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에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켠다.
문득 내 존재가 하잘 것 없음을 느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자.
그리고 난 그 아라비아 사막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 존재의 가치가 평가되지 아니하고 그저 흐르는대로 지나가는 생명체1 로서 그렇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행복지고 싶었는데 나는 행복해지지 못했다.
그러나 행복지지 못한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닌 내 탓이다.
나의 이 무능력함이, 내재되어 있는 이 진따 본능이, 주제도 모르고 더 높은 걸 바라는 이 마음이.
행복은 소소한데 있다며 종종 자위하곤 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행복들이 나에겐 너무나도 먼 곳에 있다. 남들이 다 하는 평범함들이, 자연스럽게 거쳐가는 그 과정들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멀다.
그깟 행복이 대체 무어냐고 고차원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이에 대해 나는 답변하지 못할 것이다. 집에서 나오는 돈으로 삼 시 세끼 따뜻한 밥과 따듯한 집에서 편안히 지내면서 당장 내 앞날만 걱정할 수 있는 나의 고민거리는 그저 배부른 투정에 불과할 뿐이니까. 충분히 행복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행복을 모르고 있는 것일테니까.
예전에 의식화하고 또 의식화해서 바꾸어야 한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의식화하고 또 의식화해서 내 몸에 베여 있는 진따본능을, 나라는 인간 자체를 지워내야만 한다. 그리고 독해져야만 한다. 투쟁에서 쟁취하고 빼앗고,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여, 전사로서 다시 태어나야만 행복을 움켜쥘 수 있다.
내 탓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회 탓이든 환경 탓이든 말하는 것도, '탓'은 그저 핑계일 뿐.
뛰지 않으면 밭 밑이 무너져 내리는 곳이 현실인데, 땅이 고르든 패여 있든 맨 땅에 헤딩해야 하는 것은 늘 똑같고, 싸워 뺏고 이겨내야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 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 사막으로 나는 가자.
온갖 먼지와 모래와 바람이 나부낄 때
내 병든 나무가 모래가 되어 파묻히는
한 줌 모래 언덕의 아라비아 사막으로 나는 가자.
p.s
마지막 문구의 1번 단락 - 유치환, <생명의 서> 시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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