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 991

안나 카레니나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아있지만,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불행하다. - 안나 카레니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으로 유명한 문구다. '저마다 비슷하다(is all alike)'라는 해석이 가장 유명하고 널리 사용되지만 '서로 닮아있다(is resemble one another)'이라는 해석이 2014년에 새롭게 번역되었다. - blog.naver.com/leesiro/221039120440, 네이버 블로그 첫 문장 읽기 참조 번역은 미묘한 뉘앙스차이를 살리는게 매우 중요하지만, 일반적인 독자들 입장에선 본래 나타내고자한 뜻이 어떤 것인지 적당히 알아먹을 수만 있다면 크게 상관없다.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행복한 가정은 다 고만고만한 비슷한 이유로 행복한데, 불행한 가..

최악의 인터넷 문화 -혐오, 감시, 검열

어린 시절,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 한국은 인터넷 문화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은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고, 나이를 초월하며, 국적을 초월해서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고 여겼다. 당시에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이 현실적 제약들을 다 극복해줄 것만 같았으니까. 실제로 인터넷은 이러한 제약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긍정적인,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주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도구는 잘못 없다. 문제는 그 도구를 이용하는 인간이지. 우린 인터넷의 익명성으로 온갖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지만, 우리 스스로 선입견을 강화하고, 차별하며, 혐오를 만들어 내고 있다. 관심과 조회수가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무엇이든 컨텐츠화 하려고 하며, 사람들은 관음증 환..

미련한 하루

차라리 보이지 않으면 좋을텐데. 이따끔씩 보일 때면 네가 떠오르곤 한다. 일상 속에서 더 이상 네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잊었다는 뜻이겠지. 보일 때마다 네가 떠오른다는 건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이겠지. 잊었는데 마음은 남아있다는건 그건 분명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증거일테지. 혹시라도, 어쩌면. 미련을 가져서 미련한 하루다.

친절함보다 차가움이 대접받는 관계

백날 개같이 굴다가 한번 잘해주면 인정할 줄 아는 쿨한 사람. 백날 잘해주다가 한번 화내면 싸이코가 되는 현실. - 사람은 간사해서 한번 잘해주면 고마움을 느끼고 두번 잘해주면 괜찮다고 여기며 세번 잘해주면 귀찮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한번 원한을 사면 복수를 다짐하고 두번 원한을 사면 자신을 의심하며 세번 원한을 사면 두려워하며 굴복한다.

티가 나지 않는 날

종종 그럴 때가 있어요. 무언가 노력은 하고 있는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 날 말이에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요, 내가 한 노력들이 티가 나는 것보다 노력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일들이 훨씬 많더라구요. 가령, 제가 요즘 하고 있는 밤산책 같은 것이죠. 운동은 꾸준히 해도 티가 잘 나지 않아요. 공부도 마찬가지에요. 실무는 할수록 몸이 기억하고 점차 능숙해지는데, 이론적 지식은 공부해도 티가 나지 않아요. 그러나 우린 노력해요. 남이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요. 내 인생이니까요. 그렇지만 아무래도 노력에 힘이 빠지는건 사실이에요. 우리들의 노력들은 늘 결과와 외부의 시선들에 의해 갇히고 말아요. 우린 노력해서 상대방과 경쟁해야 하니까요. 경쟁에서 가치를 얻는 것은 오직 결과물이..

당신과 나 사이

오늘의 추천곡 : july - morning glow 말이라는건 하면 할수록 당신과 나를 규정지음으로 다가가리란 걸 알았기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각들은 소용돌이 치고, 당신께 하고 싶은 말은 많았습니다. 못 다한 이야기를 하염없이 쏟아내고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입을 다뭅니다. 그 때 처럼. 끝내 말하지 않았던 것은 결국 나였고, 떠난 것 또한 당신이었습니다. 당신과 나는 선택했습니다. 이제 와서 구구절절 말한다한들 그 때의 선택이 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우린 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우린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선택했습니다.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다면 믿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를 말이지요.

인터넷 꼬리잡기, 비대해진 자아를 지닌 군상들의 집합소

아주 오래 전에 '우리는 우리의 말을 들어달라고 해야지. 어째서 듣지 않냐고 구박할 수는 없다.'라는 글과 '모든 것은 때가 있다/자연스러운 대화' 라는 글에서 필자는 사소한 것에 대해 언급한적이 있다. 정보 통신의 발달로 넓어져 버린 시야-각종 정보 때문에 소통에 있어서 우린 몇 가지 문제점을 겪는다. 1. 우린 너무도 많은 것을 헤아리려 든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할 때 우린 무수히 많은 지적질을 고려해야 한다. 흔히들 부정적으로 보는 불편충 때문이다. 왜 이 단어를 선택했죠? 왜 이런 시각에서 말했죠? 왜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죠? 왜 다른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죠? 등등. 우선적으로 편견은 나쁜 것이 아니다. 편견은 반복된 학습이나 경험으로 치우쳐진 판단력을 의미한다. 치우쳐졌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보..

목소리 큰 유사과학자들과 비전문가들 - 정보섭취보단 정보판단을.

천연 '유래'는 없다. 모두 상술일 뿐. 애초에 모든 화학제품은 환경-천연에서 가져온다. 그걸 가공하거나 배합할 뿐.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인공, 화학은 나쁘지 않다. 천연 자원처럼 똑같이 장점과 단점이 공존할 뿐이다. 천연자원인 물은 몸에 좋지만 자주 마시면 독이 된다. 천연과일인 감은 여러 효능이 있지만 자주 먹으면 변비가 생긴다. 모든건 장점과 단점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는것이다. 그러나 많은 제품들이 '천연'이라는 마케팅을 쓴다. 그로 인해 비천연 제품은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된다. 일단 천연을 강조하는 비평가, 전문가들은 모두 걸러라. 대한민국 식약처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식품,화장품,그 외 모든 제품들의 기준을 총괄하고 지정하는 만큼 최대한 보수적으로 검증한다. 사고가 나면..

맥락을 잃어버린 시대

뭐든지 빠르고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시대. 이는 작품도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즐길 거리가 많은 독자들은 이것 말고도 즐겨야 할 것들이 산더미고, 작가는 쏟아지는 작품들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어야만 한다. 작품의 질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독자들의 눈에 띄어야만 한다. 온갖 것들이 쏟아지는 컨텐츠 과잉 시대엔 목소리가 큰 자가 결국 돈이 된다. 살아남기 위해 작품들은 변해간다. 서서히 고조되어 마지막에 펑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터져서 끝까지 터진다. 자극적이며 즐겁다. 자극적이지 않은 전개와 과정은 과감히 생략된다. 즐거움만을 처음부터 때려박아야지만 독자를 붙잡을 수 있으니까. 영화는 2시간 내외로 모든 스토리를 끝낼 수 있지만, 독자의 역량과 상상력에 기댄 소설들은 2시간..

타고난 사회적, 문화적 자본과 개인의 노력들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타고 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것은 당연하게 존재해왔던 것들이고, 자연스레 그들의 노력으로 성취한 것들이라 여긴다. 그러한 사회적, 문화적 인프라, 자본들은 물론 자연스레 얻게 되는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것들을 익히기 위해 나름대로 안목과 지적 능력을 요구하며 이것은 노력을 해야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성취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게끔 만들어주는 환경이나 인프라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지인에게 우연히 얻을 수 있는 표가, 30분 거리에 가서 관람할 수 있는 것이, 누군가에겐 하루라는 시간을 써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공짜 표는 커녕 판매처가 부족해서 돈 있어도 사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

당신은 어느 쪽?

설렘이 주는 싱그러움에 속아서 익숙함이 주는 삼삼함을 놓치고 말았지. 달고 짜고 자극적인 맛을 즐기다가도 결국 삼삼한 맛으로 입맛이 되돌아오듯 익숙한 맛이 점차 그리워질거야. 익숙함이 주는 편한 맛에 속아서 설렘이라는 상큼함을 놓치고 말았지. 익숙한 맛에만 중독돼서 미각이 점차 굳어져 가는 만큼 못 먹었던 맛들이 자꾸만 떠오를거야.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 가지 않는 길에 미련을 갖는 사람들에게

가지 않았던 길을 아쉬워하며 미련갖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랬고. 안 그러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아쉬워서 지나간 날들을 보상받으려고 되돌리려고 한 적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가 있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이라는 유명한 시다.-------가지 않은 길로버트 프로스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몸은 하나이기에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나는 오랫동안 서 있었다.잣나무 숲 속으로 굽어진 길을눈 닿는 데까지 보면서. 그리곤 다른 한 길을 택했다.똑같이 아름답지만, 아마 더 나은 듯한 길을.그 길이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발자취의 흔적은 두 길이 비슷했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다.아무런 발자국도 남지 않은 낙엽..

상류층에 대한 선망과 아비투스

표정, 행동, 태도는 의식적으로 그럴듯하게 꾸며댈 수는 있어도 마음 깊숙히 박혀 있는 찐따의 본능을 벗을 수 없다. 상류층. 이 상류층이라는 단어는 위 상이라는 한자어에서 드러나듯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선망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계급에서 한 단계 올라가 궁극적으로는 '상'류층이 되길 바란다. 그렇기에 수많은 드라마나 작품에서 상류층에 대해 다루고 시청자들은 이렇게라도 그들을 엿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실상 티비에서 비추는 상류층은 이상적 판타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요즘 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인문학 분야에서 4위를 당당히 차지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사실에서 2가지 현실을 추론해 볼 수 있..

산뜻하게 가자.

현대에 사람은 늘 넘쳐나고, 이젠 사람은 더 이상 유일무이한, 존귀한 존재가 아닌 인적 자원1로서 소비될 뿐이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 모두. 한없이 가벼워져가는 이 때. 가벼워지는 것을 비판하고 진지한 것을 선호하는 것은 내가 이 시대를 못 따라가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구태여 가벼움과 무거움을 구분지을 필요가 있나. 그걸 구분짓고 일일히 따져보는 것이야말로 시대에 뒤쳐진 거라 생각한다. 관계가 가벼우면 어떻고, 무거우면 어떤가. 각자의 필요대로 선호도에 따르는거지. 난 미련이 많고, 늘 애매했었다. 모질게 관계를 끊지도 못했고, 쿨하게 엮지도 못했다. 익숙한 걸 좋아했고, 변화를 두려워 했으며, 관계 속에서 허우적대며 늘 질척였다. 이도저도 아닌 채로. 뭐, 가볍고 무거운 걸 떠나서 ..

대가 없이 사랑을 준다는 것-슬픈 현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대가 없이 사랑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게 된다. 우리는 어릴 때 대가 없이 사랑을 주고 대가 없이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그냥 마음가는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그러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 대가 없는 사랑이 힘들다는 걸 느낀다. 우린 어째서 대가 없이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되는걸까. 먹고 살기 위해서? 손해보지 않으려는 마음? 돈이 좋다는 현실을 알게 돼서? 내 체면이 떨어질까봐? 혹은 대가 없이 사랑을 준다면 내 사랑의 가치가 떨어질까봐? 남보다 못해질까봐서? 정말 좋게 포장하면 공급과 수요라는 경제관념이 사람들 사이에 확고하게 잡힌거고, 나쁘게 말하면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거래개념이 잡힌거고. 뭐, 감정에 거래개념이 잡힌다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 다양한 감정 서..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는 그대로 들으면 좋겠다. 내 업보이긴 하지만 말하는 그대로 듣지 않고 꼬아 듣는 것도 짜증나고, 그 특유의 돌려 말하기식 눈치 주는 것도 짜증난다. 듣고 싶은 대로만 듣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정해진 결론을 두고서 교류하는 연극만 하는 세상이다. 혼자가 편한 것 같다. 내가 이상해지는건지 세상이 이상한건지.

가장 강력한 것이 종교일지니

국가,계급,인종,이념,종교... 사람은 갖가지 이유로 서로를 구분하고 싸워댄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종교이니, 오래 전 중세시대부터 수십만명의 피를 뿌려댄 것이 바로 종교로 인한 전쟁이었다. 그만큼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 종교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은 종교에 빠진 것이 아니라 종교의 가면을 뒤집어 쓴 장사치에게 빠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이 내려주신 말씀들을 스스로 묻고 답하며 믿음을 키워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앞에서 연설해주는 걸 듣는 것에 그친다.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돈을 갖다 받치는 것으로 믿음을 떼우고 싶은 것이겠지. 그리고 장사치들은 돈으로 그 믿음을 채워주는 것이고. 일반화하거나 특정 집단을 싸잡아 욕하는 것은 분쟁을 일으킬 뿐이라..

도전에 대한 머뭇거림

경제적 어려움은 도전 그 자체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단 한 번이기에 신중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에서 그 머뭇거림들은 너무나도 쉽게 기회를 날려버리게 만든다. 애초에 도전하지 않았으니 실패하지도 않았지만 성공하지도 못했고, 기회만 날아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기회라는 것은 우리의 인생이 유한한 이상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도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도전에 대한 머뭇거림은 사람을 서서히 말려 죽인다. 경제적 어려움은 사람을 서서히 말려 죽인다.

좌건 우건 돈에 미쳐 있는 현실들

요근래 터지는 사건들과 행태를 보면 좌건 우건 돈에 미쳐 있는 것 같다. 남들이야 망하든 말든, 정치와 민주주의가 박살나든 말든 한쪽에선 그저 선동, 왜곡으로 혹세무민하여 조회수와 도네이션 빨아먹기 바쁘고, 다른 한쪽에선 선자의 가면을 쓰고서 그럴듯한 감언이설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지원금 받아먹기에 바쁘니, 좌건 우건 선동과 왜곡으로 돈 벌어먹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 세상을 보고 있자면 도덕이니, 민주주의니 이따위 관념은 던져 버리고 돈이 무조건 최고다는 생각만 들뿐이다. 우린 저렇게 욕 먹든 말든 돈이나 많이 벌어 인생 행복하게 사는 이들을 보며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은 돈이 다가 아니다? 권선징악이다? 이런 말을 하기엔 사람들을 현혹하여 피빨아먹는 이들은 호의호식하며..

머리가 쪼개지는 걸 잊어버린 문명인들

오래 전에 문명인들은 무례한 말을 해도 머리가 쪼개지지 않기에 야만인보다 무례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번에 터져 나오는 사건들을 보면서 참을 인을 꾸역꾸역 쓰며 위의 문구를 종종 생각하곤 한다. 정말로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일까? 겉가죽이 사람처럼 생겼다는 것만으로 우린 그들을 사람으로 존중하고 대우해주어야만 하는가. 우린 그들을 사람으로 대한 결과로 통제력을 잃어버렸다. 폭력은 분명 야만을 상징하지만 대화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오직 폭력만이 행동과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저들을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저들은 문명의 혜택과 인간으로서의 취급에 익숙해진 나머지 몹시도 무례하게 군다. 저들은 사람마다 선(line)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 선을 넘으면 한 대 맞을 거란 걸, 머리가 쪼..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고 했던가. 내 안에 깊게도 박혀 있던 당신이 어느새부턴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바다 속에서 나도 모르게 파도에 밀려 나듯이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당신은 저 너머로 밀려나 있었다.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다. 때때로 그리움에 잠겼던 날도, 당신을 떠올리던 날도, 추억을 되짚어 보며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날 역시도. 그 때의 감정만큼이나 저 멀리 희미해지고, 사라진다. 누군가 지금 나에게 누구의 소식이 가장 궁금하냐고 묻는다면 이제 난 너를 떠올린다. 어느 순간부터 너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건 어쩌다 한번씩 문득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자연스레 감정이 떠오르듯 떠오르는 것이다. 이제 난 너를 떠올리면서 때때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미련이 아예 없다는 것은 거짓말..

표현의 차이들과 그 의미들

짧고 간결한 직접적인 표현도 좋지만 은연중에 살포시 떠오르는 표현도 좋다. 어감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대화에 의미로서 큰 영향을 지닌다. 이는 단순히 전자는 너무 사무적이라 분위기가 딱딱하고 후자는 간접적으로 돌려말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부드럽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는 필요에 의한 해야 할 말만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이는 너와 너의 관계는 필요에 의해 맺어진데 불과하기에 필요 이상의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만, 후자는 돌려 말하기 때문에 상대가 끝까지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가 들어 있고, 이는 내 생각이 어떠한지 자꾸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너와 관계는 필요에 의해 맺어진데 불과하다'는 것은 너무 나아간 해석일 수도 있다. 사..

극적으로 달라지는 인생은 없다.

극적으로 달라지는 인생은 없어요. 세상의 모든 결과물은 전부 하나씩 하나씩 쌓여서 만들어진거죠. 그럼에도 우린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결과물만 보게 되고, 결과물만을 바라게 되지요. 그래서 우린 꿈을 꿔요. 결과물을, 완성된 모습을요. 우린 새로운 시작을 하며 희망찬 꿈을 꿔요. 인생이 극적으로 달라질거라 믿죠. 그러나 극적으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거나 사고를 당했을 경우뿐이에요. 즉, 외부요인에 의한 아주 예외적인 상황인 경우뿐이죠. 결국 성공도, 실패도 노력들이 쌓여야 만들어질 수 있어요. 새로운 시작은 단지 노력의 시작일 뿐이에요. 결과물이 꿈의 실현으로 나타날지, 망상으로 끝날지는 노력의 끝에 가서야 알 수 있을 뿐이죠. 극적으로 달라지는 인생은 없어요. 그러나 달라진 인생으..

누구보다도 외치지만, 누구보다도 관심없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게 없는 걸 종종 되뇌이곤 한다. 아니면 아예 언급을 하지 않던가. 나는 소통을 외치는 사람치곤 소통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철저히 의식 속에 자리잡게 되어버린 이 때, 순박함은 사라지고 소통,진실, 공감, 기억이라는 가치들을 외치는 이들은 대부분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 타인을 위한다고 누구보다도 크게 외치지만, 타인을 위한다고 크게 외치던 단체들의 끝은 참으로 별로였으니, 깜깜이 기부가 이루어지던 때는 어땠을까 싶다. 진정 타인을 위해 희생, 봉사하는 이들은 오히려 조용하고 묵묵히 행동했으며 다른 이들에 의해 그 선행들이 알려지곤 했다. 내가 뭐라고. 그저 소시민으로서 내 한 몸 챙기기 바삐 살아가는 사람인데 선행을 행하는 이들의 의도까지 따박따..

도희적 삶을 선망하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지방이 아닌)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도시에서 삶에 대한 선망이 있다. 마치 도시인들이 목가적인 농촌의 삶을 생각하며 환상을 품듯이. 나고 자란 곳에서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논과 밭, 그리고 그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1차 산업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간관계 및 사회뿐이다. 과거였다면 그들은 자연스레 1차 산업의 종사자가 됐을테지만, 정보와 교통의 발달로 아이들은 이 사회의 외부에 또 다른 사회가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됐다. 그런 의미로 잠깐 다른 얘기를 해보자면, 교과서에 실린 80~90년대 문학은 현대와 동떨어져있다. 그런 묘사가 있지 않은가? 시골에 사는 주인공 앞에 도시에서 한 아이가 전학을 온다는 것. 그 아이는 피부가 곱상하고 하얗다는 것. 까무잡잡한 시골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