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고민은 없어지고, 무조건 편가르기, 남탓만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대다.
관계가 이리저리 얽혀 있는 현대에선 무작정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는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문제를 분석하고, 판단하여 대처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중립적인 입장인 척, 현실과 멀리 떨어진 제 3자인양 판단하면서 비판이 아닌 비난질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 개개인들은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눈에 띄지 않고,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분명하게도 우리의 현실 속에서 작용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TV 프로그램을 보듯이 우리 삶과 유리되어 있다는 식으로 정치나 외교를 비판하곤 한다. 물론 한명의 시민으로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기에 정치적으로 유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고, 또한 실제로도 그렇다. (이는 분명히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다. 선거하는 날에만 시민들의 의견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반영된다는 것은 분명히 냉소적이다.) 그렇기에 일개 시민으로서 우리는 대체적으로 그냥 한두마디 던지고 마는 것이다. 어차피 정치에 우리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될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냉철하게 판단을 내린 것처럼 혹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투로 글을 쓰면서 정작 근거를 드는 내용면에서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중립적인 태도로 일관하려면 그 근거와 주장도 제 3자로서 내려져야할 것이다. 하지만 비난은 하고는 싶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비난하면 없어 보이니, 어설피 권리와 의무를 운운하면서, 마치 재야에 묻혀 있는 고고한 식자층마냥 비난하는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어느 한쪽 편을 들더라도, 그 한쪽 편을 드는 이유들을 적당히 나열하면 그 사람의 가치관으로서 인정은 받을텐데, 태도는 제 3자인척, 중립적인 척 취하면서 정작 말하는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자면, '외교는 선과 악 대결이 아닌 자국 이익을 위한 힘 겨루기'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물론 이 전제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가치관이다. 그런데, 이 전제 동의하여, 타국이 행하는 외교에는 그 나라 입장상 정당한 것이라 말하면서도, 정작 대한민국의 행하는 외교에 대해서는 표리부동하다던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대한민국의 외교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려면, '외교는 도덕적인 대결이고, 선악대결이다'는 전제를 지니고 접근해야만 한다. 중립적인 입장에서는 선악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왜냐? 제 3자기 때문에. 본인들의 이익이 걸려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외교의 당사국에 속해 있는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외교란 자국의 이익을 위한 힘의 대결이라는 전제에 동의하듯, 타국의 이익추구는 정당하다고 인정해 주면서 정작 자국의 조치에 대해선 선악을 구분하듯 잘잘못-도덕적 명분을 따진다. (물론 외교 당사국의 국민이라고 해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어떻게 보면 냉철하게 볼 수 있으니 문제 분석을 정확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일련의 조치들이 오히려 우리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든가, 손익관계에 있어서 오히려 손해를 일으키는 대응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논리적 일관성을 가진다. 힘의 논리로 가든가/도덕적 정당성의 논리로 가든가.
자국만을 위한 외교가 부정적인 이유는 자국 이익만을 추구하다보면 국제적 고립에 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적당히 풀어간다. 어떤 부분에 있어선 우리의 이익 잣대을 내밀고, 대신 다른 부분에 있어선 상대의 이익 잣대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결국 잣대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눈치껏 바뀌는 잣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어느 한 잣대를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인냥 내세우면서 자국을 향해 핏대를 내세운다. 정작 그 잣대마저도 상대의 잣대에 불과할진대 말이다. 외교에 있어서 대한민국만의 잣대를 내밀면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듯이 '절대적인 기준의 잣대'에 어긋난다며 바락바락 외친다. 그 절대적인 기준마저도 기존 서구의 일방적인 잣대에 불과한대 말이다. (물론, 외교가 힘의 논리의 장이라고 믿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힘이 약한 대한민국이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절대적인 어떤 기준이 아니다. 단지 힘이 약해서 따라야 하는 기준에 불과하다. 따르지 않으면 우리가 손해니까.)
정치라는 것이 부족한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이듯, 외교 또한 세계의 자원을 대상으로 배분 싸움이고, 결국 모든 나라가 자국 이익을 중심인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각자만의 잣대와 기준이 있을 것이고, 이러한 입장차는 협상을 통해서 풀어나가야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선빵, 원인제공, 잘잘못-선악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부분이 손해고, 어느 부분이 이득이며, 어떻게 하면 입장 차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잘잘못을 따지고 싶으면, 모든 국가의 외교에 대해서 그렇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선악구분을 하면 된다. 하지만 국제무대는 힘의 논리가 우선하고, 그렇기에 협상과 양보가 외교의 본질이라 생각한다면, 잘잘못을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손해가 덜 오고, 어떻게 하면 이득이 올 것인지, 상대국과 우리나라가 어떤 입장차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풀어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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