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 이 시대를 '민주주의 지불의 시대'라 말하고 싶다.
과거에 유시민 작가가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에세이를 출간한 적이 있다.
후불제 민주주의....선불이 아닌 후불.
미국도, 유럽도, 수 많은 시민들이 피를 흘린 끝에 민주주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런 민주주의를 광복과 함께 손쉽게 받아들였다.
자신의 손으로 미래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는 국민들에게 다가온 민주주의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고, 그런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몇 번의 독재정권과 쿠테타가 있었다. 기어코 시민들의 피가 바닥에 뿌려지고 나서야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에 안착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어렵다.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독재에 가담한 이들에 대한 청산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채,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축하려는 세력도 여전히 건재하다. 또한 냉전이 종식되었음에도, 한국만이 그 냉전의 마지막 상징물로서 박제되어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친일과 독재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와 보수와 진보 등이 온통 뒤죽박죽 섞여서 혼재하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유시민 작가는 '후불제 민주주의'라 칭했다.
대가를 제대로 치루지 않고 얻은 민주주의였기에, 후불제라 명한 것이다.
필자는 유시민 작가의 그런 '후불제 민주주의'를 생각하며, 지금 이 혼란의 시대를 '민주주의 지불의 시대'라 말하고 싶다.
지금 이렇게 혼란과 혼전이 거듭되고, 서로를 향한 비방과 비난이 난무하는 이 시대야 말로 비로소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한 '지불'을 하는 시대라고 말하고 싶다.
p.s
성장통에 끼여 있는 이 시대는 누구나 다 힘들다.
남자라서 힘들고, 여자라서 힘들고, 보수라서 힘들고, 진보라서 힘들고, 20~30대라서 힘들고, 40~50대라서 힘들다.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힘들다. 그런 아픔을 이만 덮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희망찬 내일'을 토론할 때라며, 과거는 덮고 가자고 하는 이들도 있고, 지친다고 그만 싸우라는 이들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과 조금만 다르면 상대진영으로 몰아가는 불신이 판치고 있다.
적폐청산 역시도 정치적 보복이라며, 깎아내리는 이들이 있다. 덮어놓고, 용서와 관용을 가지고 내일을 위한 토론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허나,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웠던 '적폐청산'은 분명히 이루어져야 한다. '적폐'에 대한 기준이 매우 모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적폐는 단 하나다. 바로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어 놓은 사건들, 사람들이다. 이들이 지역주의를 만들어냈고, 혐오주의를 만들어냈으며, 불신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적폐청산은 정치적 보복이 아니다. 이는 후불제 민주주의의 지불 형태인 것이다. 이번에 지불하지 못하면, 이자가 붙어서 더 큰 지불을 해야할 지도 모른다.
혹자는 문재인을 비판하는 것조차도 문제라며, 지금은 무조건 힘을 얹어줘야 한다며, 입막음을 시도한다. 허나,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문재인을 지지는 하는 것은 별개다. 필자는 정책에 대해 지지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렇다고 문재인의 지지를 거둘 생각은 없다. 대통령은 한 사람인데, 어떻게 모든 국민의 마음에 맞는 정책을 내놓을 수가 있겠는가. 필자가 이득보는 정책도 있을 것이고, 손해보는 정책도 있을 것이다. 올바른 정책이라 생각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부적절한 정책이라 생각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지지를 거두지는 않을테지만, 필자는 필자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정책적인 부분은 분명히 비판할 생각이다.
고작 대통령 한 분이 바뀌었을 뿐이다.
경제, 사회, 문화, 국방, 환경, 외교, 노동, 교육, 언론 등 무수히 많은 분야 중에서 '행정부' 하나가 바뀌었을 뿐이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또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변하여 갈 것이다.
과거 몇 번의 독재 정권과 쿠테타를 물리쳤던 것처럼, 지금 과도기적 시기를 헤치고서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리라 필자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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