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360

일자리와 소득의 양극화, 그리고 인건비

필자는 오래전에 올리케 헤르만의 라는 책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인상 깊었던 문구를 소개한 적이 있다.그중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 발전은 인건비의 상승으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생산비 압박은 기술적 진보를 향한 갈망을 만들어 냈으며 이는 방적기, 증기기관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현대에 와서도 경영가나 자영업자, 생산업자들에게 가장 큰 비용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인건비'라고 말한다.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기술적 진보는 생산의 효율을 증대시켰고 이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이어져 파이 전체를 키우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이것은 분명 궤를 달리 하게 되었다. 그 책에 대한 리뷰가 불과 7년 전쯤인데, 세상이 너무나도 빠르게 바뀌었다. 분명 기술적 진보가 생산의 효율성을..

맞춤형 알고리즘과 정치적 양극화

얼마전에 미 국회의사당이 점령당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그들은 대선은 조작 되었기에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하였다.미국은 지금 분열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미국의 모습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대한민국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는걸 부정할 수 없다. 필자는 작년 10월 쯤에 글을 쓰면서 혐오컨텐츠 제작자들을 원시 동굴의 부족장에 빗댄적이 있다. 그 때 필자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맞지 않는 글이나 영상은 차단함으로써 원시 부족마냥 자신들의 동굴 속에서는 소통을 하지만 외부에 대해선 배척을 일삼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인터넷의 소통이 단절되고 분열된다고 했다. 필자는 그것 자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못햇다. 단지 개개인의 취향들과 취미들이 맞춤형식으로 제공되기에 '대중'이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파..

이벤트화되는 최소한의 도덕심 - 무형의 가치들

오늘은 다소 우울한 글쓰기가 될 듯합니다. 이 글은 다소 추억 보정이 된 것일 수도 있고, 제 주변이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로 올 한 해를 마무리하기엔 아쉽습니다만, 마무리 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꼰대 같은 발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느 한 인간이 살면서 느끼게 된 점을 써 내려간 글이라 생각해주세요. 어렸을 땐, 무형의 가치가 그래도 최소한 존중은 받았던 것 같은데. 사랑이니, 의리니, 도덕이니, 인간다움이니, 뭐 그런 것들 말이죠. 그것들이 최소한의 선(line) 이상으로 작동했고, 그렇게 배웠고, 믿어왔던 것 같은데. 이제 그것들은 정말 최소한으로만 작동하게 된 것 같아요. 그냥 최소한 인간다운, 사회생활할 정도, 딱 그 정도일뿐이죠. 박진영 씨가 겸손은 보..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예상치 못한 사람들은 남았고, 예상치 못한 사람들은 떠났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는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노력의 형태가, 각자의 인생들이 다른 마찰음을 일으키며 삐걱대겠지만 결국엔 닳아지면서, 닮아가면서 맞물려간다. 어떤 형태로든.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는다. p.s 그래도 이 핑계로 맞물리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길.

그림을 그리듯이

인생은 의미 없는 것들을 지워내는 과정이다. 정확히 말자하면 쌓고 무너트리는 행동의 반복이랄까. 백지상태일 때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의미가 있지만, 그것들을 언제까지고 짊어질 순 없다. 우리 인생의 도화지는 무한정 넓은 것이 아니니까. 의미 있는 것들을, 의미 있었던 것들을 위에 하얗게 덧칠해가면서. 의미가 있는 것들을, 의미가 있을 것들로 새로이 그려내는 것이다.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의미 없는 것들을 지워내야 나아갈 수 있다. p.s 인생은 과정이라지만 그래도 결과물이 있어야 보람찰 것 같다. 전에 그렸던 그림들을 지우고 새롭게 그리는 그림들이 더 의미 없다면 그림을 지워낼 수 있을까. 그림을 새롭게 그려내고 싶을까. 목표가 중요한 이유다. 과정이 없..

시중에 돈은 넘치지만, 현실은 돈이 없다.

시중에 돈은 넘치지만, 돈이 없는 현실이다. 현재 한국 시장에, 미국 시장에, 전 세계에 화폐는 미친 듯이 많이 풀렸고, 풀리고 있다. 현재 그 돈들은 전부 증권과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다. 당장 생활 여력이 없는 이들은 그 돈을 생활비로 쓰겠지만, 여유가 있는 자들은 전부 증권과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오래전 한국의 경제 학자들이 '앞으로 부동산 가격은 더 오를 것이다'라고 주장했던 것과 동일하다. 그 결과 빈익빈 부익부가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세계 부호들은 코로나 터지기 전보다 자산이 훨씬 많이 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린 앞으로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시드머니가 있는 혹은 시드머니가 있을 예정인 사람들은 정말 갈림길에 서 있다. 현재 증권과 부동산에 몰린 자금들이 거품이라면 현..

방구석 전문가의 푸념 - k 방역

오늘은 방구석 전문가 노릇을 해보려고 한다. 외부인이야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으니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서도 드러나는 것이 없으니.. 대통령이란 어떤 자리인가?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신의 왕좌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긴 대통령이 지닌 인사권과 권한, 대통령이 내뱉는 발언 한마디에 행정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엄청난 권세를 지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생각만큼 대통령은 권한이 크지 않다. 수장으로서 지니는 위상은 엄청나지만 팔다리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답이 없다. 대통령의 자리는 '보여주기'다. 대통령은 직접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발언과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퍼포먼스로서 방향을 제시하는데 그친다. 그의 행동과 발언을 분석..

무뎌짐

연애를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연애세포가 죽는다는 말처럼 혼자 사는게 오래될수록 같이 산다는 것이 익숙치 않고 불편해진다. 누군가와 쭉 함께 지낸다는 것이 부담되기도 하고. 마친가지다. 무언가 하지 않는데 익숙해지면 좀처럼 무언가 시도하지 않게 되고, 그것이 본래 자연스러운 상태가 되어 버린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어린 시절들은 우리 안에서 점차 사라지고, 어느샌가 게을러지고 무기력해져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시도는 타성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감각도 점차 무뎌진다. 우리가 삶 속에서 이 지루한 페달을 힘들게 계속 밞아야 하는 이유다.

사회의 도덕성은 늘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당연하듯이 사회는 부도덕한 곳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도덕이라는 것은 꾸준한 교육과 자제심을 요구하고 부도덕함이 주는 말초적 자극과 쾌락은 즉각적이니까. 사회가 도덕적이길 바란다면 조별과제의 결과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사회를 도덕적인 곳으로 만드는 것은 물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거슬러 올리려는 것처럼 끊임없이 역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돈의 힘이 강해지고, 개인주의가 강해지면서 눈치와 염치가 옅어지니 공중도덕은 땅바닥에 쳐박혀 버렸다.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은 돈의 힘에 의해 강렬해졌고, 그것을 거스르려는 흐름들은 갈수록 많은 비용과 수고를 요구한다. 1인 미디어 시대는 관심이 직접적인 광고수입과 도네(기부)수입으로 이어지..

쓰다보니 이상형 - 인간관계의 선호

최근에 몇 번이고 글을 쓰다가 지웠다.글을 쓰면서 잘 풀리지 않아 다음에 써야겠다고 놔둬버린 글들도 있다. 이젠 글들이 잘 써지지 않는다. 그래서 티스토리에 글을 올리는 주기가 무척 길어졌다. 사람은 변해간다는데 올해 내 변화의 끝이 글쓰기의 퇴보다. ...... 나는 사람을 만난다면 유연한 사람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고가 유연해서 마치 스펀지마냥 상대의 세계를 흡수하고 익혀서 점차 세계가 넓어질 수 있는 그런 사람. 오랜 세월 끝에 사고가 고정되어 버린 사람은 변하기가 참으로 어려우니까. 그래서 나이 먹은 사람들이 나이를 따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 자신만의 세계가 구축되지 않은 어린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성장할지는 자신들이 어떻게 이끄냐에 따라서 달라지니까. 생각보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가..

데이터의 집합이 되어버린 인간

인간.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데이터화 되어 버린 것 같다. 약간은 미화된 과거겠지만 과거엔 사람을 하나의 덩어리 그 자체, 그 한 사람으로 보았던 것 같은데. 이젠 사람들은 잘게 쪼개지고 쪼개져서 각각의 영역에 맞게 데이터화 되어 버리는 것 같다. 물론 과거엔 이렇게까지 사람을 쪼갤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의식이나 과학, 기술이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서도. 그냥 평이하게 '고유한 사람'이라는 한 단어로 퉁쳐버리는 것이 편했으니까. 이젠 지나간 세월만큼 기술과 과학이 발전했고, 사람들의 의식 수준도 높아졌다. 사람들의 표현을 빌려서 '더 이상 순박하지 않다는 것'이 의식 수준이 높아진 것이라면 높아진 거니까. 이젠 사람들은 기기를 이용해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서 취사선택을 한다. 똑똑해졌다...

생각은 짧게, 행동은 길게

생각은 짧게, 행동은 길게. 실행을 촉구하는 듯한 이 문구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자기 계발적인 문구다. 생각만 하면서 이리저리 재보지 말고 과감하게 시작하자는, 꾸준하게 해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정 세대를 가리키는 문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미로만 본다면 왠지 20, 30대를 위한 문구처럼 보인다. 실제적로도 대부분의 사람이 20, 30대가 잃을 것이 없어서 좀 더 과감해질 수 있고, 가족이 있는 40, 50대는 사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다르겠지만, 한동안 '요즘 20, 30대들은 패기와 열정, 도전의식이 없다'는 소리가 들려오던 때가 있었다. 아니, 겉으로 말하면 꼰대 소리 들을까봐서 말만 안 할 뿐이지, 속으로는 여전히 저런 생각을 지닌 어르신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풍파를..

다시 생각해보는 체벌의 필요성

필자는 어릴 땐 체벌을 받으면서 자랐지만, 커가면서 '체벌은 나쁘다'는 말을 배우며 자랐다. 그리고 성인이 될 때 쯤엔 체벌은 상당수 사라지는 추세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필자 스스로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은 '체벌은 필요하다'였다. 전에 필자는 '문명인들은 무례한 말을 해도 머리가 쪼개지지 않는다'는 글을 통해서 한 명의 사회적 인간을 만들어 낸다는 것과 체벌의 필요성에 고찰한 적이 있다. 우린 폭력을 야만적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돌아가서 '폭력이 과연 야만적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해보자. 어째서 폭력은 야만적인가? 남에게 상처를 입히므로? 육체적인 힘으로 상하관계를 결정지으므로? 폭력은 신체적 폭력 뿐만 아니라 정신적 폭력도 있는데? 어쩌면 순간적 육체적 폭력보다 사람을 자살로 ..

편견-천한 사람들이 모이는 직업군

편견. 편견은 자신의 반복된 경험으로 인해 굳어진 성향이나 판단력을 의미한다. 우리는 편견은 안 좋은 것으로 배우고 배척해야 할 것으로 교육받는다. 하지만 과거글에서도 썼다시피 편견은 생각보다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이 경계 대상이 되는 이유는 섣부른 판단력과 일반화로 미래의 경험-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전에 위험할 가능성을 줄여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편견이 나쁘다면, 살인범들이 모여 있는 소굴에도 스스럼없이 가야 된다. 살해당할 이유도 상대방이 날 살해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그런 범죄자들이 있는 곳은 상당한 우려를 표하며 피한다. 범죄자들이 재범할 거란 것은 일종의 '색안경' 이니까. 편견이 기정사실화 되려면 상관관계 연구가 명..

갑과 을을 상징하는 사랑

우린 종종 '너는 쓸데없이 눈만 높아'라거나 '눈 좀 낮춰'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쓸데없이 눈만 높다는 말은 취향이 까다롭다는 걸 이야기하는 것인데, 과연 사람을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걸 본인이 원하는대로 조절할 수 있는가.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보고 남성을 좋아해보라고 노력하라고 한들, 남성을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물론 취향-이상형과는 무관하게 지대다보니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낄 수는 있다. 실제로도 많은 연인들이 그렇게 사귀고 있고. 여튼 간에 사람을 보는 눈, 취향이라는 건 원한다고 해서 조절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자, 그럼 다시 돌아와서 과연 사람보는 눈에 높낮이가 있을 수 있을까. 눈이 높다거나 눈을 낮추라고 말하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말의 뜻은 잘난 사람들은 잘난 ..

어린이나 어른이나

어렸을 땐. 음.. 잠깐 우리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도록 해요. 아이의 시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요. 어렸을 땐, 어른들을 보면 정말 어른 같다고 생각했어요. 나나 친구들이나 어린이들과는 무언가 달라보였죠.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힘도 쎄고. 우리가 모르는 것들도 많이 알고 있구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어요. 다 알아먹을 순 없었지만 어른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뭔가, 어떤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걸 느끼곤 했죠. 그런데 뭔가 있을 것 같았던 그 어른이 내가 됐어요. 우리들이 쌓아왔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젠 과거가 되어 버렸어요. 학교 앞 매점에서 먹던 군것질들과, 하루 전날 밀려서 풀던 학습지들과, 하교 후에 들리던 오락실까지도. 우리들의 과거가 담겨져 있던 모든..

부정적 감정들

부정적 감정들은 전염되기 쉽고, 중독되기 쉽다. 살다보면 힘겨운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로 인해 우린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부정적 감정들을 탐닉하게 되고 이런 감정들이 우리의 삶 자체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원인과 결과가 반전되어 버린 경우다. 힘들 때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고통의 감정들은 우리가 한계에 다가가고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그렇기에 부정적 감정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상 부정적 감정들을 자꾸만 되뇌이는 것은 그것을 탐닉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삶을 허무하게 만들고, 외부로 탓을 돌리게 만들며, 모든 것들을 자포자기 한 채 남은 삶마저 갉아먹는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은 주변..

최악의 인터넷 문화 -혐오, 감시, 검열

어린 시절,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 한국은 인터넷 문화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은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고, 나이를 초월하며, 국적을 초월해서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고 여겼다. 당시에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이 현실적 제약들을 다 극복해줄 것만 같았으니까. 실제로 인터넷은 이러한 제약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긍정적인,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주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도구는 잘못 없다. 문제는 그 도구를 이용하는 인간이지. 우린 인터넷의 익명성으로 온갖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지만, 우리 스스로 선입견을 강화하고, 차별하며, 혐오를 만들어 내고 있다. 관심과 조회수가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무엇이든 컨텐츠화 하려고 하며, 사람들은 관음증 환..

티가 나지 않는 날

종종 그럴 때가 있어요. 무언가 노력은 하고 있는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 날 말이에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요, 내가 한 노력들이 티가 나는 것보다 노력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일들이 훨씬 많더라구요. 가령, 제가 요즘 하고 있는 밤산책 같은 것이죠. 운동은 꾸준히 해도 티가 잘 나지 않아요. 공부도 마찬가지에요. 실무는 할수록 몸이 기억하고 점차 능숙해지는데, 이론적 지식은 공부해도 티가 나지 않아요. 그러나 우린 노력해요. 남이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요. 내 인생이니까요. 그렇지만 아무래도 노력에 힘이 빠지는건 사실이에요. 우리들의 노력들은 늘 결과와 외부의 시선들에 의해 갇히고 말아요. 우린 노력해서 상대방과 경쟁해야 하니까요. 경쟁에서 가치를 얻는 것은 오직 결과물이..

인터넷 꼬리잡기, 비대해진 자아를 지닌 군상들의 집합소

아주 오래 전에 '우리는 우리의 말을 들어달라고 해야지. 어째서 듣지 않냐고 구박할 수는 없다.'라는 글과 '모든 것은 때가 있다/자연스러운 대화' 라는 글에서 필자는 사소한 것에 대해 언급한적이 있다. 정보 통신의 발달로 넓어져 버린 시야-각종 정보 때문에 소통에 있어서 우린 몇 가지 문제점을 겪는다. 1. 우린 너무도 많은 것을 헤아리려 든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할 때 우린 무수히 많은 지적질을 고려해야 한다. 흔히들 부정적으로 보는 불편충 때문이다. 왜 이 단어를 선택했죠? 왜 이런 시각에서 말했죠? 왜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죠? 왜 다른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죠? 등등. 우선적으로 편견은 나쁜 것이 아니다. 편견은 반복된 학습이나 경험으로 치우쳐진 판단력을 의미한다. 치우쳐졌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보..

목소리 큰 유사과학자들과 비전문가들 - 정보섭취보단 정보판단을.

천연 '유래'는 없다. 모두 상술일 뿐. 애초에 모든 화학제품은 환경-천연에서 가져온다. 그걸 가공하거나 배합할 뿐.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인공, 화학은 나쁘지 않다. 천연 자원처럼 똑같이 장점과 단점이 공존할 뿐이다. 천연자원인 물은 몸에 좋지만 자주 마시면 독이 된다. 천연과일인 감은 여러 효능이 있지만 자주 먹으면 변비가 생긴다. 모든건 장점과 단점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는것이다. 그러나 많은 제품들이 '천연'이라는 마케팅을 쓴다. 그로 인해 비천연 제품은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된다. 일단 천연을 강조하는 비평가, 전문가들은 모두 걸러라. 대한민국 식약처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식품,화장품,그 외 모든 제품들의 기준을 총괄하고 지정하는 만큼 최대한 보수적으로 검증한다. 사고가 나면..

맥락을 잃어버린 시대

뭐든지 빠르고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시대. 이는 작품도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즐길 거리가 많은 독자들은 이것 말고도 즐겨야 할 것들이 산더미고, 작가는 쏟아지는 작품들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어야만 한다. 작품의 질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독자들의 눈에 띄어야만 한다. 온갖 것들이 쏟아지는 컨텐츠 과잉 시대엔 목소리가 큰 자가 결국 돈이 된다. 살아남기 위해 작품들은 변해간다. 서서히 고조되어 마지막에 펑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터져서 끝까지 터진다. 자극적이며 즐겁다. 자극적이지 않은 전개와 과정은 과감히 생략된다. 즐거움만을 처음부터 때려박아야지만 독자를 붙잡을 수 있으니까. 영화는 2시간 내외로 모든 스토리를 끝낼 수 있지만, 독자의 역량과 상상력에 기댄 소설들은 2시간..

타고난 사회적, 문화적 자본과 개인의 노력들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타고 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것은 당연하게 존재해왔던 것들이고, 자연스레 그들의 노력으로 성취한 것들이라 여긴다. 그러한 사회적, 문화적 인프라, 자본들은 물론 자연스레 얻게 되는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것들을 익히기 위해 나름대로 안목과 지적 능력을 요구하며 이것은 노력을 해야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성취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게끔 만들어주는 환경이나 인프라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지인에게 우연히 얻을 수 있는 표가, 30분 거리에 가서 관람할 수 있는 것이, 누군가에겐 하루라는 시간을 써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공짜 표는 커녕 판매처가 부족해서 돈 있어도 사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 가지 않는 길에 미련을 갖는 사람들에게

가지 않았던 길을 아쉬워하며 미련갖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랬고. 안 그러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아쉬워서 지나간 날들을 보상받으려고 되돌리려고 한 적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가 있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이라는 유명한 시다.-------가지 않은 길로버트 프로스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몸은 하나이기에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나는 오랫동안 서 있었다.잣나무 숲 속으로 굽어진 길을눈 닿는 데까지 보면서. 그리곤 다른 한 길을 택했다.똑같이 아름답지만, 아마 더 나은 듯한 길을.그 길이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발자취의 흔적은 두 길이 비슷했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다.아무런 발자국도 남지 않은 낙엽..

상류층에 대한 선망과 아비투스

표정, 행동, 태도는 의식적으로 그럴듯하게 꾸며댈 수는 있어도 마음 깊숙히 박혀 있는 찐따의 본능을 벗을 수 없다. 상류층. 이 상류층이라는 단어는 위 상이라는 한자어에서 드러나듯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선망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계급에서 한 단계 올라가 궁극적으로는 '상'류층이 되길 바란다. 그렇기에 수많은 드라마나 작품에서 상류층에 대해 다루고 시청자들은 이렇게라도 그들을 엿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실상 티비에서 비추는 상류층은 이상적 판타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요즘 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인문학 분야에서 4위를 당당히 차지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사실에서 2가지 현실을 추론해 볼 수 있..

대가 없이 사랑을 준다는 것-슬픈 현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대가 없이 사랑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게 된다. 우리는 어릴 때 대가 없이 사랑을 주고 대가 없이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그냥 마음가는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그러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 대가 없는 사랑이 힘들다는 걸 느낀다. 우린 어째서 대가 없이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되는걸까. 먹고 살기 위해서? 손해보지 않으려는 마음? 돈이 좋다는 현실을 알게 돼서? 내 체면이 떨어질까봐? 혹은 대가 없이 사랑을 준다면 내 사랑의 가치가 떨어질까봐? 남보다 못해질까봐서? 정말 좋게 포장하면 공급과 수요라는 경제관념이 사람들 사이에 확고하게 잡힌거고, 나쁘게 말하면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거래개념이 잡힌거고. 뭐, 감정에 거래개념이 잡힌다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 다양한 감정 서..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고 했던가. 내 안에 깊게도 박혀 있던 당신이 어느새부턴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바다 속에서 나도 모르게 파도에 밀려 나듯이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당신은 저 너머로 밀려나 있었다.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다. 때때로 그리움에 잠겼던 날도, 당신을 떠올리던 날도, 추억을 되짚어 보며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날 역시도. 그 때의 감정만큼이나 저 멀리 희미해지고, 사라진다. 누군가 지금 나에게 누구의 소식이 가장 궁금하냐고 묻는다면 이제 난 너를 떠올린다. 어느 순간부터 너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건 어쩌다 한번씩 문득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자연스레 감정이 떠오르듯 떠오르는 것이다. 이제 난 너를 떠올리면서 때때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미련이 아예 없다는 것은 거짓말..

누구보다도 외치지만, 누구보다도 관심없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게 없는 걸 종종 되뇌이곤 한다. 아니면 아예 언급을 하지 않던가. 나는 소통을 외치는 사람치곤 소통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철저히 의식 속에 자리잡게 되어버린 이 때, 순박함은 사라지고 소통,진실, 공감, 기억이라는 가치들을 외치는 이들은 대부분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 타인을 위한다고 누구보다도 크게 외치지만, 타인을 위한다고 크게 외치던 단체들의 끝은 참으로 별로였으니, 깜깜이 기부가 이루어지던 때는 어땠을까 싶다. 진정 타인을 위해 희생, 봉사하는 이들은 오히려 조용하고 묵묵히 행동했으며 다른 이들에 의해 그 선행들이 알려지곤 했다. 내가 뭐라고. 그저 소시민으로서 내 한 몸 챙기기 바삐 살아가는 사람인데 선행을 행하는 이들의 의도까지 따박따..

도희적 삶을 선망하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지방이 아닌)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도시에서 삶에 대한 선망이 있다. 마치 도시인들이 목가적인 농촌의 삶을 생각하며 환상을 품듯이. 나고 자란 곳에서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논과 밭, 그리고 그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1차 산업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간관계 및 사회뿐이다. 과거였다면 그들은 자연스레 1차 산업의 종사자가 됐을테지만, 정보와 교통의 발달로 아이들은 이 사회의 외부에 또 다른 사회가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됐다. 그런 의미로 잠깐 다른 얘기를 해보자면, 교과서에 실린 80~90년대 문학은 현대와 동떨어져있다. 그런 묘사가 있지 않은가? 시골에 사는 주인공 앞에 도시에서 한 아이가 전학을 온다는 것. 그 아이는 피부가 곱상하고 하얗다는 것. 까무잡잡한 시골 아이..

가장 낮은 곳에서 존귀하게 돈을 번다.

어쩌면 그 때가 더 안 좋았을려나. 돈을 벌어들이는 액수보다 어떻게 돈을 버는지에 관심갖고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며 도덕적인 것을 강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린 아이들한테나 교과서적으로 가르치는 말에 불과할 뿐 현실은 직업의 높낮이를 보고 대하는 태도가 다르던 시절이었다. 이론적으로, 교과서적으로,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지만 실상은 전혀 현실은 달랐다. 염치와 체면의 문화라는 것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그나마 그런 '척'이라도 하는 것에 일말의 안위를 느껴야 할까.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할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존귀하게 번다'는 말처럼, 우린 돈 그 자체보다 어떠한 방식으로 돈을 버는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라고 가르쳤고, 그렇게 배웠다. (어쩌면 노동의 가치를 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