 많아질 것에 대비하여 글을 정리해본다. (쓴 지 4년이나 됐는데 지금도 그 글을 보러 오는 이들이 많다.) 과거 공기업 지역인재 할당제 대해 필자가 비판한 근거는 '대학교 졸업을 근거로 한 지방인재'라는 것이 정책의 취지와 알맞지 않다는 점이었다. 지방의 인재들이 수도권 대학을 나와 수도권에 취직함으로써 지방이 수도권에 지속적으로 인재 유출이 되는 것을 타개하는 것이 이 정책의 목표였는데, 지방대를 기준으로 하면 우수 인재라는 기준 자체가 어긋나기 때문에 문제였다. 이는 다른 정책과 연동되어 문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