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밤 거리를 걸었다. 다만 비가 내린 뒤라는 점이 달랐다.
비가 내린 뒤의 산뜻한 공기가, 선선한 바람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러다 문득 열대야였던 여름날 밤이 그립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이 선선한 날씨가 좋다고,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는데,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열대야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분명 열대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할 밤이다. 좋아할 사람이 있긴 할까. 특유의 그 습함과 더움이, 잠 못 드는 그 밤이. 그런데도 신기하게 그 끕끕함과 습함, 열대 특유의 무더위가 왠지 그리웠다. 어쩌면 바쁘게 살아가면서 날씨에 대해 자연스레 신경을 덜 쓰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년 여름에는 어땠지?' '재작년 여름에는?'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더웠는지, 열대야로 잠 못 이뤘는지, 아니면 무난하게 넘어갔는지. 그저, '근래에는 이상하리만큼 열대야나 장마가 별로 없지 않았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다만 대학시절 보냈던 여름날 밤만큼은 여전히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낮 동안 달궈진 콘크리트 벽에서 품어져 나오는 열기도, 열대야를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와 함께 밤산책하던 것까지도. 그래도 그것이 뭐가 좋았는가 싶다. 날짜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5월 달은 열대야를 찾기엔 아직 이른 시기지만, 내 기억 속에 서울 밤의 더위는 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새 학기마다 '봄이 사라지고 바로 여름이 오네.'하고 볼멘소리를 했었으니까. 지금은 그보다 남쪽 지방이니 더위가 더 빠르게 오지 않을까 싶지만, 도시에 열섬현상을 생각해보면 또 아닐 수도 있겠다.
어쩌면 대학시절 5월 밤이 덥다고 느꼈던 건, 중간고사가 끝난 뒤 넘쳐나는 뒷풀이와 축제로 불야성을 이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왁자지껄 이어지는 대학생들의 술자리는 재밌는 사건이 늘 따라오곤 했다. 술 마시다가 잠깐 쉬는 분위기가 되면, 어느 새 남녀 한 두 쌍이 사라지곤 없었다. 그리고선 며칠 후엔 동아리에 새로운 커플이 생겼다느니, 과에 새로운 CC가 생겼다느니 하는 소문이 들리곤 했다. 여튼 간에 5월 달도 분명 '아직 봄인데 벌써부터 덥네. 여름엔 얼마나 더워지려고.' 생각을 자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올 여름에는 그 때 그 시절의 무더위를, 열대야를 겪을 수 있을까.
그 때 가선 분명 덥고, 찝찝하다고 투덜댈 테지만, 지금은 그립다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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