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빈익빈 부익부의 위험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고, 그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이번엔 다른 의미로 빈익빈 부익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뉴스나 기사, 경제학 교과서에선 빈익빈 부익부는 안 좋다고 말하곤 한다.
돈이 순환되어야 경제가 발전하는데 순환되지 못한다(부자든 빈자든 옷은 1벌씩 입고, 밥은 1끼씩 먹는다.)거나 경제학적 효율성을 통해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올리는 것을 추구하는데, 오히려 삶의 질이 떨어뜨린다거나 인간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가 지적했듯이 국가의 정책에 있어서 사회적 제도 개선방향이 두 방향으로 잘못 나뉘게 되는 이유도 있다.
그런데 과연 빈익빈 부익부는 안 좋을 것일까? 사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빈익빈 부익부를 좋아할 것이다.
바로 부자들이다. 부익부에 속한 이들이니까.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산 증식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빈익빈 부익부가 되면 '돈 그 자체의 영향력'이 커진다. 무슨 소리냐면, 부자는 늘 소수고, 빈자는 늘 다수다. 부자는 절대 다수가 될 수가 없다. 돈은 희소해야 하니까. 빈익빈 부익부는 한번 발생하면 가속도가 붙는다. 그렇기에 다수가 속한 빈자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이들에겐 돈 한 푼 한 푼이 정말 아쉬워질 것이다. 반대로 부자들에겐 돈이 '흔해'진다. 그 결과는?
부자들에게 몇 푼 안 되는 돈 쪼가리지만, 빈자들에게 있어서 몇 푼씩이나 하는 돈 쪼가리로 사람을 부려먹을 수 있게 된다. 부자들에게 있어서 흔해 빠진 돈은 그저 유상무상의 물건일 뿐일 테지만, 그 물건을 통해 얼마든지 욕구나 욕망을 충족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 시스템을 바꿀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빈자들은 돈에 메이게 되니, 돈을 위해서 하나씩 하나씩 무언가를 희생해야만 할 것이다. 즉 절대 다수가 절대 소수에게 종속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니 부자들이 빈익빈 부익부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뭐, 경제학 교과서의 원론적 이야기로는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면 수요가 줄어들고, 물건이 안 팔리니 회사가 도산하게 되고, 다시 소비를 줄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경기가 안 좋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뭐 그런 말들이 오갈 것이다. 그러나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처럼 경기 안 좋아져도 부자는 살아남는다. 비빌 언덕이 충분히 있으니까. 오히려 돈의 힘 그 자체는 강해져서 영향력이 증대된다. 지금 당장 나의 삶이 안 좋아지긴커녕 영향력이 증대되고 앞으로 고난을 대비할 힘도 충분히 하고, 오히려 돈을 더 벌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가 올 것인데, 굳이 먼 미래라든가 사회 전반적인 국민의 미래까지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잠깐 딴 소리를 하자면, 그렇기에 정치인들을 부자인 사람을 뽑으면 안 된다. 뭐,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안다.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배척당해야 하나? 정치 참여에 제한을 둬야 하나? 차별을 하자는 건가? 하는 뭐 그런 도덕적 정당성을 피토하듯이 쏟아낼 것이다. 물론 필자도 그래선 안된다고 여기는 사람 중 하나다. 다만 선거를 하는 사람들이 잘 생각해보길 바라는 바이다. (부자들이나 부자들의 친인척들도 선거는 한다.) 부유한 정치인들은 빈익빈 부익부, 부의 양극화를 선호할 것이고, 그렇게 시스템을 고치려 들 것이다. 어떤 이는 부자라고 해서 그에 해당하는 모든 의원들이 부의 양극화를 촉진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라 말할 것이다. 물론 그것도 맞다. 부자라고 해서 다 나쁘겠는가?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부의 양극화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잘 선별해야 할 것이지만, 과연 잘 선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정치라는 것이 원래 각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본질일진대, 과연 부자인 정치인이 부자들을 대변하지 않을까? 물론 빈자들의 입장을 대변해서 뽑힌 재산이 많은 의원들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해 부자들의 입장을 대변 하는 가난한 의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부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가난한 의원들은 본 적이 없다. 한번도. 단, 빈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돈 많은 국회의원은 몇몇 본 적이 있어도.
그리고 부자인 국회의원들을 뽑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돈의 희소성으로 인해 빈자가 대다수이며, 부자가 소수인 사회는 당연하다. 그 사회에서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사회의 대부분의 시스템이나 제도가 대다수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것은 다수결이라는 원칙 아래, 빈자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나 제도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입장을 대변해주기 때문에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이나 제도를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부자라면? 그들은 빈자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옛날 모 후보가 고시촌 방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던 것이 기사로 나온 적이 있다. 그 고시촌 방마저도 고시촌에 살아본 이들은 '나름 좋은 방이네'라고 말했다던 웃지 못할 이야기다. 부자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그대로 유지시킬 힘이 있다. 더우면 에어컨을 마음껏 키고, 추우면 보일러는 뜨겁게 킬 수 있다. 그들에게 난방비나 냉방비는 거의 푼돈이니까. 그들에게 있어서 환경 변화는 별 다른 위협이 되지 못한다. 있으나 마나한 돈을 조금만 더 지불하면 예전 그대로 식사를 할 수 있고, 예전 그대로 옷을 입으며, 늘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습도마저도 조절해서 지낼 수 있다. 날씨는 좀 불편할 수 있겠지만. 절대 다수의 빈자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특히나 명예와 권력이 죽어가고 있는 현 대한민국은 더욱 그렇다.
명예와 권력, 돈은 삼권분립처럼 서로를 견제할 수 있을 욕망들인데, 사회적으로 명예나 권력이 죽으면 돈의 힘이 강해진다. 그리고 돈의 힘이 강해지면 부정부패는 막을 수가 없다. 명예나 권력을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는 사람을 감시하거나 상대 파벌을 견제할 것인데, 명예도 없고, 권력도 없으면 서로 짝짜꿍이 되어 부정부패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돈을 위해서. 그렇게 되면 사회로서의 기능은 끝이 다가온다. 부정부패를 막을 수 없는데, 사회 시스템이, 공직 사회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빈익빈 부익부 - 부의 양극화는 돈의 영향력을 키우고, 명예-권력-돈 이라는 삼권분립 견제 체제를 망가뜨리며, 독재사회처럼 돈이 횡횡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이득보는 이들은 바로 돈을 쥐고 있는 부자들이다. 물론 권력의 정점에 달한 이(독재국가)는 부자들에게서 돈을 빼으려 들겠지만 말이다.
결국 부의 양극화는 사회 체제 자체를 망가뜨리고, 절대 다수를 절대 소수에게 종속시키는 사회를 만들어낸다.
'기록보존실 > 잡념들-생각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당히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 부류의 인간. (0) | 2023.07.30 |
---|---|
불신이 디폴트 값인 사회 (1) | 2023.07.29 |
자존감과 자존심 (1) | 2023.07.23 |
관계에서 끼리끼리 모이는 이유 (0) | 2023.07.02 |
바닷가와 명상 (0) | 2023.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