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 991

일과라기 보단 하루 한 문장

오래 전에 썼던 말이지만 아무래도 첫 시작은 이생망이 좋을 것 같아요.이번 생은 망설이지 말 것.-2020년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 다이어리의 첫 목표 중 하나는 12월달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기록하는 것이에요. 일기라기보단 일과에 가깝지만 짤막하게라도 좋으니 꾸준히 쓰려구요. 과거에 일기를 쓰다가 반복되는 것 같아서 그만둔 적이 있거든요. 딱히 쓸 것이 없을 땐 위에 문장처럼 가벼운 문장이라도 작성하려구요.. 매일 일과쓰기보단 하루 한 문장을 기록한다가 좋겠어요. 이것과는 별개로 글은 따로 쓸 거에요.그리고 식단관리와 몸매관리를 위해서 오랜만에 몸무게도 쟀어요. 한동안 그만뒀던 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식단일기도 다시 작성하려구요. 칼로리 제한과 함께 탄단지 비율 조절도 시작해야 하는터라 꽤나..

잠깐의 묵념과 오만함

며칠 전에 떠올렸던 글을 이제서야 써내려간다.얼마전 일가족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두고 기사에서는 과거의 또 다른 일가족 자살 사건에 대한 언급과 함께 달라지지 않은 정부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현 사건에서 그들이 어째서 자살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연일 보도했다.어느 새 죽음에 대해 무감각해졌는지 그럼에도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개인이 아닌 일가족이 자살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릴만한 일이긴 하지만, 일가족이든 개인이든 어차피 기사에는 자살이라는 단어 한 마디와 하나의 사건으로 언급되고 말 일이니까. 그냥 기사를 보면서 무미건조한 빈말로 '안타깝네'라고 말할 정도 였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당시에 짤막하게 글을 썼으나, 여지껏 미루다가 이제서야 글을 마무리 지어 올리는 걸 보면 확실..

인터넷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이유 2가지

인터넷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하나는 군체화 의식와 인간에 대한 관념화다. 정확히 말해서 군체화 의식이라기보단 상대방에 대해 군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개개인의 생각보다 어디에 속해 있는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는 인간에 대한 집단적 속성 관념화와 연결되어 있다. 가령 어느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가에 따라, 그 사람은 정치적으로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있고, 어떠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으며, 지능적으로 문제있는지까지 속성으로 가지게 된다. 그래서 하나의 기준점이 잡히면 그것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에 대해 싸잡아서 말하고, 싸우게 된다.두 번째는 재단하여 추측하는 것이다. 이는 첫번째와 다시 연결되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기준점이 하나 잡히면, 상대방에 대한 파악은 다 끝나버리는 것이고, 더..

감정, 그 추한 것에 대한 결벽증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매우 다양하다. 보통 희노애락애오욕이라고 하던가.다소 편향적인 발언이지만, 감정만큼 추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시기나 질투라고 불리는 이 감정들이 굉장히 추하면서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해서 그것이 전적으로 허용되거나, 표현하는 것에 제약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기 때문에 악에 대한 감정은 서로를 위해서 자중하고, 일정부분 사회적 합의로 제약을 거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사회 시스템만을 위한 조치다. 사회를 벗어나 혼자 살아간다면 굳이 악감정을 제약할 필요는 없지만, 본인이 괴로울 거라 생각한다. 여튼 간에 ..

타임스퀘어와 너

오늘 눈이 안 좋아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타임스퀘어가 보였다.넌 가깝고 볼거리가 다양하다는 이유로 이 타임스퀘어를 무척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너와 만나고 헤어졌던 곳이 영등포 역이었던 적이 여러 번이었던 것 같다.이젠 그곳을 아무 일없듯 그냥 지나친다. 지난 날, 널 떠올리며 지하철 역을 그냥 지나쳤던 것처럼.너와의 추억은 흔적이 되어 장소에 묻힌다. 그리고 어느 장소를 지나갈 때면 네 흔적들이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오전부터 글을 쓰게 된 이유다.

외로움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떠넘기는 것이다.

당신을 생각할 때면 나는 한없이 초라해지곤 했다.살아가면서 내가 목표로 했던 것들을 이루지 못했을 때나 혹은 이러한 사실들을 되새기게 될 때면 자괴감에 빠지거나 한심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지만 나 자신이 진정으로 하찮다고 여기진 않았기에 부끄럽진 않았다. 그러나 당신을 생각할 때면 나 자신이 하찮아져서 부끄러워지곤 했다.그러나 그건 자격지심이 아니었다. 당신과 비교하면서 당신은 잘났는데 나는 상대적으로 못난 놈이라 여긴 것은 아니었으니까. 단지 한 사람의 몫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데서 오는 내 부끄러움이었다. 사회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과 함께 하려면 적어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한 사람의 몫은 해야 했으니까. 기왕이면 당신까지 함께 이끌어 갈 수 있는 커다란 사람 된다면 더 좋고.어찌됐든 당신..

아이들 사이의 주거 차별적 표현에 대한 단상

오랜만에 쓰는 뉴스거리다.며칠 전에 아이들 사이에서 주거차별이 횡행하다면서, 월거지나 전거지와 같이 주거로 사람을 나누어 부르는 경우가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필자는 결혼도 하지 않았거니와 자식 또한 없고, 솔직히 기사는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지라, 이것이 횡행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2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는데, 하나는 이런 현상이 적게나마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뉴스에 등장했으니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더 퍼질 거란 점이다. (가만 보면 뉴스 기사는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책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조회수를 위해 오히려 자극적인 문구로 분란을 조장한다.)여튼 간에 이러한 '주거 차별'이 새삼스럽게 처음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차별적인 용어가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며, 이것이 의..

우울감과 잡념들

문득 우울해질 때면 티스토리를 켜고선 글을 쓰곤 한다. 그렇다. 그냥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지금 문득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 지금 내 상황이 내가 꿈꾸던 미래가 아니었다는 걸 갑작스레 깨달아서가 아니었을까. 내가 꿈꾸는 내 미래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거의 망상에 가깝다. 내 능력으로서 직업을 인정받고, 나 역시 그 직업을 사랑하며, 그와 더불어 물질적 풍요와 여유가 있는 삶이었다. 이러한 능력과 풍요로운 물질적 기반은 남들이 다하는 것처럼 연애도 하고 한두가지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미럐는 산산조각 났다. 난 내 능력을 증명하지 못했고, 먹고 살기 위해 되는대로 직업을 구하려 했으며, 그 결과는 물질적 풍요나 여유로운 삶과 멀었다. 능력으로 자본을 축척할 수 있는 시..

겪어보기 전까진 대부분이 무가치한 정보들

너무. 뜻 :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넘어선 상태로.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너무 긍정적으로 살 필요도 없지만, 너무 부정적으로 살 필요도 없는 현실.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른 한쪽을 볼 수 없다. 의도하여 다른 한쪽을 안 볼 수는 있지만, 의도치 않게 다른 한 쪽을 볼 수 없다면, 인생의 굴곡 속에서 미처 대비치 못하고 더 크게 고통받으리라.대체적으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정보들은 부정적이며, 긍정적인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알짜배기 정보는 퍼지면 퍼질수록 그 가치가 내려가기에 가족이나 친척, 주변 지인들에게나 슬쩍 알려줄 뿐, 매번 앓는 소리만 나오는 것이 다이다. 일본인이 음흉하다느니, 양면적이라니 해도, 시기와 질투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 사람도 마찬가지..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밤이네요. 날씨가 쌀쌀해지는 밤이 올 때면 당신을 그리워하곤 합니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흔들리지 않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내 능력은 너무나도 미진해서 당신의 선택이 늘 현실을 마주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좀 더 무리해서라도, 또 그럴 능력이 있었더라면, 저는 기꺼이 그 선택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전 무능력 했고 포기라는 쉽고 빠른 길을 택했습니다.그렇게 내버려둔 당신은 늘 마음 속에 숨어있다 나타납니다. 포기는 나에게 열병을 남겼고 당신의 그리움은 열꽃처럼 피어오르다 저뭅니다. 그럴 때면 저는 약을 먹듯이 당신 생각을 삼키며 글을 씁니다. 분명 언젠가는 약을 먹지 않아..

무료한 일상의 즐거움

가끔가다 일상에서 무료함을 느낄 때면 먼 곳에 있는 지인들의 일상을 떠올리곤 합니다. 속사정은 알 길 없는, 겉으로만 보이는 지인들의 기운찬 일상을 통해 부지런함이나 열정, 행복감을 되새기곤 합니다. 마치 모닥불 옆에서 온기를 갖는 것처럼요. 그리곤 제 일상으로 돌아와서 무료한 일상의 즐거움을 되찾습니다. 변해가는 계절을 느끼면서 전과 다르게 외출할 때 옷깃을 여민다거나, 낮동안에 따뜻한 햇살을 받기 위해 창문을 연다거나 하는 이 지극히 다를 일 없는 이 일상들의 사소한 달라짐에서 무료함의 즐거움을 깨닫곤 합니다. 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무료한 일상의 즐거움에 안주해버릴지 모릅니다. 일상의 즐거움을 깨닫는 것도 좋지만, 우린 변화해야 합니다.

사회의 몰락, 빈부격차가 커져간다는 것

오래 전에 빈부격차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해, 빈부벽차가 커졌을 때 갖는 의미에 대한 것이었지만서도. 그렇다. 빈부격차가 클 경우,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사회적 분열과 치안불안이 야기되며, 또한 정부에 잘못된 신호를 전달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를 늘리고, 이는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왜곡시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며, 이 글은 빈부격차가 '커져가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글이다. 빈부격차가 커져간다는 것은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며, 이는 분명히 사회적 위기다.중산층이 사라지는 경우를 모형으로 그렸을 때, 대표적으로 모래시계형이 있지만, 피라미드형, 역피라미드형도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척도로 역피라미드형이 나올 경우는 불가능에 가깝다. 다수가 ..

my way

세상은 결과만을 보기에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결과의 가치로만 바라보기 쉽다.그러나 그러한 가치 평가는 대부분 만족스럽지 못하다. 스스로가 해온 것들의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만족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큰 결과일 것인가. 사람들의 욕심은 끝없고, 성공할 때마다 그 다음 성공의 크기는 더 커져갈 뿐이다. 만족은 한순간이지만 불만족은 영원하기에.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결과로 결정하기 보단 나의 선택 이후의 걸어온 길로 결정해야 한다. 선택엔 옳고 그름이 없고, 선택은 결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린 결과를 보고서 '아, 그 때 그렇게 선택했더라면...'하고 후회하곤 한다. 그러나 선택은 늘 결과를 모른 채 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선택은 선택한 그 순간으로 다 끝난 것이다. 선택과 결..

인터넷 커뮤니티, 생각을 멈추게 만드는.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것만 같다.사실, sns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이 대단하긴 한가? 아니, 사실 대단한 글들도 많긴 하다. 논리적 구조를 갖추고, 충분한 조사를 한 뒤에 올리는 글들도 있고, 해당 분야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를 법한 정보들도 올라오기도 한다. 인터넷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아서 이곳에선 법,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의료, 과학 등 모든 것에 대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인터넷은 분명히 키워드, 주제를 통해 세대에 따른 관심사나 사회의 흐름을 일부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대체적으로는 그냥 흘러가는 듯한 글이 대부분이다. 필자가 이 공간에서 넋두리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듯이, ..

닳고 닳다

살다보면 혹은 나이를 먹어가다 보면 다들 닳고 닳아져간다고들 말하곤 한다. 그것은 마치 제품이나 기계들 같은 것들이 낡아가거나 고장나는 것처럼 사람의 육체가 노쇠하는 걸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정신적인 부분이 닳아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더 큰 것일지도 모른다.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닳고 닳아지면서 자신의 곁에 자리 하나 비워둘 정도의 여유조차 없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 정확히 말해서, 그 옆자리는 비워져 있는 것이지, 비워둘 여유는 없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들이 SNS에서, 커뮤니티에서, 인터넷 방송에서, 모니터 너머의 행복을 바라보곤 한다. 마치 진열되어 있는 상품을 바깥에서 아이쇼핑 하듯이...나는 언제부터 닳아졌을까. 어느 순간부터 누구 한 명을 곁에 두기 어려울 정도로 닳게 된 나를 ..

인터넷이나 SNS를 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2가지

인터넷은 개인공간이 아니라 광장이다. 인터넷이나 SNS에서 돌아다니는 모든 글이나 영상은 당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우리는 인터넷에서 수 많은 싸움들과 논쟁들을 보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싸움들과 논쟁이 의미없는 이유는, 그리고 그 싸움들과 논쟁들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개로 되어 있는 모든 영상이나 글은 누구나 다 찾아와서 볼 수 있지만, 그 영상이나 글을 올린 사람은 모든 대상을 고려하고 작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동화책을 만드는 작가들이 아이들의 특정 나이대를 고려해서 작품을 만들듯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나 영상도 대체적으로 시청자들이나 독자들을 고려해서 만든다. 예를 들어 스포츠에 관한 글을 올리는 사람은 해당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혹은 해당 스포츠..

호사가들의 가십거리가 되어버린 죽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접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나치거나, 인지하더라도 내 사람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없는 이상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생각해보라.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상의 어딘가에서는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곳이 중동이나 아프리카 혹은 어느 남 모를 가정집의 지하실에서 죽어간다고 하면 나는 그것을 인지할 수가 없다. 또한 그 죽어가는 사람이 나와 전혀 무관한,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면, 온 세상 인류를 사랑할만큼 마음이 넓지 않는 나는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 무덤덤할 것이다. 대체적으로 '죽었네'정도로 끝나겠지만 안타까운 사연이나 장면이 추가된다면 약간의 동점심을 갖게 될 것이다.나는 소시오패스가 아니다. 이성적..

쌀쌀한 새벽길

지극히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당신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길을 나서는 새벽에는 바람이 몹시도 차갑다. 여름이니, 가을이니 이야기 했던 때가 바로 한두달 전이었던 것 같은데. 아침 일찍 출근길을 나서는 당신도 이 찬 바람을 맞으며 지나가지 않을까 싶었다.그래서 였다. 조금이나마 마음만이라도 따뜻해지길 바라면서. 날씨는 갈수록 차가워질테지만, 당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이 모진 바람들을 이겨내는데 조금쯤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그러나 나의 이 마음이 당신께 전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부부 사이에도 모르는 것처럼 차마 건넬 수 없는 내 마음 역시 당신께 말할 리 없으니까 말이다.분명히 당신은 잘 먹고, 잘 지내고, 잘 살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당신이 늘..

당위법칙들, 지적질 이전에 기본예절부터

당위의 원칙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무척이나 쉽다. 정확히 말해서 당위의 법칙만을 원칙으로 삼아 잣대를 적용시키거나 남을 지적하는 것이 쉽다는 소리지, 사실 당위의 원칙대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충분히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세상은 당위법칙대로 흘러가지도 않고, 당위라는 것은 허구에 가깝기 때문이다. 당위는 애초에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임시 약속에 불과하니까.그런 사람들이 있다. 모든 일들과 사건에 당위법칙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그들에 당위법칙은 마치 성서에 나오는 모세의 십계명과도 같아서 절대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그러한 신성불가침인 규칙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여기는 법과 불법을 구분짓는 당위법칙은 '최소한'의 약속일 뿐이고, 도덕적인 것은 얼마든지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그리고..

자기부정의 채찍질 그리고 도전과 경쟁

어제 비가 내리고 나더니 날씨가 쌀쌀하네요. 오후에는 해가 나온다고 하던데, 기대해봐야겠어요.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분명히 필요해요. 그것은 자신을 믿는 것만큼이나 중요하지요. 그러나 그러한 자기부정이 사실과 현실에 기반하지 않고, 단순한 자학에 그친다면 그것만큼 독인것은 없어요. 그래요. 독. 그것은 마음 속에 스며들어 있다가 갑자기 불쑥불쑥 나타나서 자존감과 마음을 갉아먹지요. 그래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회피하게 만들어요.하지만 현실에 기반한 자기부정은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만들어 주지요. 일종의 채찍질이라고 할까요.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잘못되면 당당함을 넘어서 오만함으로 가기 쉬워요. 과신하게 된다고 하죠. 그리고 그것 역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지요. 그렇기에 적정수준의 자기부정-..

티슈처럼 쓰고 버리는 인생 그리고 경험

적절한 정보는 판단력에 도움이 되지만 많은 정보는 오히려 과도한 감정소모와 판단력을 발생시켜 선택장애를 일으키곤 한다.경험이라는 것도 그와 유사하다. 다양한 경험들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시간을 소모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경험들은 오히려 전문성을 헤칠 가능성이 높다. 효율적인 측면에서 필요 이상의 경험들은 의미가 없다.과거에는 무작정 경험이 다양할수록 좋다고 생각했던 나지만, 세월이 흐르며 느끼는 바는 다양한 경험보다 적절한 밸런스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적당히 다양한 경험과 적절한 전문성이 중요한 듯 싶다.그러나 어쩌겠나. 인생이라는 것이 살아보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인생을 효율적으로만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1회용 티슈처럼 1번쓰고 버리는 것처럼 낭비하면서 살아가..

공정경쟁과 학벌주의의 괴리감 그 원인들

오래 전에 필자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에 대해 리뷰를 한 적이 있다. 그 책은 사회적으로 학벌지상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는 달리 대학생들 상당수가 학교별로, 정시와 수시별로 급을 나누며, 오히려 학벌에 의한 차별을 찬성한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도 그에 대해 많이 공감을 하며, 학벌지상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이기도 했다.며칠 전에 경향신문에서 '촛불을 든 고려대 학생들의 모순과 이중성'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대체적으로 내용은 공정을 내세운 학생들이 학벌주의를 못 벗어나고 특권 강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 역시도 그 기사가 상당부분 일리가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았다.우리는 공정이라는 기준을 어디서부터 잡아야 할까. 어째서 학생들이 학벌주의를 옹호하게 되는 것..

전문성이 요구되는 노동시장과 가난의 대물림

어제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나더니 오늘은 해가 뜨네요. 날씨가 더워질 모양입니다.오늘 아침에 신문 기사를 한편 봤어요. 기사라고 해봐야 커뮤니티에서 올라온 인상깊은 글을 하나 소개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요. 그래도 그 글이 퍽이나 인상깊어서 찾아 읽어보고선 이렇게 잠깐 글을 써요.글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그러나 생각만으로 글을 써내려가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오히려 생각만으로 이루어진 글보다 경험이 녹아있는 통찰력 있는 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사랑받아요. 공감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생각들을 표현했다는 뜻이겠지요.그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가난은 몸과 마음을 낡게 만들어요. 정확히 말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가난에 의해 낡..

기억하려고 애쓴다는 것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애쓴다는 것. 기억하려는 의지와 행위는 망각으로부터 끝없이 도망치려는 혹은 맞서 싸우는 행위다.유형의 것들은 소유하고 있으면 그만이지만, 무형의 것들은 기록이라도 해야 그나마 보존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보전조차도 언어능력상의 한계와 해당 기억의 미화, 왜곡으로 인한 불완전한 보존일 뿐이다.여튼 간에 이러한 잊지 않으려 애쓰는 나에게서 메모의 강박이나 사소한 것의 집착이 느껴질 때면 나는 오래전에 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내곤 한다. 당시엔 소중하게 여겼지만 어느 순간 잊고 지냈던 것들의 파편들을 말이다. 그리고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당시에 소중하다 여겼지만, 그것을 잊고 지내는 동안 네 삶에 어떤 영향이 있었나?" "내가 현재 기억하려 하거나 소유하려는 것들도 잊고 지냈던 지난..

오래도 했다.

이렇게 햇빛이 비추고 바람이 볼을 쓰다듬는 기분좋은 날에는 문득 너를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그런 너를 그리기 위해 이렇게 종종 글을 쓴다.'넌 상담사 같은 직업을 하면 잘할 것 같아'라고 말하던 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난 실제로 설명하거나 말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성격이 모나지 않아서 선생님이나 공무원, 상담사가 잘 어울렸다.너에게 나는 어떤 이미지나 어떤 모습이었을까. 넌 나에게 '넌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라든지 '넌 상담사 같은 직업을 하면 잘할 것 같아'와 같은 말들을 나에게 하곤 했다. 그런 너의 말 속에서 네가 나에게서 척척박사나 달변가의 면모를 찾아내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곤 했다.곰곰히 생각해보면 난 너에게 별다른 말을 해주진 않았던 것 같다. 너만의 매력이 가장 너다운 것이다는 ..

언론 탄압과 낙인 - 책임회피와 권력

요즘 언론은 너무나도 무책임하다.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하면서 그 '앎'이라는 것에 제대로 된 책임감 하나 없다.제대로 사실여부를 따지지 않고 '아니면 말고'식으로 보도하며, 왜곡된 정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 언론에 행태에 대해 뭐라 비판하면 언론 탄압이니 뭐니 하면서 정작 언론이라는 펜대를 가지고서 이 사람, 저 사람 낙인을 찍어 마녀사냥에 앞선다.늘 이슈에 목말라 하다보니, 조금이라도 유명인이 얽혀 있기만 하면 일단 기사를 써대고 본다. 후에 진실이 밝혀져도 그 역시 또 다른 하나의 기사로 내보내고 끝이다. 낙인에 대한 파급력이 강력한 현대 사회에서 이에 대한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언론은 분명히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저들은 그 책임에 대해 언론 탄압..

기회를 놓치고서 아쉬워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다들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거에요. 타야만 하는 버스를 놓쳐서 안절부절 못하고 초조했던 경험이요.우린 그럴 때마다 '왜 좀 더 일찍 나오지 않았나?'하고 자책하며 다음 버스가 오길 기다려요. 아니면 늦지 않기 위해서 택시를 타고 가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다음 버스 정거장에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지는 않지요.그래요. 지나가버린 기회는 이미 잡을 수 없어요. 초조해한다고 달라지지도 않고요. 보내버린 기회는 그냥 보내줘야만 해요. 그리고 얌전히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해요. 아니면 버스 대신 택시를 탄 것처럼 다른 기회를 만드는 수 밖에요.

연습장과도 같은 인생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며 퇴색되고 빛 바래지지만, 잊고 싶은 기억들은 잊고 싶을 수록 더 강하게 뿌리깊게 박힌다. 있었던 사실들을 없앨 순 없다. 그건 마치 연습장에다 볼펜으로 낙서한 것과 같다. 수정액으로 덧발라도 흔적은 남는다. 오히려 더 지저분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우린 그 사실을 덮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책장을 넘기듯이 말이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우린 새로운 흰 공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다시금 새출발을 하게 될 것이다. 잘라낼 순 없지만 덮을 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