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편지 - 고민 상담

어둠속검은고양이 2023. 6. 18. 11:56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이렇게 누워서 편지를 쓰는 것이요. 물론 이 편지를 읽는 당신도요. 계속 바빴다고 하면 거짓말이구요. 안 좋은 습관이 다시 시작됐어요. 이래서 습관은 고치기 힘들다고 하나봐요. 본인이 느끼기에 편해지는 쪽으로 습관이 잡히니까요. 그래서 습관을 고쳤다고 느껴도 어느 새 되돌아가 있곤 하죠.

좀 있다가 해야지. 저녁에 밤새서 해야지. 이러면서 미루다가 결국 해야 하는데....내일은 꼭 해야겠다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지요. 어쩌겠어요. 누우면 잠들게 되는걸요. 그래서 눕기 전에 해야할 일을 미리 해놔야 하는데, 퇴근하면 일하기 싫네요. 지금도 몇 글자 쓰다가 졸려서 끌 뻔 했어요. 체력도 떨어져서 예전 같지 않네요.

......
결국 잠 들고 오전에 이어서 편지를 써요. 방금 오전 일이 끝났답니다. 이제 또 자잘한 일들이 남아있어요. 미뤘던 일들과 집안일이 남아있지요. 소유한 게 많아질수록 관리하는 것도 일이네요. 여름을 맞이할 준비도 해야 하구요. 날씨가 많이 더워졌어요. 오전과 초저녁쯤은 선선해서 기분 좋은데 말이지요. 낮동안은 너무 덥네요. 밖에서 일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지요. 그래도 일은 일이니까.

일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일과가 몇 번 반복되면서 생각도 없어지는 것 같네요. 그렇다고 정말 몸과 마음이 편하게 쉬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아깝게 버린 느낌이에요. 그래도 왠지 잠만 자면서 남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좀 아깝잖아요? 여튼 그래요.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글 쓰는 것도 미뤄버리게 된 거죠. 이제부턴 글을 좀 더 자주 써야겠다 결심해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으니 자주 쓸 수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젠 친구를 만나고 왔어요.
결혼 때문에 고민이 많더라구요. 뜻하지 않게 상담해주게 됐어요. 둘 다 결혼 생각은 있는데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주저하는 것 같더군요. 직장 때문에 서로 장거리 커플이 됐는데 결혼하게 되면 한쪽이 직장을 그만둬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친구가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가기엔 외벌이 생활로 주택마련과 육아는 불가능하니까요. 반대로 여자쪽이 내려오자니 본인의 삶의 방식을 포기 못하겠는걸요. 어려운 문제죠. 그래서 여자쪽에서 대답을 미루는 것 같아요. 생각해봐야 답이 안 나올 문제이기에 자꾸만 결정하는걸 회피하는거죠. 허나 문제는 답을 회피하기엔 더 이상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거에요. 2년을 기다렸고, 앞으로 아이까지 생각한다면, 결혼을 미룰 수 없는 거죠. 하지만 서로의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서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시간만 흐르네요.

제가 예전에 이해 받으려 하지 말고, 이해하려 하지 말라는 글을 썼었죠? 가치관은 그런 거에요. 대화를 통해 이해시킬 수 없어요. 그건 그냥 그 사람으로 존재하는거죠. 머리로 납득시키거나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체념하는 것으로 넘어가는 것이지, 마음으로서 납득할 수 없어요. 한쪽이 그걸 참고 넘어가거나, 체념하거나, 무뎌지는 거지요. 상대에 대한 기대감이 늘 갈등을 가져와요. 그리고 그 기대감은 철저히 본인 입장에서 만들어진 기대감이죠. 결혼이라는건 상대방의 가치관을 있는 그대로 수용(체념)한다는 거에요. 가치관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그 기대감이 무너지는 순간 갈등이 일어나게 되지요. 도저히 수용(체념)할 수 없으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이 맞구요. 지금까지의 추억이나 감정은 고려대상이 아니에요. 그런 것들은 판단을 왜곡시켜 후회하게 만들죠. 추억과 감정 때문에 상대방의 가치관 수용에 대한 가능여부 판단이 흐려져 헤어지는 경우가 많죠.

둘이 대화하지 말라고 했어요. 대화하는 것 만으로도 여자쪽에서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서요.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자극하면 판단을 더 못 내리게 되죠. 하지만 남자쪽에선 2년을 기다렸고, 더 이상 기다려줄 여유가 없는걸요. 대신 질문지를 만들어 심리테스트 하듯이 그냥 써보라고 했어요. 정보를 제공한다는 마음으로요.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되는 식의 질문은, 또 서로가 마주하며 대화하는 것은 서로 눈치를 보게 돼서 솔직한 답변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죠.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작성해보는 거에요. 그리고 서로 나누고 집에 갖고 가서 생각해보는 거죠. 서로의 가치관에 대한 수용 가능 여부를 말이지요.

연인들 사이에 100문 100답이라는 거 있잖아요? 그거 어릴 때나 하던 유치한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상대방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돼요. 생각없이, 상대방에 대한 눈치없이, 솔직하게 답변했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지요.

어느 순간부터 생존을 위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당연해지는 것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네요.

p.s
제 코가 석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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