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나이

어둠속검은고양이 2023. 5. 14. 10:40

더 이상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나이.

문득 뒤돌아보면,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때가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이면 실수하는 것이 당연할진대, 대한민국은 실수가 용인되는 나이대와 용인되지 않는 나이대가 있는 것 같다. 어린 아이가 실수하는 것은 '어리니까 그럴 수 있어'. 노인이 실수하는 것은 '나이먹었으니까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중장년층이 되면 실수해선 안 된다. 그 나이 먹고도 이런 실수나 하냐고 되묻는다. 완벽함을 요구하고, 완벽한 사람이 되길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사회에서 쓸모없는 부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더 이상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나이가 됐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대. 나이를 먹어가면서 육체적으로 성장해서 그런가. 사람들은 나이에 맞춰 정신도 자연스레 성장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육체와는 달리 정신이라는 것은 사회적 경험을 쌓아야지만 성장할 수 있다. 그 사회적 경험은 아기가 첫 걸음마를 떼듯이 맨 땅에 헤딩식으로 일단 부딪쳐야만 시작된다. 물론 나이를 똑같이 먹어도 육체적으로 차이가 있듯이 똑같은 사회적 경험을 쌓아도 정신적 성장에 차이가 있다. 경험이 많아도 철부지인 사람은 많으니까.

문제는 부모들이 그 사회적 경험을 쌓기도 전에 공부만 주구장창 시켜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만드니 나이만 먹고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이들은 많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경험의 편식이라고 할까.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저 밑바닥에서부터 저 꼭대기까지 온갖 다양한 이들인데 스펙만 쌓다가 성적에 맞춰 직업을 택하게 되니 서로간에 교류가 없다. 대기업은 좆소기업을 모르고, 현장직은 '먹물 꽤나 먹어서 거들먹거리는' 서류쟁이 사무직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한다. 판사나 의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출발하는 경험부터가 다르니 한 나라에 있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해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 모든 것은 첫 경험부터 잘못 쌓은 개인의 탓이므로.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배우고 첫 단추를 잘 꿰기 위해 사회적 진출을 미루고 미룬다. 그렇게 사회적 경험은 별로 없는 어른이가 되어 버리는데, 나이먹고 사회에 진출하려고 하니 실수는 용납치 않는다. 애초에 타인의 실수를 용인해줄 이유가 있긴 한가. 일찍 사회에 자리 잡은 사람으로서 이제 사회적 걸음마를 떼고 있는 어른을 초년생이라고 봐줘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오직 실적과 결과만 말해줄 뿐. 사회의 냉혹함이라 말하며 사회에 진출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결과, 좋은 실적, 완벽함을 요구한다. 가차없다.

파편화 되어 버린 사회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성 세대가,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왔다. 결과 중심의 사회를 만들었고, 원인은 모두 개인의 탓으로 몰았고, 결과주의의 냉혹함에서 조금이나마 편하게 지낼 수 있게 사회적 진출을 미루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파편화된 사회는 다시 결과 중심의 사회를 만든다. 미뤄진 사회 진출은 더 이상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나이대에 사회적 걸음마를 떼게 만든다. 그나마 늦게라도 어찌저찌 버티는 사람들은 살아가지만 이조차도 버거운 이들은 결국 회피를 선택하게 된다. 파편화 되어 버린 사회와 회피만 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 못해 버티는 사람들까지..... 행복이라는 건 어디에 있는 걸까.

사람이라면 실수하는 것이 당연한 건대.

우리는 여유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실수가 용납되는 나이대가 있고 용납되지 않는 나이대가 정해져 있고, 그 와중에 늦은 사회적 진출은 많은 이들을 몰아가고만 있다. '사람이라면' 이라는 말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각박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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