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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쟁과 학벌주의의 괴리감 그 원인들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10. 4. 10:43

오래 전에 필자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에 대해 리뷰를 한 적이 있다.
그 책은 사회적으로 학벌지상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는 달리 대학생들 상당수가 학교별로, 정시와 수시별로 급을 나누며, 오히려 학벌에 의한 차별을 찬성한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도 그에 대해 많이 공감을 하며, 학벌지상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며칠 전에 경향신문에서 '촛불을 든 고려대 학생들의 모순과 이중성'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대체적으로 내용은 공정을 내세운 학생들이 학벌주의를 못 벗어나고 특권 강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 역시도 그 기사가 상당부분 일리가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공정이라는 기준을 어디서부터 잡아야 할까.
어째서 학생들이 학벌주의를 옹호하게 되는 것일까.

이 생각을 끝으로 과연 학벌주의는 '나쁜 것'이며, '차별하는 것'으로써 배척 받아야 할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20대 후반에서부터 30대 초반은 학벌지상주의가 정점에 달했을 때, 고교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사교육 열풍이 불었고, 재수, 삼수도 흔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대학교에 입학한 세대가 졸업할 때쯤에 나오는 말이 '학벌주의는 문제다'였다. 고교시절까지만 해도 '학벌'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강조받아서 서로 경쟁해가면서 치열하게 공부해서 대학교를 입학했더니 이제 와서 하는 말이 '학벌주의'는 배척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학생들이 이에 대해 수긍할 수 있을까.
그 학벌을 위해 그렇게 잠 안자고 피터지게 공부해왔던 내 지난 고교시절이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좋은 대학교를 가면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고교시절에 그렇게 공부를 해왔는데, 이제와서 학벌주의를 없애고, 제로베이스로 다시 경쟁하라고 한다. 물론 좋은 대학교 들어가기 위해 해왔던 노력들이 어디가지는 않는다. 실질적으로 지식과 지적능력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지식과 지적능력이 공증되던 것이 이젠 사라지게 된 것이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퀘스트를 달성해서 좋은 장비를 받았는데, 그 장비가 쓸모없게 된 것과 같은 것이다. 당연히 퀘스트를 해왔던 사람들은 반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학벌은 공정한 경쟁(?)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대학생들은 학벌주의를 옹호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회적으로 학벌주의는 문제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국가적 사회적 입장이 철저하게 반영된 것이다.
일단 학벌주의로 인해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한 사회적 비용과 손실이 너무 크다. 재수, 삼수, 사수를 하고 사회진출이 늦어지고, 그에 따른 사교육 과열로 인한 경쟁비용은 사회적, 국가적으로 손해인 셈이다. 그렇기에 철저하게 손익-비용의 결과 국가적으로는 정책을 선회할 수 밖에 없다.

두번째로는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이들과 현실에 치인 학생들과의 괴리감이 크다는 것이다. 지금은 기득권이 되어버린 50~60대들이 과거 사회에 진출할 때, 학벌, 인맥, 혈연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과거엔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사람의 능력이 정말 출중하든 출중하지 않든 간에 피치 못하게 희생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에 진출하고 보니 억울할 사람들도 많은 법도 하다. 분명 내가 저 새끼 보다는 실력이 더 나은데, 저 새끼는 대학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더 좋은 취급을 받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해왔던 세대이기에 그들은 자식들 사교육에 그렇게도 힘을 썼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학벌, 인맥, 혈연에 대해 비판적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이젠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득권이 되었다. 그들은 그 때 그 마음으로 사회를 비판하면서 변혁하려 하지만, 현재 학생들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물론 현재 교육이라는 것이 불공평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은 한다. 당연히 사교육을 많이 받은 애가 성적도 잘나오니까. 그래도 그나마 자기의 의지와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 공부이기에, 또한 그들은 같은 교실에서 똑같이 교육받으며 시간을 보내기에 나름 공정한 경쟁이라 여기게 되는 것이다. 만약 정말로 '공정경쟁'을 따진다면, 사교육을 전면 금지시키고, 오로지 학교수업만 듣고 시험보도록 해야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경쟁도 '타고난 머리'에 좌우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과도한 자유침해 및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학벌로 줄세우기가 공정경쟁에 어긋난다면, 대학교 성적으로 줄 세우는 것도 공정경쟁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고교시절의 노력은 공정경쟁에 어긋난다면서, 대학시절의 노력은 공정경쟁으로 인정하는 것은 말이 안 맞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는 '대학교는 취업하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기도 하고, 회사가 원하는 것은 현재 능력이지 과거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만약 능력이 부족한데, 학벌로만 인재를 뽑는다면 그 회사는 자연스레 도태될 것이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보니, 현재능력뿐만 아니라, 과거의 능력까지도 살펴보게 되는 대한민국이다.

우린 늘 완벽한 인재를 찾아다니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