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품지마관
감독 : 왕정
개봉일 : 1994.3
장르: 코미디
구품지마관.
주성치식 코미디가 돋보이는 작품. 그러나 감독이 주성치가 아니라는 것이 의외다.
구품지마관이란 요즘 말로 치면 말단 관리직 공무원이라 할 수 있는데, 또 관리직 공무원이라 하기엔 조금 애매한 것이 과거에 등용은 되었으나 확실한 관직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로 한 마디로 전보 대기 중인 관리직 정도라 보면 된다. 9품 말단이라 하니 9급 공무원처럼 보이긴 해도 과거에 등용했으므로, 엄연히 5급 '관리직'이다. 그런데 현령을 보좌 혹은 현령을 대리한다는 점에서 현 시대의 5급보다는 권한이 쎈 편이기도 하다. (삼권분리 안되어 있었으니까...) 나라에서 현령을 미처 파견하지 못했을 때, 상위 지방관이 임의로 지정이 가능했으므로, 매관매직이 성행했다는 점에서 사고 팔수 있는 5급 공무원이다...... (영화내에서도 주성치가 매관매직으로 구품지마관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 현은 옛 행정구역 단위로서 요즘으로 치자면 면 단위를 3~4개 합친 정도고 넓은 현은 군 단위 정도의 규모를 지니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구품지마관, 말단 공무원이 현령 대리를 맡아서 생기는 일에 대해 다루고 있는 영화다. 주성치는 등장할 때부터 부패한 관리로 나온다. 아버지도 부정 부패가 심했고, 한 때는 많은 돈을 모았으나 결국 실패했으며, 주성치는 아버지를 따라 열심히 부정부패를 일삼아 돈을 모으려고 구품지마관을 산다. 허나 성격이 모질지 못하고 막상 배운 것이 없어서 재판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러다 억울하게 누명 씌운 피해자를 두둔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가해자로 등장한, 부패한 지방관의 아들을 잡아 넣고, 부패한 관리도 잡아 넣으므로써 청렴한(?) 관리로 거듭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포스터에 있는 한자를 보면, 주성치가 들고 있는 칼날 옆에 구품지마관 백면포청천 이라 써져 있다. 포청천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청렴하게 판결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로 검은 피부와 이마에 초승달 같은 문신이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중국에선 검은 색은 충직함이나 정직함을 상징하고, 이에 대비되는 하얀 색은 간사함이나 비열함을 상징하는데, 삼국지 영화에서 조조가 흰 피부로 나오는 것도 이에 비롯된다. 즉 포스터에서부터 백면포청천이라는 말로 대놓고 중국 전통 클리셰를 박살내고 있는 셈이다. 코미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언뜻언뜻 나오는 장면들이 섬뜩할 때가 있다. 유머스럽게 꾸몄지만 날카로워보이는 칼날 밑에 오맹달 모습을 그린 포스터도 그렇고, 거짓 자백을 한다며 주둥이를 매로 때리는 장면에서 피를 흘리는 모습도 그렇고, 장난스럽게 진행되지만 중간중간 잔인한 장면들이 보인다. 영화를 코믹하게 그려냈지만, 마냥 웃고 즐겁게 볼 수만은 없다는 부정부패의 위험성을 넌지시 알리려는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주성치식 개그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