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고향을 찾고, 뿌리를 찾는 것일까. 그건 인간의 근원적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각자 자신만의 가정을 이루고 독립해서 살아간다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 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냈던, 내 뿌리를 알고 계시는, 뭔가 의지가 되는 윗사람이 계시다는 사실 자체가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마치 사용하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와도 같은 느낌이랄까. 그냥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느낌이다.
성인이 되어 버린 우리는 더 이상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거나 의존할 수 없다. 우린 우리 나름대로 가정을 꾸릴 것이고, 그렇게 독립된 개체로서 나는 나대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각자의 장소에 각자의 가정을 꾸리며 살아갈 것이다. 어린 시절의 가족이 이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어린 시절의 구성원들과 추억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때 그 시절의 조합 형태가 아니다. 그건 마치 가족들이 해체되어 이산가족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 때 그 시절 어리광 부리던 나와 어리광을 받아주던 부모님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냥 성인남녀 두 가구가 있는 것이다. 그마저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데 바빠서 교류가 뜸하지만, 그럼에도 과거 내 버팀목이었던 가족을 언제든지 보러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마치 절대 사용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이 최후의 카드가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의 그 근원적 불안감을 일정부분 해소시켜주는 것이다.
이것은 근원적 불안감을 해소시켜 준다는 점에서 종교와 유사한 것 같기도 하다.
신이 죽어버린 지금, 이 근원적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줄 것은 내 어린 시절의 신과 같았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부모님-뿌리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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