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90년대, 그리고 외환위기.
문학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모두가 헐벗고 굶주린 그 때 그 시절, 사람들은 문학 속에서 현실을 찾았다.
현실을 그려놓은 문학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보았고, 울고, 웃었다. 그리고 공감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가난을 벗어보겠다고 부모들은 미친듯이 일했고, 그 가난 속에서 헤쳐나온 자랑스러운 장남들은 대학교와 사회를 진출했다. 장남 이외의 자식들은 현재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일했고, 장남들은 미래의 가난을 부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사이 사이 여러 정치적 사건들이 있었지만서도.
그리고 찾아온 외환위기는 또 다시 민중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고, 현 30대, 40대는 그 시절을 절대 잊지 못한다. 극복했다고, 치유됐다고 말은 하지만 흉터로 남아있다. 여튼 간에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나타난 문학은 국민들의 삶을 여과없이 그려냈고, 국민들은 그런 문학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지금, 문학을 한다는 이들은 가난해졌고, 문학을 소비하는 이들은 풍족해졌다.
아이들은 교과서를 통해 80년대와 90년대, 외환위기를 배운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난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고, 문학을 통해 가난을 소비한다. 문학이 괴리감이 발생하는 지점이며, 감성에 호소할 수 밖에 없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학 컨텐츠 생산자들은 삶 자체가 여전히 80년대, 90년대 가난에 머물고 있으나, 문학을 소비할 여유를 지닌 이들은 경제적 부유함이 있다. 결국 그들은 문학에서 가난을 소비하고, 옛날의 향수를 찾지만, 결국 판타지 소설과도 같은 궤도에서 소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작 가난한 이들은 문학을 소비할 여력도 없다.
우스운 현실이지 않은가.
'현실의 삶을 그려낸 문학'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문학 속에서 현실을 찾을 여유가 없고, 문학과 동떨어진 이들만이 경험한 적 없는 삶들을 읽고서 그런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비자들에게는 문학보다 더 즐거운 컨텐츠들이 넘쳐난다. 10대들에게는 다양한 인터넷 컨텐츠들이 함께하며, 20대, 30대들에게는 '있어 보이는 예술과 문화의 공연이 있다. 40대, 50대들은 그저 현실을 살아가기도 벅찰 뿐이다.(그건 20, 30대도 마찬가지지만)
장르문학은 매니아층 시장 공략을 통한 독자적 길을 찾아냈고, 순수문학은 교과서 속에, 누군가의 책장 장식용으로, 아니면 '있어 보이는' 것, '일시적 공감'을 통해 길을 열어가고 있다. 이런 작품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20, 30대들의 현실을 비춰주는 작품도 존재하나, 그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20,30대들은 작품을 읽을 여유가 없다.
겪어본 적 없는 가난의 서러움을 읽고 슬퍼하고, 경험해본 적 없는 연애 경험을 읽으며 만족하고, 욕구에 비례하여 하나씩 포기해 가는 현실만큼, 문학은 요구되어지는 욕구 대리 충족 기능만 하게 된 채 사라지고 만다. 빠르게, 있어 보이게, 일시적 자아도취로 소비되어진다. 현대인이 갈수록 감정이 무뎌지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작품 속에만 자신의 감정들을 풀어놓고 홀로 즐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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