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어둠속검은고양이 2020. 9. 13. 14:37

퐁네프의 연인들

감독 : 레오 카락스
장르 : 로맨스, 멜로
개봉일 : 2014. 12 . 4 재개봉

오래 돼 보이는 포스터.
1991년 제작, 레오 카락스 감독의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이다.

이 영화를 뭐라 평해야 할까.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서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말하거나, 잊을 수 없는 명작이라 하거나, 여운이 가득 남는다고 말하는데, 나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뭐라 딱 말하기 참 어려운 영화다.

이 영화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뭔가 강렬하게 충격적인 것도 아니고, 여느 헐리우드 영화처럼 펑펑 터지고, 온갖 볼거리가 넘쳐나 직접적으로 인상을 남기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여느 멜로, 로맨스 영화처럼 잔잔함과 달달한 느낌으로 여운을 남기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로서 연출이 매우 파격적이라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선사하는듯 하다. 이 영화가 소재를 펼쳐내는 방식들이 나에게 주는 충격을 비유하자면, 냇가에 작은 돌을 하나 떨구는 느낌이다. 이 영화는 고요한 가운데 확실하게 파문을 주는 느낌이랄까. 충격을 주는데, 그것이 시끄럽지가 않고,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파동이 퍼져나가듯이 울림있게 남는다고나 할까.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리 위에서 사는 남자 노숙자와 부잣집 딸의 사랑이야기다.
설명만 들으면 이 영화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설정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부잣집 영애가 노숙자 남자를 만날 일이 있을까? 또한 만난다고 해서 사랑에 빠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사랑 앞에선 조건이든, 나이든, 신분이든 어떠한 것도 상관없다고 하지만서도 그 사랑을 위한 만남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며, 사람들 역시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감독이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설정해서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들을 그려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감독은 이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통해, 사랑 그 자체의 원시적인, 날 것 그대로의 사랑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SF, 공상과학 장르가 아닌 영화들은 대게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영화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까닭은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영화들은 똑같은 시공간 속에서 인간인 배우들이 움직이고, 말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매우 그럴듯한 현실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특성을 헤치지 않기 위해 많은 영화들이 소품이나 연출 하나에도 신경 쓴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최첨단 인공위성이나 탱크가 등장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대적 배경에 맞지 앟는 소품을 쓴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를 꼼꼼히 뜯어보면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숨어 있다. 가령 공사중인 다리 위에 노숙자만 셋 존재한달지,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경찰이 영화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달지, 감독은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 보여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말도 안되는 설정을 하고, 불필요한 현실적 요소들은 과감하게 배제해버렸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본 이들은 하나 같이 이 영화에 몰입하고서 명작이라고 손꼽는다. 이들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들- 노숙자인 광대 알렉스와 미술대학을 다니던 부잣집 따님이 사랑하게 되는 것에 대해 '납득'을 하는 것이다. 말도 안되지만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이 영화가 훌륭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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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퐁네프의 다리.

이 영화는 공사중인 퐁네프의 다리를 배경으로 삼는다. 공사 중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는 다리는 문명인이라면 접근하지 않을 곳이다. 그렇기에 도심 한복판에 있는 다리임에도 불구하고, 문명으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된 장소이며, 이 장소에서 노숙하는 인물들 역시 문명으로부터 배제당한, 혹은 문명을 떠난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다리 위의 세 인물, 알렉스와 미셸 그리고 한스.

다리 위에서 노숙하는 광대 알렉스는 정말 하잘 것 없는 인간이다. 그는 문명화된 도시 중에서도 중심지인 파리에서 살아가지만, 문명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된 인간이다. 그는 하늘을 지붕삼아 잠을 자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집어오고, 때때로 광대짓을 하면서 필요한만큼만 돈을 번다.

반면에 어느 날 갑자기 다리를 찾아온 여자, 미셸은 아버지가 육군 대령이며, 부잣집 동네에서 살고 있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여성이다. 그녀는 사랑을 잃고, 잃어가는 시력으로 인해 절망에 빠져 가출을 했다. 그녀는 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해 다리 위에서 노숙한다. 알렉스에게 있어서 다리 위의 노숙은 그의 삶이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다리의 노숙은 잠깐 동안의 일탈에 불과할 뿐이다.

알렉스를 돌봐주던 또 다른 노숙자 한스는 그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미셸을 쫓아내려고 한다. 노숙하는 여성의 삶이란 매우 비참하고, 냉혹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미셸은 돌아갈 집이 있고,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 그런 그녀가 잠깐의 일탈로 이런 원시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지켜주지 못했던 아내를 생각하며, 미셸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스는 미셸을 자꾸만 문명화된 사회로 되돌려 보내려 하지만, 알렉스는 그녀를 이 다리에 붙잡아두고 싶어한다. 미셸은 이 자유분방하고도 원시 그대로의 순수함을 가진 알렉스에게 끌리면서도, 문명의 끈을 놓지 못하고 고뇌한다. 절망에 빠진 끝에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심정으로 다리에 도달한 그녀지만, 그녀는 그녀와 연결되어 있는 그 문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알렉스에 빠져버린 그녀지만, 그녀는 그녀가 지녔던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다. 똑부러지게 요구조차 못하던 순한 그녀가 수면제를 이용해 돈을 훔치는 장면은 그녀가 점차 알렉스처럼 되어 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알렉스와는 다르게 필요 이상의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좀 더 풍족한, 좀 더 안락한 삶을 찾아가려 한다. 알렉스는 그녀의 돈통을 강물에 빠뜨려 버리도록 유도하는 등 그녀를 좀 더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그러한 광기는 그녀를 찾는 전단지를 불태워버릴 때 절정에 달한다.


미셸의 고뇌의 순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명장면을 폭죽이 터지면 둘이 춤추는 순간을 꼽지만, 나는 미셸이 한스와 알렉스를 양쪽에 두고 한가운데서 머뭇거리다 알렉스를 향해가는 것을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그녀는 한스를 등지고서 알렉스에게 "하늘이 하얗다."고 말한다. 그리고 알렉스는 "구름이 검다."고 응답한다. 그녀가 마침내 알렉스를 선택하게 된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영화를 하나로 압축해놓은 장면이다.

만약 여느 로맨스 영화처럼 미셸이 알렉스에게 첫 눈에 반하게 되고, 바로 그를 선택했더라면 이 영화는 설득력을 잃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미셸은 자신도 모르게 알렉스에게 끌리면서도, 원시 그대로의 알렉스와의 삶과 풍족한 문명에서의 삶 사이에서 해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난 이 영화에서 알렉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미셸이 어째서 알렉스에게 빠지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미셸과 알렉스를 두고서 그 한 때 모든 것을 던져버릴 듯한 순수한 사랑이라 지켜세우며, 알렉스의 순수함을 봤지만, 난 그저 이기적인 행동, 순수함을 포장한 악이 아닐까 생각했다. 제 아무리 사랑하는 그녀지만, 그녀의 눈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을, 그녀를 찾는 전단지를 알렉스는 찢어버리고, 불태워버린다. 모든 것을 내던질 듯한 사랑, 어떻게 해서든 사랑하는 상대방을 곁에 붙잡아두고 싶어하는 그 사랑. 이기적이며, 소유욕의 화신인 그 사랑.

그것만이 과연 사랑의 본질일까.
어떤 짓을 해서라도 내 곁에 붙잡아 놓으려는 그 이기심이 어찌보면 사랑에 가장 충실한 본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은 소유욕의 한 발로니까. 그러나 그것을 순수하다고 뭉텅그려서 좋은 이미지로 본다거나 이해하려 한다는 것은 순수한 악을 순수하다는 이유로 포장질해주는 것이 아닐까. 

내가 미칠듯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미친 사랑의 종착점은 늘 비극이었다는 것이다. 스토킹이니, 데이트 폭력이니, 헤어지자고 말하는 연인을 살인하기까지. 그런 것들도 과연 순수한 사랑이라고 불러줄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한 광기와 집착일 뿐이다.

레오 카락스가 보여주고자 했던 그 원시 그대로의, 날 것의 사랑, 사랑의 본질은 결국 배우의 행동과 말로서 드러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헤어지게 될 위기의 순간에 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닫는 것이고.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으나, 난 여전히 알렉스의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이것들이 순수하다고 긍정적인 평가로 내려지는 것도, 그렇기에 남자 주인공이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사랑을 계산한다. 그 계산은 생각보다 무의식에 가깝다. 좀 더 매력적인 사람을 찾는것과 같다. 얼굴이 잘생긴 사람, 지적이고, 깔끔해보이는 사람.. 그런 취향과 습관들이 집합체인 상대방을 우린 좋아하게 된다. 그런 계산 속에서 과연 아무런 능력도 외모도 별로인 남자가 보여주는 순수함 하나 때문에 그를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원시에서의 삶에서 자유분방함과 나름대로의 헌신들이 미셸에게 그를 멋지게 보이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문명 속에서 스크린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제 3자에 불과하다. 우린 그의 행동에서 우린 사랑의 본질을 찾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 배우의 행동들을, 그 배우를 사랑스럽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그가 보여준 광기에 가까운 행동들이, 끝까지 가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괜히 파멸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인기있는게 아니니까.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사랑은 희생이고, 감내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욱 참아야 하고, 양보하며 서로를 위해주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한다. 미칠듯한 사랑일수록 그 고통을 더 큰 이성으로 견뎌내고 참아내야 사랑이라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푹 빠져들어 눈이 돌아가 본 적이 없기에 이해가 안 되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느낌의 로맨스, 멜로 영화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뭔가 달달한 로맨스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비추.
로맨스 물이지만 로맨스를 기대하면 안된다.

한 때 사랑에 미쳤던 사람에게도 살짝 추천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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