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360

여름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처럼, 삶의 방식이 익숙해지면서 안정감이 생기면 변화의 폭은 줄어들고, 생활은 고착화되며, 삶은 점차 늘어지기 시작한다. 삶 속에서 경험들은 비슷한 형태로 데이터화 되거나 기억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분류되어 하루의 대부분이 쉽게 잊혀지게 된다. 대부분의 행동들은 축적된 데이터로 인해 비슷해진다. 물론 감정과 추억까지도. 사람이 자신만의 색채-매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같은 곳에,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경험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너라서. 너이기에 그 추억이 특별한 것이고, 너이기에 고유한 추억이 되는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나와의 추억이 당신에겐 어땠을지. 나는,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을지. ..

삶은 학습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

인터넷에 있는 사례들은 인터넷에서만 존재하는 것. 인간관계나 인간 심리와 같은 개인에 대한 판단은 직접 겪으며 내리는 것만이 답이다. 직접 겪으면서 이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고민될 때, 그 때 가서야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며 해결책을 찾거나 공감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여자가 어떻다느니, 남자가 어떻다느니, 세대가 어떻다느니, 누가 어떻다느니, 사회가 어떻다느니 하는 것은 전부 가까이에 있는 일이면서도, 나와 상관이 없는 먼 곳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회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긴 하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라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는 고사성어처럼 내 삶에만 치중하고자 해도 내 삶은 사회속에서 이루..

만족을 죄악시하는 사회

살아가다 보면 종종 왜 살지? 사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할 때가 있다. 우리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을 찾기 위해서다. 살아가는데 이유가 없으면 이렇게까지 아둥바둥 대면서 고단하게 살아가야 할 의지가 생기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왜 살아가는지도 모르는 채 사회의 거친 풍파를 겪고서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식과 아내가 있는 집에 들어서면 그곳엔 내가 이렇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라는 것이 있다. 득도 세대라고도 불리는 이 세대는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버림으로써 지금의 불행한 상황에 만족하고 그대로 안주하는 세대를 말한다. 욕망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원하는 것인즉, 현재 결핍된 상태를 말하며, 욕망이 충족된다는 것은 반대로 충족되..

사는 곳이 중요한 이유

사는 곳이 왜 중요한가. 사회활동이 왜 중요한가. 어째서 조상들은 말을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라고 했는가. 인프라의 차이, 문화적 경험의 차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어린아이-후손에게 물려줄 경험의 차이 때문이다.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로 시공간 제약이 없다 말하지만 오감으로 촉각으로 느끼는 것은 분명 다르다. 의사들이 일하는 현장을 가보고, 경찰과 소방관이 일하는 곳을 가고, 대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교수가 강의하는 대형홀에 가서 느껴보는 것. 공사현장에서 먼지 뒤짚어 쓰면서 땀흘리는 모습, 대형 트럭을 운전하며 여기저기 구경 다니는 것, 법정에서의 견학과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모습. 회사원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컨펌받는 모습까지. 사회의 각양각색의 노동자들을 보고, 그들의 역할이 어떻..

감정을 풀어놓지 못하는 사회 : 주인공이 되지 못한 자들의 한탄

사람들은 줄곧 자신의 입장에 서서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곤 한다. 세상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아닌 주변의 환경일 뿐이니까. 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듯이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내 처지, 내 상황에 맞춰서 주변 환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오늘도 누군가의 글을 분석하고 낱낱이 해체해서 공격한다. 독자들이 저마다의 상황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듯이 글쓴이도 자신의 입장에 대한 고뇌와 고민에 쓴 것일텐데. 독자들은 글쓴이를 향해 배부른 투정이니, 남들은 어떻니, 불만투성이니, 자업자득이니, 비웃으며 날을 세워서 공격한다. 정작 자신의 처지에 대해 남들이 비웃거나 까내리면 화낼 거면서. 솔직하게 감정을 풀어놓는 글마저도 사람들은 이제 엄중한 잣대를 내밀어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 역시 독자의 감상평으로 존중..

대한민국의 산업 재해 - 먼 나라의 이야기

희생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남자가 할 일. 그렇기에 산업 재해는 당연한 것으로 취급된다. "산업 재해? 험한 일하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이거 신고하면 일정 다 박살 나. 안돼. 막어. 막어. 구급차 부르지 마." 이런 식으로 남성의 생명에 대해 경시하는 풍조가 강하다. 작업장 일정, 기업의 손실을 그리도 목메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남성의 목숨은 대체 부품으로 끝이다. 그래 놓고 하는 말은 가관이다. "요즘 젊은것들은 고생을 안 하려고 한다. 험한 일 안 하려고 한다." 험한 일은 험하지 않게 만들어야지. 험한 것은 당연한 거고, '남자'라면 험한 일도 군소리 없이 해야 한다는 마인드다. 환경을 개선하라고 새끼들아. 환경을 개선할 생각은 안 하고 계속 애먼 사람만 갈아 넣을 생각을 ..

대체될 수 있는 인간들

인간은 단 하나뿐이기에 존엄하다고 배운다. 우린 '너를 사랑하라', '넌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넌 유일한 사람이다', '넌 사랑스럽다'와 같은 말들을 듣고 자란다. 아이들은 확실히 귀엽고, 사랑해주어야 하며, 존중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어른이 돼서도 어느 정도 이어지는데, 때때로 사람들은 내가 사람이라는 이유로 당연시하곤 한다. 나는 유일무이한 사람이기에 모두와 동일하게 존엄하며, 존중받아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존중하는듯한 태도를 하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사람을 하나의 도구로만 여기는 이들을 소시오패스로 몰아감으로써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든다. 선과 악이라는 절대적인 도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세상은 도덕적으로 돌아가야만 하기에,..

티키타카 잘 맞는 법 - 원론적인 이야기

티키타카. 오래전에 필자는 티카타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필자의 블로그를 보다 보면 종종 티키타카 글을 찾아서 오는 분들이 많은데, 특히 연인끼리 티키타카가 잘 맞는 방법을 찾아 들어오는 이들이 많다. 실상 필자의 글은 티키타카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티키타카를 잘 맞추는 방법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필자가 쓸 수 있는 글은 원론적인 이야기고 또한 필자 개인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필자가 관계 개선의 전문가도 아니니까. 티키타카는 탁구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처럼 '대화가 주거니 받거니' 잘 되는 걸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주거니 받거니' - 상호 작용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나 혼자만 노력해서는 티키타카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

다시 논의되는 여성징병제 : 잘못된 논의

여성 징병제로 이야기가 시끄럽다. 그런데 사실 지금 하는 여성 징병제 논의는 잘못됐다. 여성 징병제는 하고 말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 징병제는 확정이고, 그것을 어떻게 어떤 시기에 도입을 해야 할지 논의해야 하는 단계다. 오래 전에 한 외국인이 한 말이 떠오른다. '한국 사람들에게 통일을 할지 말지 질문하는 것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이렇게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통일을 하게 된다면, 북한 땅을 어느 국가가 가져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는가로 말이지요. 이 질문에 대한민국 사람들은 전부 한국이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는 통일이라는 것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필자는 여성 징..

차별

특히 문화 콘텐츠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 A를 말할 때, 누군가는 말한다. 왜? B, C, D는 없는 거죠? 이건 B, C, D에 대한 차별이에요! 물론 A,B,C,D가 모두 나오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이야기가 있다면야 좋겠지만, 대부분의 문화 콘텐츠들은 말하고 싶은 것으로 좁혀 말한다. 그것은 예산 문제, 인원 문제도 있겠지만, 모든 것을 다 다루기엔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중구난방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하고자 하는 말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 A의 이야기에 B, C, D가 없는 것이 불만이라면. A의 이야기에 B, C, D를 집어넣을 것이 아니라, B의 이야기, C의 이야기, D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답이다. A, B, C, D 모두의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고, B와 C의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으며..

갈등을 내버려두는 사회

만족감은 동력을 빼앗아간다. 그렇기에 만족한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들려오는 소리에 적당히 반응만 해 줄 뿐이다. 안일함은 무관심을 가져온다. 그렇기에 안일한 사람들은 잊고 산다. 자신들의 삶이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갈 뿐이다. 현재 기득권들이 남녀갈등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이자, 2030세대들이 남녀갈등이 심화된 이유다. 그들에게 있어서 남녀갈등은 그저 어린애들의 투정부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젊은 날의 꿀은 이미 빨아먹었고 이 갈등이 그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서로의 주장에 대해 어린애들 달래듯이 '대충 들어주고 치워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면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에 무언가 조치를 취할 땐 도덕적 합리화나 명분이 필요한데 평등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삶에 목표가 있다면 좀 더 열심히 살았을까.

삶에 목표가 있다면, 좀 더 열심히 살았을까.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당장에 무언가 행동을 하게 만드는 그런 목표 말이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것. 그것이 삶의 전부다. 목표는 이정표이자 방향이며, 방향이 있어야 우리는 걸을 수 있기에, 삶에 목표가 없다면 우린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휘둘릴 것이다. 느리게 걷든, 빠르게 걷든, 이정표가 있다면 목표를 향해 걷는 순간부터 이것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언가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뒤돌아보면 어느 순간 제자리다. 중요한 것은 목표이며, 그걸 향해 걷는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건 살아간다는 징표다. 사회적 관계든, 친구 관계든, 직업이든, 취미든, 뭐든 간에 그 모..

경제력이 인간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이유

경제력이 사람을 인간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이유는 돈 그 자체 보단 어떠한 선택에 있어서 일방적인 관계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물론 일방적인 관계로 변질되는 이유가 돈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론 결국 돈이 문제긴 하다. 사람을 만나고 활동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돈을 쓰게 될 수밖에 없다. 뭐, 공원을 걷는다든지, 집에서 만난다든지 그러면 돈을 쓰지 않아도 될 테지만, 대체적으로 밖에서 만나서 어느 곳을 가든, 무엇을 먹든 전부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에 예산 내에서 각자의 취향이나 소비 기준에 맞춰 소비하게 된다. 소비 기준 것 자체가 다른 것은 크게 상관없다. 원래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조율하는 과정이다. 취향의 차이는 조율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그건 단지 덜 ..

인간관계 - 수단과 목적성

순수하게 목적성만을 띈 인간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과연 인간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의미에선 인간관계를 포함한 모든 것들은 수단이 될 수 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단이라는 속성이 섞여 있다. 순수 100% 목적성은 없다는 말이다. 꼭 순수할 필요가 있겠냐만은 대부분 사람은 '순수'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순수라는 단어 자체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오염되지 않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등의 의미를 담고 있고, 오염이나 불순물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섞이지 않았다는 의미는 무언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흰색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전적으로 믿을 수 있거나 신뢰를 할 수 있는 듯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앞과 뒤가 다..

인터넷, 말살되고 있는 비판의 문화

대한민국은 참으로 이상하다. 무언가에 대해 비판을 하려면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과 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누구나 다 빠르고 쉽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 자격 없는 인간들이 선동과 왜곡을 많이 한다. 그런데 이거 참 어려운 문제다. 분명 선동과 왜곡은 문제지만,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해서 나름대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은 '자유'다. 물론 자유라는 것이 방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니, 선동과 왜곡이 자유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전문가가 아니기에 정보가 틀릴 수도 있고, 판단이 틀릴 수도 있고, 그 내용들이 빠르게 전파되어 의도치 않게 선동과 왜곡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쓴 필자의 글만 보면 분명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그것을 분석하고 비판하..

자존감 - 살아가다보면

종종 살아가다 보면 모두에게 잊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란 존재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깔끔하게 지워지는 것이다. 종종 아무도 모르는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생각의 연장선이다. 그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통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자신이, 부끄러운 자신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없는 눈치를 만들어 내서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정작 자신은 남들에 대해 평가한다거나, 평가에 따라 타인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거나 할 생각은 없으면서, 타인은 자신에 대해 그럴 것이라고 여긴다. 인맥으로서 관리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겠지만, 대게 우리가 친구를 사귄다고 한다면 그 친구가 직업을 가졌든, 대학을 나왔든 못 나왔든, 돈을 벌..

사회적 신뢰도를 박살낸 LH 사건

공(公)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공기업은 어느 한편의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모든 국민을,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 모두를 위한 기업이다. 그렇기에 공무원이, 공기업이, 공직자라는 자리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 일개 개인이, 일개 단체가, 감히 다수 - 공공을 대표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리로서 그 상징성은 무엇보다도 신뢰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LH사건은 이러한 신뢰를 완전히 부숴버렸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사건이다. 만에 하나 이들이 완전히 해체된 후에, 그 자리에 새로운 공기업이 생겨난다고 했을 때, 국민들이 뭘 믿고 업무를 맡길 수 있겠는가. 사회적 신용도, 사회적 신뢰도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쌓이고 쌓여 사회 속에서 꾸준히 작동된 끝에 형성된 것이다. 공과 사를 구분하고..

가치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고 믿나요? 아장아장 걷는 3살짜리 아기에서부터 80살의 나이먹은 사람까지. 아니면 저기 먼 아프리카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에서부터 여기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까지도. 난 모든 사람이 존귀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이라는 이유로, 가죽을 뒤집어 썼다는 이유만으로 존귀하진 않죠. 다만 인간이라는 카테고리로서 동등하다고는 생각해요. 엄밀히 말해서 존귀하다는 것과 동등하다는 건 다른 영역이에요.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볼게요. 1 + 1 = 2 라는 것에 가치가 있나요? 그건 단지 계산식일 뿐이에요. 그저 1에다 1를 더하면 2가 된다는 것을 표현하는 어떤 알고리즘 같은 것이죠. 그 계산식에 도덕이니 사랑이니 어떤 우위적,..

자기 확신

자기 확신. 살아가면서 자기 확신은 매우 중요하다. 그건 내가 하는 지금의 행동들이 틀리지 않았고, 내가 원하던 방향대로 옳게 가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것은 자존감과도 크게 연관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행동들에 대한 결과를 쉽사리 믿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 앞에 놓인 선택지들은 결과가 하나같이 최악으로 상정되어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고 대비하려는 움직임 대신 선택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자기 확신이 없으면 무얼하더라도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살다보면 나의 선택이 별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거란 걸 알면서도 선택해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 대신 그 선택의 결과를 노력으로 그나마 최선의 상태로 만들어서 피해를 최소화해야만 한다. 그러나 자기확신이 없으면 선택 이후의 행동에 ..

생각보다 최악은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내가 고려치 않던 선택지들이 생각보다 괜찮은, 매력적인 선택지 일 수 있다는 소릴 듣는다면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자존감을 외부로부터 회복하는 것 자체가 문제지만서도. 여튼간에. 밑바닥이라 생각했던 것들 밑에 더 한 바닥이 있음을 깨달았을 때. 인생을 채 차오르지 못하고 바닥 없는 늪으로 끝없이 가라앉고만 있다는 걸 자각했을 때. 주변은 보이지 않고, 자신에게 존재하는 하자들과 걱정들로 자존감은 한없이 바닥을 친다. 그리곤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며 자신과 비교하게 된다. 비교하면서 자존감 깎아먹는 것이 문제라는걸 잘 알지만 눈을 뜨고 있으면 풍경이 보이는데 어찌 할까. 서 있는 위치가 다르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차라리 이 풍경을 몰랐더라면 어..

중립기어와 마녀 사냥

누군가 상대방을 지목해서 나를 괴롭혔다, 나를 때렸다고 주장했을 때,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우리가 무죄추정의 원칙을 정한 까닭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가 정말로 피해를 당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들 무고죄라고 한다. 가해를 저지른 사람이 증거를 인멸하는 일이 빈번하듯이, 반대로 피해를 당했다는 식으로 포장해서 누명을 씌우는 일도 빈번한다. 그렇기에 우린 일어난 일을 알 수 없고, 증거에 입각해 추적하며 밝히는 것이다. 우린 철저하게 제삼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피의자 둘 모두의 주장을 의심해봐야만 한다. 그러나 요즘 '공감'이라는 말로 포장되는 시대라서 그런지, 아니면 '약자는 선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몰라도 피해 사실을 주장하면, '피해자'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고 상대방을 욕하기 바쁘다. 중립..

후기 자본주의에 들어선 대한민국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장점은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다는 개방성에 있다. 물론 현실적인 제약이 있긴 하지만, 이론적으론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투자를 받아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마케팅, 아이템, 자본. 이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만 성공적인 아이템 출시가 가능해지지만, 일단 이론적으로는 아이템이 훌륭하면 투자 계획서를 통해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그 자금으로 마케팅 및 생산까지 한 후에 유통을 통해서 판매하면 된다. 그 안에 가격 경쟁력이라든지, 생산 가능 수단 확보라든지, 광고라든지, 투자자들 설득 및 모집이라든지, 유통라인을 확보한다든지, 상대 기업의 견제라든지 무수히 많은 단계들이 있고 그 한 곱이곱이 넘기는 것이 힘들지만 말이다. 결국엔 앞서 말한 3가지(아이템, 자본, 마케팅)를 얻기 위해 활동..

한국인들의 유교적 신화와 자본주의

살다 보면 한국사람들에게는 2가지 생각이 확고하게 신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1. 노력은 보답을 받는다. 2. 착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다.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자본주의(?)를 끼얹게 되니까, 1. 노력은 돈(보답)을 가져다준다. 가져다줘야'만' 한다. 2. 착한 자는 돈(복)을 받고, 악한 자는 경제적 손해(벌)를 받아야 한다. 받아야'만' 한다. 로 귀결된다. 이러한 확고한 믿음은 당위법칙으로 변해서 그래야만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학창 시절의 공부(노력들)가 전문직, 대기업 사원(넉넉한 돈벌이)으로 이어져야만 하고, 학창 시절에 놀던 아이들은 밑바닥(경제적 어려움)에 깔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성이 별로인 사람은 절대로 성공해서는 안되어야만 하는 것이..

소비력과 권력 - 사람들의 성향

소비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시장경제에선 소비력이 곧 권력이다. 소비자들 눈치를 안 볼 수 있는 기업이 있다면 이미 그 기업은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거나 소비자들의 눈치를 안 봐도 될 만큼 더 큰 시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 기업 아니면 대체제가 없는 독과점 상황이거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여성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여성들의 소비력 때문이다. 마케팅에서 여성은 세 명의 소비자라는 말이 있다. 여성 그 자신, 여성의 남편, 여성의 아버지다. 그들의 소비는 자본주의가 정한 이상적 가족 형태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남자가 벌어오고, 여성은 내조하는 것이 이상적인 가정이었기에, 가족의 소비를 담당하는 것은 여성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소비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자식들과 그들의 남편 - 가족을..

비스타즈에 대한 단상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 중에 비스타즈라는 만화가 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세계를 다룬 만화다. 그 세계에서 육식동물은 억압해야 할 동물로 취급을 당한다. 그들은 강대하니까.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조심해야 하고, 긴장해야만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성장을 약으로 억제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곰의 입장에서는 가벼운 인사의 의미로 잽(zap)을 날렸지만, 그 잽으로 인해 인간이 팔이 날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육식 동물은 연약한 초식동물을 배려해야만 하고, 그들의 기준에 맞춰서 행동해야만 한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존중받긴 한다. 초식동물은 초식동물대로, 육식동물은 육식동물대로 그들의 신장에 맞는 집과 그들의 각자의 역할에 맞는 직장을 갖는다. 필요악으로서 진짜 고기를 파는 뒷골목 시장도 존..

선(line)과 해상도

뭐든지 선(line)이 중요하다. 얼마 전 필자는 '공부란 세상에 대한 해상도를 올려주는 행위'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분명 공부를 한다는 것은 지겹지만, 그것은 나의 세계를 열어주고, 나와 사회의 만남의 장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신조차도 죽어버린 이 세계 속에서 나를 구원할 것은 나 자신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하고, 내가 있는 이 세계를 이해한 뒤에야, 나의 지표를 명확히 세우고 세계 속으로 나를 밀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세계의 만남의 가능성을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신라시대 골품제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들은 뛰어난 능력이 있음에도 출생의 한계 때문에 그 능력을 펼칠 수 없었다. 이러한 제한들은 시대가 흐르면서 하나씩 하나씩 풀렸고, 마침내 현대에 이르러서 모든 ..

끝장을 봐야 할 것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끝장을 봐야 할 것들이 있다. 끝장이라 말을 하면 뭔가 어감이 좀 부정적이고 쎄 보이나. 여하튼 끝을 봐야 한다는 소리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끝이 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가령 아이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성인이 되는 것. 이런 것들은 그저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레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행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우리가 세운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 노력을 요구한다. 그 목표들은 일평생을 거쳐서 이루어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특정 시기에만 이룰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초등학생 스키 대회에서 우승한다는 목표를 성인이 이룰 수는 없지 않은가. 그나마 이런 것들은 특정 시기의 제약이 존재하기에 '우승하지 못함'으로 끝을 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 제약과 욕망 그리고 계급과 자본의 영향력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 욕망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어린 시절뿐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상당히 제한적인데, 그 이유는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미발달과 경험 부족으로 인한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달리기를 너무나도 좋아한다면 그 아이는 달리기를 자주 하려할 것이지만 건강한 20대에 비해 체력과 육체가 덜 발달이 되었기에 달리기를 자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부모들은 그 아이가 진정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다른 활동에 비해 좀 더 자주 달리기를 할지언정 정말로 마라톤 선수만큼 달리기에 대한 열정이 있는지는 외적인 행동 관찰이 힘들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측면은 더욱 관찰이 힘들다. 아이들..

언론의 힘은 약해졌지만 영향력은 강해졌다.

필자는 이틀 전쯤에 맞춤형 알고리즘과 정치적 양극화에 대해 글을 썼었다. 그 글은 사람들이 맞춤형 서비스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정보를 편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내용이었다. 정치적 양극화와는 별개로 사람들에게 있어서 맞춤형 서비스는 언론(흔히 말하는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대중매체)의 힘 그자체도 크게 약화시킨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언론을 언론으로 생각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정보를 어디에서든 얻을 수 있게 되었으며, 어디에서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여론을 형성하던 역할은 이제 언론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그만큼 여론이 형성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또 다른 의미로 게으른 행동주의자들이 되어가고..

행동과 선(善)

필자는 실용주의이며, 그렇기에 도덕적 상대주의(결과론)를 옹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위선도 선이다는 말을 다시금 생각해봐야만 한다. 결과가 좋은 과연 그것이 선인가. 그건 그저 좋은 방법인데, 거기다가 선을 가져다 붙인 것은 아닐까. 매번 등장하는 예를 들어보자. 당장 경제적 모금과 일손이 필요한 시설에 대기업들이 가서 봉사도 하고 기부금도 낸다고 해보자. 그리고서 그들은 큼지막하게 사진을 찍고서 착한 기업이라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홍보한다고 해보자. 이것에 대해 사람들은 '저것이 왜 선한 행동이냐? 의도가 불순하다' 에서부터 '위선도 선이다. 입만 다물거리는 것보다 저렇게 행동을 해서 도움이라도 주는 것이 어디냐.'라는 말까지 다양한 갑론을박을 펼친다. 필자같은 사람이라면 위선도 선이라면서 어찌됐든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