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이따끔씩 지난 날의 사랑이 얼굴을 빼꼼 내밀곤 한다.
살아가면서 점차 일상에 매몰되고, 감정 또한 메말라가는 것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지난 날의 추억들이라든가, 감정들 또한 더 이상 생생함을 갖지 못하고 단순한 글자체 혹은 그림의 나열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이따끔식 괜시리 감정들과 함께 지난 날의 모습 - 추억들이 되살아나곤 한다. 마치 메말라 붙은 땅에 물을 조금이나마 적시듯이 말이다. 그렇게 마음 속 선인장에 물 한방울 떨어지면 추억 - 감정과 함께 '이랬더라면..'하는 가정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허나 그것은 이젠 절대 바꿀 수 없는 과거라는 점에서 단순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금새 훌훌 털어버린다. 추억을 되새기며 감정을 곱씹던 과거와는 달리 금새 훌훌 털어버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감정이 무뎌졌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훌훌 털어버린다는 것이 꼭 감정이 무뎌진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혹은 지금 당장의 현실을 살아가는 것에 신경을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레 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현재를 바쁘게 몰아부쳐서 과거를 잊기도 한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가끔씩 정말 문득 지난 날이 모습을 내미는 것을 보면 마음이라는 것은 어쩌지 못하는 듯하다.
예전에 허지웅의 '불행의 인과관계'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의 요지는 세상의 수많은 불행들이 뚜렷한 한 가지의 원인에서 비롯될 리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일의 인관관계에서 명확한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뿐,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행을 막을 수는 없기에 불행의 원인에 집착하지 말고,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하자는 글이다. 마찬가지다. 꼭 불행의 원인을 찾는 것 뿐만 아니라, 처음과 끝을 맞이한 지난 날을 두고서 이리저리 생각해봐야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허지웅이 말한 것처럼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 뿐이니 현재 일에나 신경을 집중하자.
p.s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과거로부터 비롯되었지만, 과거 그 자체는 의미가 없다.
현재가 있어야 과거도 의미가 생기는 법이다.
p.s 2
감정에 흠뻑 취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허나 나이 먹어도 늘 감정에 취해 있는 것은 꼴불견이다.
p.s 3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감정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 감정이 무뎌졌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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