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저도 당신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이에 걸맞는 책임감이 양 어깨를 누릅니다.
제가 나이를 들먹인 이유는 무뎌져만 가는 나의 이런 감정들이 아무래도 세월과 연관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관계는 갈수록 좁아지고, 활동도 줄어들어, 말라가는 고목마냥 가지끝에서 맺히는 겨우 맺는 열매는 고작 나이뿐입니다.
아직은 젊은데, 애늙이냐며 당신은 실소를 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떠난 뒤로 전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의 감정들은 점차 무뎌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연애의 분야에서만큼은 갈수록 뒤쳐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바심도 나지 않습니다. 그냥 갈수록 사그라지는 느낌입니다.
사랑은 뭘까요.
저에게 있어 사랑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특별하지만, 평범한 것이고, 환상이지만, 현실입니다.
한여름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듯한 그 실체없는 열기처럼, 닿을 듯 말듯한 그 아련함과
땅 위에 단단히 뿌리를 박은 나무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은 현실 위에서 살아간다'는 현실감의 공존입니다.
하지만 아련함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은 내게 있어서, 사랑이란 감정은 이제 재로 남았습니다.
눈물은 많아지고, 감정이라 부를 수 있는 활동들은 잦아졌지만, 자아도취라 부를 만한 것들 뿐입니다. 모니터로 수 많은 정보를 읽고, 받아들이고, 감정을 내뱉어도 그것은 마치 무대 위에 홀로 하는 광대짓뿐입니다.
무뎌져 갑니다.
그리고 무더져 버렸습니다.
요즘 세상은 연애한 자와 연애 못한 자로 구분을 짓고 하는데, 그런 기준에 매몰되던 때도 있었습니다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느낌입니다. 세상은 나를 '솔로'로 규정지을 것이고, 누군가는 저에게 '찌질이', '등신' 따위와 같은 2차적 낙인을 찍겠지요. 누군가는 연민을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젠 그러려니 하지만, 새삼 이 글을 쓰며 느낀 것은 실로 감정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이젠 이런 딱딱한 글 밖에 쓰질 못하겠습니다.
한창 전에 썼던 시들, 그리고 소설들, 그리고 달콤한 감정들.
그런 글들을 다시 한번 써보고 싶어 찾아왔으나, 나오질 않습니다.
사랑을 노래하던 입술은 말라버렸고, 밝게 빛나던 눈은 닫혔습니다.
사랑의 언어를 생각하던 머리는 비어 버렸고, 글을 쓰던 손은 굳어버렸습니다.
과거의 아련함과 앞날의 사랑마저도 빛바래져 버렸습니다.
그 땐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할 수가 없어서 서글펐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것마저도 없습니다.
무뎌져가는 나와는 달리,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당신만큼 나이를 먹은만큼, 당신 역시도 그만큼 세월을 지나쳐가셨을테지요.
서툴렀던 나와의 관계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안고 떠났을지, 그리고 그 환상과 열기가 뒤섞였던 무더운 계절을 생각하며 이만 글을 내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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