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있어 밤거리를 걷고 있으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르곤 한다.
비가 내리는 잿빛 하늘의 밤거리는 묘한 느낌을 준다.
그 고요함이, 그 어둠이. 간간이 보이는 네온사인은 풍경과 대비되어 제법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는 빗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사뿐히 내려앉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 내리는 빗줄기 보고서야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만큼 아주아주 작게 내리고 있었으니까. 묘한 느낌을 주는 이 밤거리를 나는 좋아했다.
그 까닭에 밤거리를 걸을 때면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와 비슷한 이유로 겨울에 눈 내리는 밤거리도 좋아했다. 추운 겨울날 밤에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으니까. 조용히 내리는 눈과 잿빛 하늘과 어둠과 인기척이 없는 고요함. 그리고 이 곳이 마냥 죽어버린 거리가 아니라는 듯 어둠을 몰아내며 남아있는 네온사인들까지도.
그렇게 밤거리를 걷다 집에 들어오면 그 흥은 깨져버린다. 내 방 안에는 잿빛 하늘도, 네온사인도, 어둠도 없으니까. 글을 쓰는 동안만이라도 그 분위기를 느껴볼까 싶어 창문을 열어보지만 종종 지나가는 차량은 적막감을 깨버린다. 그렇다고 밖에서 비를 맞으며 글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정용 플라네타리움이라고 방안에 천체를 투영하는 기계가 있다고 하는데, 그와 유사한 것으로 비내리는 풍경을 투영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걷는 것과 앉아있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기에 걷는 동안의 그 기분을 구현해낼 수는 없을 듯하다. 원래 순간순간의 그 감정들은 단 한 번 뿐 아닌가. 감정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단 한 번 뿐이기에 아무 의미가 없지만, 단 한 번 뿐이기에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 단 한 번 뿐인 인생을 나는 살아가고 있다.
덧없을 이 인생을 일회용 티슈처럼 쓰다 버릴지, 아니면 단 한 번뿐이라는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갈지는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만족스럽진 않지만 어찌저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거란 것 뿐이다. 내 삶이 다하기 전에 내 심지에 불이 붙을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부디 그런 날들이 일어나길 바라본다. 그만큼 내가 찾으려는 노력해야겠지만서도.
5월인데도 날씨가 많이 선선하다.
비가 내린 까닭도 있겠지만, 지금 이 기후는 분명히 이상하다. 1~2년 새 갑작스레 많이 바뀐 것 같다. 우려스럽지만 무척 마음에 드는 날씨다. 기후마저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지금 삶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지만, 요즘 국제정세도 그렇고, 온난화 문제도 그렇고, 근 미래에 큰 격변이 일어날 것만 같다. 부디 내 수명이 다하기 전까지 큰 격변이 일어나질 않기만 바랄 뿐이다.
시간 나면 서울로 지인들이나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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