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독서

데블 인 헤븐, 가와이 간지 지음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7. 19. 23:02

블 인 헤븐

가와이 간지 지음 / 이규원 옮김


오랜만에 책을 한편 읽었다.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편치 않은 시기에 읽게 되는 일본 장르 소설이라니...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한국과 일본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닮았다. 특히나 사회, 정치적 문제가 그렇다. 전후 세대라든가, 경제 불황이라든가, 베이비붐 세대라든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것까지도. 그래서 자뭇 일본의 현실적인 문제를 기반으로 한, 소설의 소재가 더욱 빛나보이는 듯하다.

- '데드맨'을 읽고 난 후로 가와이 간지의 추리 소설을 선호하는 편이다. 추리가 복잡하지 않고, 자연스레 한편의 이야기처럼 흐르는 것이 읽기 편해서 좋다. 이 소설도 역시 가와이 간지스럽다.

이 책의 특징은 핵심 인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배경에서부터 쫓아간다는 것이다. 허나 내용이 어지럽지 않게 흐른다. 뒤에 나올 큰 줄기의 사건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 사건의 핵심인물에 대한 과거를 가볍게 다룬다. 그 후에 핵심인물이 주가 되는 본 사건이 전개하다가, 또 다시 다른 핵심인물의 과거를 다룬 후에 큰 줄기의 사건을 이어가는 식으로 전개된다. 덕분에 등장인물 여럿 나와도 헷갈리지 않고, 오히려 핵심인물과의 관계도를 선명하게 유지한 채로 본 사건을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가와이 간지 소설의 특징라 할 수 있는데, 등장 인물의 시점을 바꿔가며 전개하는 방식은 소설에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몰입감을 갖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결코 내용이 중구난방식으로 지저분해지지 않으니, 이는 분명한 작가의 역량이다.

<약간 스포있음>

딱히, 소재를 보고 이 소설을 고른 것은 아니었다. 단지 표지 뒷면에 쓰여있는 "당신은 정말로 국가가 시민의 생명을 귀하게 여긴다고 믿습니까?"라는 그 문구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뿐이다. 그러나 며칠 전 어느 글에서, '국민의 수명 연장은 국가입장에서는 저주일 지도 모른다'라고 지적했던 필자가 우연히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정말 공교롭다. 이 책에서 다루는 소재는 자뭇 흥미롭다. 이 책은 현대 일본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 -  '고령화'와 그에 따른 '국가적 예산문제' 그리고 일본의 '도박문제' 등 다양한 소재들을 하나로 묶어서 펼쳐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구체적 통계와 자료를 통해 매우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다보면 어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그런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매우 그럴듯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소설 내의 내용전개는 정말 고리타분하다. 의심스러워 보이는 인물들과 반전에 또 반전들이 예상대로 흘러간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내용 전개 자체는 좋은 점수를 주기엔 아깝다. 그럼에도 뻔한 내용을 끝까지 즐겁게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분명히 작가의 역량이 크다. 사실적인 배경 묘사와 시점 변환을 통한 전개방식, 짧고 적절하게 끊는 에피소드들과 현실감 있는 소재들은 분명히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첨언하자면, 정부는 늘 비대해지는데, 그것은 행정수요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이제 국민은 과거처럼 '세금이나 적당히 받치다가 죽는 부품'이 아니라, 이젠 하나의 '국민'으로서 많은 것들을 주체적으로 요구한다. 그리고 정부는 정부의 정당성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행정수요를 외면할 수 없다. 허나 문제는 이러한 행정수요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고도화된다. 옛날에 '조망권'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환경권'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그래서 정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규제를 더 강화하고, 복지 예산을 더 많이 편성하고, 이를 담당할 공무원을 뽑게 된다. 게다가, 이러한 행정수요를 필요한 국민들은 옛날처럼 적당히 세금을 내다가 적당한 죽는 것도 아니다. 국민들의 수명이 갈수록 길어진 결과, 이젠 정부입장에서는 국민들 하나하나가 빚으로 남게 되어버렸다. +도 아니고 0도 아니고 -. 이는 후대에 극심한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이며, 특히나 단카이 세대(세계 2차 대전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와 은퇴에 직면해 있는 일본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물론 이것은 대한민국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괜히 일본이 대한민국의 10년 후 모습이라고 할까. 대한민국은 약간 다른 양상을 띄고 있지만, 어찌됐든 근본적인 원인과 예산 문제는 일맥상통한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복지예산, 그리고 현 일본 내에서 가장 큰 자산을 쥐고 있는 단카이 세대, 일본의 파칭코-도박 문화가 하나로 엮어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의 모습은 자뭇 소름끼치게 다가온다. 재정적자는 현실적인 문제고, 늘 재정에 목말라하는 국가는 얼마든지 '돈이 되지 않는 국민'을 희생시키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허구로 지어진 소설이지만, 그 저변에 있는 문제의식들은 분명히 현실적이기에 소름끼치고, 이렇게 일본이 처한 현실이 대한민국 현실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더욱 무섭다. 추리소설로서 읽는 재미도 있지만, 그 일면에 있는 소재들을 살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추리소설 매니아들에게는 비추.
부담없는 추리소설을 찾는 이들에게는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