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에서 달달한 고백씬을 보며 문득 오래전에 했던 첫 고백이 떠올랐다.
처음 동아리 방에서 본 후, 선후배로 지내며 썸인지도 모를 썸을 탄 지 1년하고도 6개월쯤 더 지났을 무렵, 나는 그녀에게 고백을 했었다.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내 옥탑방에 들어오더니, 내 삶에도 자연스레 녹아들어 오더라. 우린 서로 많은 걸 하진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 자주 존재했었다. 물론 그 공간은 주로 내 옥탑방이었지만.
데이트인 줄도 몰랐던 겨울 심야 영화관이라든가, 노래나 게임을 같이 했던 멀티룸, 첫 dvd방까지도. 모두 미숙하기만 했던 나를 이끌어준 것이 바로 그녀였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지난 날들이 그녀 나름대로 내게 어필하던 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자유롭게 놀고 싶을 때 곁에 있던 나를 끼워 넣은건지. 어쩌면 그녀가 먼저 다가오기엔 자존심이 상하니 나름 유도했던 건 아닐까 하는 오만한 생각도 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썸 아닌 썸은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며 뒤따르던 내가 고백을 하며 마무리하게 되었다
"누나."
왠지 모르게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말들이 그녀를 부른 순간, 착 가라앉며 난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 했다. 그리고선 멍청하게 질질 끌다 아니라는 말을 했다. 그런 내게 그녀는 뭐냐고 채근하듯이 물었고, 난 죄인마냥 토설하듯이 "나랑 사귈래요?"하고 기어들어가듯이 내뱉었다. 멋대가리 없는 고백에 생각해보겠다는 답변을 받고 되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길었다.
그 때의 떨림.
그 때의 당황스러움.
그 때의 기다림.
달달함과는 멀었지만, 그 첫 고백은 조금씩 남아 이렇듯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 때의 감정들도 이젠 많이 퇴색되어 버렸고, 복기하듯이 생각으로만 남아있다. 내 첫 사랑은 태양처럼 뜨겁지 않았지만, 스프처럼 따스했었다.
'기록보존실 > 잡념들-생각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계일학 (0) | 2023.09.09 |
---|---|
돈과 관련된 2가지 재미 (0) | 2023.09.03 |
습관은 기질을 압도한다 (0) | 2023.08.09 |
적당히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 부류의 인간. (0) | 2023.07.30 |
불신이 디폴트 값인 사회 (1) | 2023.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