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
영화 새벽의 저주다. 워낙 유명해서 따로 말이 필요 없을 영화다.
고등학교에서 처음 접한 후, 오랜만에 다시 보았어도 역시 명작이다.
제 2의 좀비 영화 붐을 일으킨 흥행을 일으킨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걸어다니는 좀비'라는 발상을 뒤집어 '뛰어다니는 좀비'를 만듬으로써 긴장감과 공포감을 극대화 시켰다. 아마 이 영화를 기점으로 좀비 영화는 다시 한번 나뉘게 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의 원작, dawn of the dead를 제작하신, '현대 좀비 영화의 아버지' 조지 A 로메로는 좀비가 뛰어다닌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부정하셨다.
(영화제목이 똑같다. 따라서 이 영화는 새벽의 저주로 지칭하겠다.)
사실 어찌보면 로메로의 입장이 이해가 갈 만도 하다.
좀비가 무서운 이유는 '시체'가 살아서 움직인다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고, 물리면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저들과 똑같아진다는 사실이 끔찍하기 때문이다. 부자연스럽게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는 '시체'라는 점을 부각해준다.
영화 새벽의 저주 역시도 그런 부분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나, 원인 모를 것들이 사람을 향해 '달라든다', 즉 무기력에 가까운 일방적 사냥당한다는 느낌에서 오는 공포감이 더욱 커보인다. 발상을 뒤짚은 건 대단하다. 왜 시체는 달리면 안되지? 라는 것.
그 결과, 저것은 시체라기 보단 날랜 흡혈귀에 가까워져 버렸다. 짐승에 더 가까우려나? 아니면 짐승과 흡혈귀의 중간지점쯤이 될까 싶다. 감염되고, 사람을 먹이 삼고, 지능은 없고, 낮에는 돌아다닐 수 있는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엄청난 흥행으로 좀비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 조차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대표 좀비 영화가 되어 버렸다.
이 영화는 원작부분을 많이 차용한 듯 보이면서도, 실질적인 알맹이는 다 빼버렸다. 현대에 맞게 다시 리메이크 하다보니, 원작에 있던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비평을 뺄 만도 하다. 사회 문제가 일정 부분 해소된 것도 있고, 그보다 공포감의 극대화와 오락성에 초점을 맞춘 탓도 있다.
백화점을 무대로 한 것은 원작을 따랐지만, 원작이 백화점을 무대로 세운 부분이 이 영화에서는 빠졌다. 빠졌다기 보다는 다소 희석됐다. 오히려 백화점에서 적응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주인공들을 보여줌으로써, '나는 전설이다'의 맥락과 유사해진 것처럼 보인다. 세상이 온통 좀비로 뒤덮여도, 결국 백화점 안에서 '안전'이 보장된 이들에게 일상생활은 반복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좀비를 오락거리 삼아 죽여가는 모습에서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속의 인물 변화나 군상들을 보는 점도 재밌고, 종말을 노래하는 인트로 부분은 전설급이라고 회자되고 있을 정도니 보길 바란다.
추후에 원작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좀비 영화 매니아라면 추천.
재난 영화(?), 고어 영화, 공포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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