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영화

남산의 부장들

어둠속검은고양이 2021. 2. 17. 12:33

감독 : 우민호
장르 : 드라마
개봉일 : 2020. 1. 22

분명히 도발적인 소재였기에 이슈화 됐던 영화.
그럼에도 관객들을 손익분기점만큼 모집하지 못했고, 2020년 초반 여러 이슈들로 인해 유야무야 묻힌 아쉬운 영화.

영화가 무척 재밌다.
이 영화는 팩션(fact + fiction)이기에 일부 역사적 사실 내용을 생각하며 보는 재미가 있지만, 대한민국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봐도 재밌다. 물론 역사적 사실 내용을 기억하며 본다면 영화에 나오는 것들에 해석이 편하긴 하다. 가령 남산에 위치한 중앙정보부가 어떤 위상을 지닌 곳이었고, 어떤 일을 하던 곳이었는지, 그 당시에 대통령이 어떻게 집권을 했고, 어떤 식으로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했는지, 그 사이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었는지 등등 이런 사전적 배경을 알고 있다면 좀 더 배우들의 역할에 대해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필자가 재밌게 본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런 배경지식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제 3자의 시각으로 이 영화를 리뷰하긴 어려울듯 하다. 사전 지식이 없는 외국인들이 봤으면 어떤 느낌일까.

이 영화의 특징은 전체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인물들 간의 관계, 그리고 심리적인 묘사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가 앞서서 이 영화를 대한민국과 전혀 무관한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 가정하고 봐도 재밌을 것이라고 평한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나 갈등은 인물들간의 대사를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흘러가는 사건들은 간략하고 쉽게 드러내고, 그 사건들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들의 고뇌와 눈치 싸움에 집중함으로써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것은 정치적 사건이지만, 최대한 특정 시각들을 배제하여 그저 인물들의 갈등을 촉발시키는 배경 그 자체로만 놔둔다. 영화가 논란이 없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이런 영화를 다루다보면, 고증 논란, 그리고 감독의 특정한 시각으로 인한 논란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애초에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축소하거나 배제해버렸으니.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고증이든 뭐든 어떠한 이유로 영화 자체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도 탁월하지만 그러한 연기를 받쳐준 연출 또한 매우 훌륭했다. 적절한 음향과 클로즈업, 적절한 화면 전환 등의 연출방식들은 이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흐를지 뻔히 알면서도 '언제 터질까?' , '어떻게 행동할까'와 같이 '언제, 어떻게' 처럼 과정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든다.

주연 배우들 모두 연기력이 훌륭했지만, 역시나 돋보이는 것은 주인공인 이병헌이다. 그의 절제된 행동과 대사 속에서 그가 연기한 김규평이라는 인물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난다. 배우 이병헌의 임팩트가 너무도 강해서 김규평이라는 인물이 지워지는듯한 느낌도 든다. [등장인물 : 김규평] 이게 아니라 [등장인물 : 이병헌] 그런 느낌. 흔히들 연기력과는 별개로 연기 스펙트럼을 가지고서 어떤 배우는 넓다느니 어떤 배우는 좁다느니 평가를 내리는데, 보통 전자에서 꼽히는 배우가 이병헌이다. 이병헌이 연기를 하면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냄새가 지워지고 그 캐릭터 자체가 된다고들 한다. 그와 유사한 느낌이랄까. 이번 영화에서 이병헌이 등장인물을 연기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이병헌 그 자체가 이물로 등장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연기를 보는 맛이 있고, 한편의 이야기를 보는 맛이 있다.

분명 장르 자체는 사람들의 취향이 갈릴 수 있는 영화다.
액션도 아니고, 공포도 아니고, 사건 사고 터지고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내적 심리 묘사와 정치 싸움, 관계와 수 싸움 등이 주를 이루는 영화다. 이 영화는 딱히 
기존 역사적 사건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그런 시의성 있는 영화는 아니다. 만일 그런 것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 필자가 <국가부도의 날>을 보고 실망했던 것처럼 말이다. 드라마 <자이언트>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이 영화도 재밌게 볼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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