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360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테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리고 나도 알고 있지만 잘 지키지 못하는 사실."나이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수록 좋다."내가 누군가를 붙잡고 훈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주섬주섬 쓸데없는 소리를 잘하는 편이다. 말이 참 많은 편인데, 이것이 입이 싸거나 가벼운 느낌을 주는 편은 아니지만, 구구절절 군소리가 많아 따분한데다 결국 제 살을 깎아먹는다. 아무래도 말을 하다보면 나에 대한 정보를 꺼내기 마련이니까.내 정보를 스스로 밝히는데 꺼리낌은 없을지라도 문제는 그 정보에 대해서 상대방이 어찌 받아들이고, 어찌 활용하느냐이다. 고로, 생각없이 밝히는 정보일지라도 그것이 하나의 약점이자, 공격할 지점일 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며 입을 다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약점이 되어 놀림감..

노동소득만으로 5억 적자, 컨베이어 벨트가 되어버린 우리 세대

오늘 뉴스기사를 보고 든 생각 2가지.1. 우리의 인생은 부모와 자식간에 빚으로 이어진 무한한 컨베이어 벨트와도 같다. 2. 대한민국 자본주의가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뉴스 기사를 하나 봤다. 왜 헬조선인가 했더니..평생 일해도 '5억 적자' 라는 기사였다. 원래부터 뉴스 기사는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과장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고, 그것들에 대해 통계를 가져와서 꾸며대는 것이 일이지만서도 아무래도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다.이 기사에서 말하는 것은 이전소득이나 자산소득을 제외한 노동소득만을 따진 지출과 수입의 비교이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라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많은 이들은 노동소득으로 여러 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이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그..

잠깐의 묵념과 오만함

며칠 전에 떠올렸던 글을 이제서야 써내려간다.얼마전 일가족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두고 기사에서는 과거의 또 다른 일가족 자살 사건에 대한 언급과 함께 달라지지 않은 정부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현 사건에서 그들이 어째서 자살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연일 보도했다.어느 새 죽음에 대해 무감각해졌는지 그럼에도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개인이 아닌 일가족이 자살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릴만한 일이긴 하지만, 일가족이든 개인이든 어차피 기사에는 자살이라는 단어 한 마디와 하나의 사건으로 언급되고 말 일이니까. 그냥 기사를 보면서 무미건조한 빈말로 '안타깝네'라고 말할 정도 였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당시에 짤막하게 글을 썼으나, 여지껏 미루다가 이제서야 글을 마무리 지어 올리는 걸 보면 확실..

감정, 그 추한 것에 대한 결벽증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매우 다양하다. 보통 희노애락애오욕이라고 하던가.다소 편향적인 발언이지만, 감정만큼 추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시기나 질투라고 불리는 이 감정들이 굉장히 추하면서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해서 그것이 전적으로 허용되거나, 표현하는 것에 제약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기 때문에 악에 대한 감정은 서로를 위해서 자중하고, 일정부분 사회적 합의로 제약을 거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사회 시스템만을 위한 조치다. 사회를 벗어나 혼자 살아간다면 굳이 악감정을 제약할 필요는 없지만, 본인이 괴로울 거라 생각한다. 여튼 간에 ..

외로움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떠넘기는 것이다.

당신을 생각할 때면 나는 한없이 초라해지곤 했다.살아가면서 내가 목표로 했던 것들을 이루지 못했을 때나 혹은 이러한 사실들을 되새기게 될 때면 자괴감에 빠지거나 한심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지만 나 자신이 진정으로 하찮다고 여기진 않았기에 부끄럽진 않았다. 그러나 당신을 생각할 때면 나 자신이 하찮아져서 부끄러워지곤 했다.그러나 그건 자격지심이 아니었다. 당신과 비교하면서 당신은 잘났는데 나는 상대적으로 못난 놈이라 여긴 것은 아니었으니까. 단지 한 사람의 몫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데서 오는 내 부끄러움이었다. 사회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과 함께 하려면 적어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한 사람의 몫은 해야 했으니까. 기왕이면 당신까지 함께 이끌어 갈 수 있는 커다란 사람 된다면 더 좋고.어찌됐든 당신..

아이들 사이의 주거 차별적 표현에 대한 단상

오랜만에 쓰는 뉴스거리다.며칠 전에 아이들 사이에서 주거차별이 횡행하다면서, 월거지나 전거지와 같이 주거로 사람을 나누어 부르는 경우가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필자는 결혼도 하지 않았거니와 자식 또한 없고, 솔직히 기사는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지라, 이것이 횡행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2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는데, 하나는 이런 현상이 적게나마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뉴스에 등장했으니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더 퍼질 거란 점이다. (가만 보면 뉴스 기사는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책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조회수를 위해 오히려 자극적인 문구로 분란을 조장한다.)여튼 간에 이러한 '주거 차별'이 새삼스럽게 처음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차별적인 용어가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며, 이것이 의..

겪어보기 전까진 대부분이 무가치한 정보들

너무. 뜻 :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넘어선 상태로.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너무 긍정적으로 살 필요도 없지만, 너무 부정적으로 살 필요도 없는 현실.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른 한쪽을 볼 수 없다. 의도하여 다른 한쪽을 안 볼 수는 있지만, 의도치 않게 다른 한 쪽을 볼 수 없다면, 인생의 굴곡 속에서 미처 대비치 못하고 더 크게 고통받으리라.대체적으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정보들은 부정적이며, 긍정적인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알짜배기 정보는 퍼지면 퍼질수록 그 가치가 내려가기에 가족이나 친척, 주변 지인들에게나 슬쩍 알려줄 뿐, 매번 앓는 소리만 나오는 것이 다이다. 일본인이 음흉하다느니, 양면적이라니 해도, 시기와 질투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 사람도 마찬가지..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밤이네요. 날씨가 쌀쌀해지는 밤이 올 때면 당신을 그리워하곤 합니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흔들리지 않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내 능력은 너무나도 미진해서 당신의 선택이 늘 현실을 마주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좀 더 무리해서라도, 또 그럴 능력이 있었더라면, 저는 기꺼이 그 선택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전 무능력 했고 포기라는 쉽고 빠른 길을 택했습니다.그렇게 내버려둔 당신은 늘 마음 속에 숨어있다 나타납니다. 포기는 나에게 열병을 남겼고 당신의 그리움은 열꽃처럼 피어오르다 저뭅니다. 그럴 때면 저는 약을 먹듯이 당신 생각을 삼키며 글을 씁니다. 분명 언젠가는 약을 먹지 않아..

사회의 몰락, 빈부격차가 커져간다는 것

오래 전에 빈부격차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해, 빈부벽차가 커졌을 때 갖는 의미에 대한 것이었지만서도. 그렇다. 빈부격차가 클 경우,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사회적 분열과 치안불안이 야기되며, 또한 정부에 잘못된 신호를 전달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를 늘리고, 이는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왜곡시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며, 이 글은 빈부격차가 '커져가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글이다. 빈부격차가 커져간다는 것은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며, 이는 분명히 사회적 위기다.중산층이 사라지는 경우를 모형으로 그렸을 때, 대표적으로 모래시계형이 있지만, 피라미드형, 역피라미드형도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척도로 역피라미드형이 나올 경우는 불가능에 가깝다. 다수가 ..

my way

세상은 결과만을 보기에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결과의 가치로만 바라보기 쉽다.그러나 그러한 가치 평가는 대부분 만족스럽지 못하다. 스스로가 해온 것들의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만족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큰 결과일 것인가. 사람들의 욕심은 끝없고, 성공할 때마다 그 다음 성공의 크기는 더 커져갈 뿐이다. 만족은 한순간이지만 불만족은 영원하기에.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결과로 결정하기 보단 나의 선택 이후의 걸어온 길로 결정해야 한다. 선택엔 옳고 그름이 없고, 선택은 결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린 결과를 보고서 '아, 그 때 그렇게 선택했더라면...'하고 후회하곤 한다. 그러나 선택은 늘 결과를 모른 채 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선택은 선택한 그 순간으로 다 끝난 것이다. 선택과 결..

인터넷 커뮤니티, 생각을 멈추게 만드는.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것만 같다.사실, sns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이 대단하긴 한가? 아니, 사실 대단한 글들도 많긴 하다. 논리적 구조를 갖추고, 충분한 조사를 한 뒤에 올리는 글들도 있고, 해당 분야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를 법한 정보들도 올라오기도 한다. 인터넷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아서 이곳에선 법,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의료, 과학 등 모든 것에 대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인터넷은 분명히 키워드, 주제를 통해 세대에 따른 관심사나 사회의 흐름을 일부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대체적으로는 그냥 흘러가는 듯한 글이 대부분이다. 필자가 이 공간에서 넋두리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듯이, ..

닳고 닳다

살다보면 혹은 나이를 먹어가다 보면 다들 닳고 닳아져간다고들 말하곤 한다. 그것은 마치 제품이나 기계들 같은 것들이 낡아가거나 고장나는 것처럼 사람의 육체가 노쇠하는 걸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정신적인 부분이 닳아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더 큰 것일지도 모른다.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닳고 닳아지면서 자신의 곁에 자리 하나 비워둘 정도의 여유조차 없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 정확히 말해서, 그 옆자리는 비워져 있는 것이지, 비워둘 여유는 없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들이 SNS에서, 커뮤니티에서, 인터넷 방송에서, 모니터 너머의 행복을 바라보곤 한다. 마치 진열되어 있는 상품을 바깥에서 아이쇼핑 하듯이...나는 언제부터 닳아졌을까. 어느 순간부터 누구 한 명을 곁에 두기 어려울 정도로 닳게 된 나를 ..

인터넷이나 SNS를 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2가지

인터넷은 개인공간이 아니라 광장이다. 인터넷이나 SNS에서 돌아다니는 모든 글이나 영상은 당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우리는 인터넷에서 수 많은 싸움들과 논쟁들을 보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싸움들과 논쟁이 의미없는 이유는, 그리고 그 싸움들과 논쟁들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개로 되어 있는 모든 영상이나 글은 누구나 다 찾아와서 볼 수 있지만, 그 영상이나 글을 올린 사람은 모든 대상을 고려하고 작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동화책을 만드는 작가들이 아이들의 특정 나이대를 고려해서 작품을 만들듯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나 영상도 대체적으로 시청자들이나 독자들을 고려해서 만든다. 예를 들어 스포츠에 관한 글을 올리는 사람은 해당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혹은 해당 스포츠..

호사가들의 가십거리가 되어버린 죽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접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나치거나, 인지하더라도 내 사람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없는 이상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생각해보라.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상의 어딘가에서는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곳이 중동이나 아프리카 혹은 어느 남 모를 가정집의 지하실에서 죽어간다고 하면 나는 그것을 인지할 수가 없다. 또한 그 죽어가는 사람이 나와 전혀 무관한,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면, 온 세상 인류를 사랑할만큼 마음이 넓지 않는 나는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 무덤덤할 것이다. 대체적으로 '죽었네'정도로 끝나겠지만 안타까운 사연이나 장면이 추가된다면 약간의 동점심을 갖게 될 것이다.나는 소시오패스가 아니다. 이성적..

당위법칙들, 지적질 이전에 기본예절부터

당위의 원칙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무척이나 쉽다. 정확히 말해서 당위의 법칙만을 원칙으로 삼아 잣대를 적용시키거나 남을 지적하는 것이 쉽다는 소리지, 사실 당위의 원칙대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충분히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세상은 당위법칙대로 흘러가지도 않고, 당위라는 것은 허구에 가깝기 때문이다. 당위는 애초에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임시 약속에 불과하니까.그런 사람들이 있다. 모든 일들과 사건에 당위법칙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그들에 당위법칙은 마치 성서에 나오는 모세의 십계명과도 같아서 절대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그러한 신성불가침인 규칙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여기는 법과 불법을 구분짓는 당위법칙은 '최소한'의 약속일 뿐이고, 도덕적인 것은 얼마든지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그리고..

자기부정의 채찍질 그리고 도전과 경쟁

어제 비가 내리고 나더니 날씨가 쌀쌀하네요. 오후에는 해가 나온다고 하던데, 기대해봐야겠어요.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분명히 필요해요. 그것은 자신을 믿는 것만큼이나 중요하지요. 그러나 그러한 자기부정이 사실과 현실에 기반하지 않고, 단순한 자학에 그친다면 그것만큼 독인것은 없어요. 그래요. 독. 그것은 마음 속에 스며들어 있다가 갑자기 불쑥불쑥 나타나서 자존감과 마음을 갉아먹지요. 그래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회피하게 만들어요.하지만 현실에 기반한 자기부정은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만들어 주지요. 일종의 채찍질이라고 할까요.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잘못되면 당당함을 넘어서 오만함으로 가기 쉬워요. 과신하게 된다고 하죠. 그리고 그것 역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지요. 그렇기에 적정수준의 자기부정-..

공정경쟁과 학벌주의의 괴리감 그 원인들

오래 전에 필자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에 대해 리뷰를 한 적이 있다. 그 책은 사회적으로 학벌지상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는 달리 대학생들 상당수가 학교별로, 정시와 수시별로 급을 나누며, 오히려 학벌에 의한 차별을 찬성한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도 그에 대해 많이 공감을 하며, 학벌지상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이기도 했다.며칠 전에 경향신문에서 '촛불을 든 고려대 학생들의 모순과 이중성'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대체적으로 내용은 공정을 내세운 학생들이 학벌주의를 못 벗어나고 특권 강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 역시도 그 기사가 상당부분 일리가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았다.우리는 공정이라는 기준을 어디서부터 잡아야 할까. 어째서 학생들이 학벌주의를 옹호하게 되는 것..

전문성이 요구되는 노동시장과 가난의 대물림

어제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나더니 오늘은 해가 뜨네요. 날씨가 더워질 모양입니다.오늘 아침에 신문 기사를 한편 봤어요. 기사라고 해봐야 커뮤니티에서 올라온 인상깊은 글을 하나 소개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요. 그래도 그 글이 퍽이나 인상깊어서 찾아 읽어보고선 이렇게 잠깐 글을 써요.글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그러나 생각만으로 글을 써내려가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오히려 생각만으로 이루어진 글보다 경험이 녹아있는 통찰력 있는 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사랑받아요. 공감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생각들을 표현했다는 뜻이겠지요.그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가난은 몸과 마음을 낡게 만들어요. 정확히 말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가난에 의해 낡..

기억하려고 애쓴다는 것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애쓴다는 것. 기억하려는 의지와 행위는 망각으로부터 끝없이 도망치려는 혹은 맞서 싸우는 행위다.유형의 것들은 소유하고 있으면 그만이지만, 무형의 것들은 기록이라도 해야 그나마 보존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보전조차도 언어능력상의 한계와 해당 기억의 미화, 왜곡으로 인한 불완전한 보존일 뿐이다.여튼 간에 이러한 잊지 않으려 애쓰는 나에게서 메모의 강박이나 사소한 것의 집착이 느껴질 때면 나는 오래전에 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내곤 한다. 당시엔 소중하게 여겼지만 어느 순간 잊고 지냈던 것들의 파편들을 말이다. 그리고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당시에 소중하다 여겼지만, 그것을 잊고 지내는 동안 네 삶에 어떤 영향이 있었나?" "내가 현재 기억하려 하거나 소유하려는 것들도 잊고 지냈던 지난..

오래도 했다.

이렇게 햇빛이 비추고 바람이 볼을 쓰다듬는 기분좋은 날에는 문득 너를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그런 너를 그리기 위해 이렇게 종종 글을 쓴다.'넌 상담사 같은 직업을 하면 잘할 것 같아'라고 말하던 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난 실제로 설명하거나 말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성격이 모나지 않아서 선생님이나 공무원, 상담사가 잘 어울렸다.너에게 나는 어떤 이미지나 어떤 모습이었을까. 넌 나에게 '넌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라든지 '넌 상담사 같은 직업을 하면 잘할 것 같아'와 같은 말들을 나에게 하곤 했다. 그런 너의 말 속에서 네가 나에게서 척척박사나 달변가의 면모를 찾아내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곤 했다.곰곰히 생각해보면 난 너에게 별다른 말을 해주진 않았던 것 같다. 너만의 매력이 가장 너다운 것이다는 ..

언론 탄압과 낙인 - 책임회피와 권력

요즘 언론은 너무나도 무책임하다.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하면서 그 '앎'이라는 것에 제대로 된 책임감 하나 없다.제대로 사실여부를 따지지 않고 '아니면 말고'식으로 보도하며, 왜곡된 정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 언론에 행태에 대해 뭐라 비판하면 언론 탄압이니 뭐니 하면서 정작 언론이라는 펜대를 가지고서 이 사람, 저 사람 낙인을 찍어 마녀사냥에 앞선다.늘 이슈에 목말라 하다보니, 조금이라도 유명인이 얽혀 있기만 하면 일단 기사를 써대고 본다. 후에 진실이 밝혀져도 그 역시 또 다른 하나의 기사로 내보내고 끝이다. 낙인에 대한 파급력이 강력한 현대 사회에서 이에 대한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언론은 분명히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저들은 그 책임에 대해 언론 탄압..

불안, 걱정, 부정적 생각은 꼬리를 문다.

걱정, 불안, 부정적 생각들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그것들은 늘 우리를 생각만 하게 만들고, 행동하지 못하게 만들죠. 주저하게 만들어요.그래요. 우리는 우리가 가진 정보들로 최대한 미래를 예측하려고 해요. 하지만 모든 정보를 얻는 것에는 한계가 있듯이, 우리는 모든 것들을 전부 고려할 수는 없어요. 늘 개괄적으로 엉성하게 추론해놓고 사이사이를 메꿔갈 수 있을 뿐이에요. 그 사이사이가 우리의 미래지요.그러나 우리 안에 잠복해 있는 이 불안들은 그 '사이사이'를 공포로 만들고, 이 공포를 해소시키기 위해 우리가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도록 만들지요. 그 끊임없는 정보들은 완벽한 계획으로 돌아올 테니까요.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공포감은 우리가 계획을 세우게 만듦과 동시에 '어떻게 그 사이를 메꿀까?'라는..

고독사 -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는

1. 개인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 시대에 공동체를 강조한다니 무슨 말인가 싶다.그렇지 않은가? 이제 인간은 얼마든지 홀로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돈만 있다면, 옷도 음식도, 주거생활도, 모든 것을 편하게 제공받을 수 있다. 하다 못해서 구매도 대행해주고, 장례도 대행해주고, 하객도 대행해주고, 퇴사도 대행해주고, 온갖 사회생활에 필요한 행동 양식들 조차도 돈만 있으면 서비스 산업을 이용해서 처리할 수가 있게 되었다.하지만 인간이 홀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겉보기에만 그럴 뿐, 실상 인간의 삶은 과거보다 더욱 더 긴밀해졌다. 단지 그러한 긴밀성이 서비스의 교환과 물건들로 감추어지고, 숨겨졌을 뿐이다. 수요자가 없으면 공급자가 없듯이, 문명을 공급하는 자가 없으면 수요를 하고 싶..

공동체주의가 바탕이 된 개인주의

개인주의가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 vs 공동체주의가 바탕이 된 개인주의개인주의가 확립된 상태에서 발생되는 공동체주의는 상호의 존중 아래 협력과 협동정신이 발휘되지만, 공동체주의가 확립된 상태에서의 발생되는 개인주의는 공동체 문화를 깨부수는 이기주의자라는 낙인만이 찍히는 겨우가 많다.분명 개개인들을 뭉치게 하는 것은 힘들지라도(공멸의 가능성), 개개인들에게 그것이 이득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면 충분히 뭉치게 만들 수 있다. 허나 집단에서 개개인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형태를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렵다. 개개인을 존중하자는 방향은 이미 거대한 하나의 힘이자 흐름인 집단과 미약한 개인과의 싸움으로 흐르기에 배척과 낙인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불과 몇 해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명백히 ..

대한민국 경제를 때리는 일본의 속내 그리고 한일관계의 전망

요즘 나라 경제가 매우 위태롭다. 토요일과 일요일 긴급회의 및 대책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주가는 하향선을 그리며 결국 코스닥 시장에 사이드 카가 발동됐다. 정치적, 외교적 불안정성은 경제에 있어서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정치적, 외교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내가 조심스러워 해도 상대국이 지랄하면 무슨 수로 그것을 대비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불과 며칠 전 G 20 정상회담에서 자유무역 운운하던 인간이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는데 말이다.그렇다고 난 지금의 현 정부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대책을 못 세웠다고 국가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려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겠지만서도, 굳이 비판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단지 앞..

비난을 위한 반대,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입장들

깊은 고민은 없어지고, 무조건 편가르기, 남탓만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대다. 관계가 이리저리 얽혀 있는 현대에선 무작정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는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문제를 분석하고, 판단하여 대처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중립적인 입장인 척, 현실과 멀리 떨어진 제 3자인양 판단하면서 비판이 아닌 비난질을 하는 것이다.우리는 현실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 개개인들은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눈에 띄지 않고,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분명하게도 우리의 현실 속에서 작용한다.하지만 많은 이들이 TV 프로그램을 보듯이 우리 삶과 유리되어 있다는 식으로 정치나 외교를 비판하곤 한다. 물론 한명의 시민으로서 정치적인 ..

1노력 = 1보상이 아닌 현실

불행한 사람은 갖지 못한 것을 사모하고, 행복한 사람은 갖고 있는 것을 사랑한다.-하워드 가드너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무슨 말이냐면, 1노력이 1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리다.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게임하는 행동이 즉각적인 반응과 보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릴적부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노력은 언젠가 보상받는다.'와 같은 소리를 듣고 자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노력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사회에서 자라서일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은연중에 노력은 언젠가는 보상을 받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 물론 이 믿음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 믿음이 틀렸다면 인간은 영원히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고,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믿음이 과거엔 전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젠 이러한..

입체적인 사람과 사람을 판단하는 이미지의 단면성

며칠 전부터 '이미지'에 관하여 글을 한편 쓰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최근에 어떤 사건이 하나 터졌다. 공인이었던 그는 이번 일로 과거에 했던 발언까지 새롭게 조명받았고, 과거의 발언들을 뒤짚는듯한 행동 때문에 결국 위선자가 되고 말았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이런 의미에서 인터넷의 기록은 참으로 무섭다. 과거엔 적절한 저장매체 수단이 없었기에 TV로 기록되는 공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선적인 모습을 감추기 쉬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추고자 해서 감춘 것이 아니라 저장보다 망각이 더 크게 작용했기에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젠 망각보다 저장이 더 크게 작용한다. 각종 녹음기, 카메라, 인터넷, 휴대폰, 외장하드, USB, 비디오 카메라 등등 저장매체는 차고 넘치며, 이러한 ..

솔직함, 그 어설픈 것에 관하여

솔직함에는 2가지가 있다. 묻는대로 답하는 것과 묻기 전에 먼저 알리는 것. 물으면 답은 하겠으나, 구태여 먼저 이야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설픈 솔직함보단 침묵이 낫다고 생각한다. --- 우린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나쁘다고 배우고, 솔직함을 정직함과 연관지어 선한 것, 좋은 것으로 배운다. (물론 예외적으로 좋은 의도로 행한 거짓말들을 백색 거짓말이라 칭하지만 말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해는 매우 중요한 화두이며, 이를 위해선 소통이 강조되는데, 그 소통을 위해서 솔직함은 거의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매번 거짓말만 하는 사람과 어떻게 소통을 하며, 이해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백색 거짓말과 같이 솔직함이라는 것이 마냥 좋은 것-올바른 것이 될 순 없다. 이는 ..

제한된 합리성과 넓어져버린 시야, 정보화 사회에서의 필요 능력들

정보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제거되며, 가공된다. 그러나 분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와는 달리, 이러한 정보들을 가공하거나 변형하는 것은 만성적으로 시간과 인력난에 시달린다. 또한 악의적으로 정보를 생성하거나 왜곡하는 경우도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정보화 시대가 진보가 아니라 퇴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만든다.그렇기에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정보 자체보다는 정보의 신뢰도가 우선이다. 실제로도 수 많은 국가에서 정보 자체보다는 정보의 출처와 신뢰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엄청난 자금과 인맥을 교차검증을 하는데 쏟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개개인들에겐 정보를 가려내고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