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부끄러운 일들, 잊고 싶은 일들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 기억들은 오히려 더욱 기억에 남아 우릴 괴롭히는 반면에 평화로웠던 기억들, 일상적인 일들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당연시되던 일이었으니까.
우린 당연하다 느끼는 것들을 소중히 하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마치 체화된 것과 같다. 말 그대로 내 몸처럼 일상적인 거니까. 내일도 해가 동쪽에서 뜰 거라 믿는 것처럼 당연히 그러하며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까.
반면에 비일상적인 일들은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의 기억이 되어 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슬픈 일, 부끄러운 일, 잊고 싶은 일들은 만들고 싶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그런 일들을 만들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시도를 하지 않으면 된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조차 없듯이.
대신에 성공, 기쁨, 추억이라는 것조차 생기지 않을 것인즉, 이러한 삶은 마치 저 먼 남쪽 해안가에서 태어나 먹고 자라고 새끼를 낳고 살다 죽는 하나의 거북이와도 같다. 아니, 거북이 조차 알에서 깨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바다를 누비듯 강렬했던 생존의 욕구를 쏟아부은 적이 있으니 사람으로 치자면, '왕년에 내가 말이야~'라고 자랑할만큼 커다란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굳이 비유하자면 아무 일 없이 늙어 죽어가는 저 먼 남쪽 해안가의 야자수 나무 같은 것이 아닐까.
불행이 있어야 행복이 있듯이, 실패가 있어야 성공의 맛이 더 달고, 수치스런 기억들, 슬픈, 잊고 싶은 기억들이 있어야, 그러한 도전이 있어야 성공과 기쁨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생이 롤러코스터로 비유되는 이유고, 삶이 다채로워지는 이유다. 기왕이면 늘 행복했으면 싶지만, 그렇게 되면 당연한 일이 되어 기억 나지 않을 테니까.
인생이라는 요리엔 다양한 조미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기억들은 그 조미료의 흔적들이다.
그렇기에 괴롭거나 슬픈 기억들이 때때로 우릴 괴롭힐지라도 받아들이고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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