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무척 좋죠?
그래서 편지를 써요. 날씨가 좋은 날에는 따닥 따닥- 글을 쓰고 싶어지더라구요. 아마 한낮에 제가 무언가 글을 쓴다면, 기분이 가장 좋을 때 일거라 생각해요. 더 없이 현재에 만족할 때 자연스레 편지를 쓰게 되거든요. 오늘과 같은 날씨가 지속되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보니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 날이네요. 신기하네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만우절과 비슷한 날들이 있다는 것이요. 성경에서는 인간이 하늘을 향해 바빌론의 탑을 쌓자, 신이 노해서 서로 소통 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고 하죠. 이처럼 원래 인류는 하나의 문명이었는데 각각 흩어지게 된 걸까요. 그래서 만우절과 비슷한 날들이 나라에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요. 또 성경에는 신이 대홍수로 한번 인류를 쓸어버렸다는 말도 있죠. 또, 고대 문명들의 기록들을 보면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에 남아있어요. 공통적으로 말이지요. 흥미로운 사실이지요. 우리 인류의 기원을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라는 한 뿌리에 두고 있는데, 지구 과학에서도 보면 우리 인류(생물)도 최초엔 어떤 하나의 세포에서 비롯된걸로 보고 있으니까요. 바빌론의 전설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모르겠지만, 인류가 하나의 초고대문명에서 파생되어 나간건 아닐까 한번 상상해보는 것도 꽤 재밌을 거예요. 아, 만우절 기념 거짓말은 해보셨나요? : )
다시 돌아와서 날씨 이야기를 해볼까해요.
정확히는 벚꽃이겠죠? 그래요. 요즘 벚꽃이 하나둘씩 피더니 활짝 만개했어요. 제가 사는 곳은 예전엔 벚꽃이 안보였는데, 하나둘 벚꽃나무가 생기더니, 어느 새 만개한 벚꽃나무들이 자주 보이네요. 누군가 옮겨다 심었나 싶어요. 대학생들에겐 벚꽃의 또 다른 꽃말이 중간고사라고 하죠? 예전 편지에서도 썼다시피, 벚꽃은 참 개화 기간이 짧은 것 같아요. 중간고사 기간에 만개한 벚꽃을 보며 등교해서 시험을 끝내고 감상 좀 하려고 하면 비가 내려서 벚꽃이 다 져버리고 없지요. 그리고선 바로 녹음으로 가득 찬 초여름이 와 있죠. 성인이 된 지금은 주말에 벚꽃 구경을 할 정도의 여유정도는 생겼네요. 아쉽게도 같이 구경 갈 짝은 여전히 없지만요. 오늘은 겨울 옷들을 정리하면서 집안 정리를 좀 했어요. 덕분에 산뜻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지요. 내일엔 혼자라도 주변 공원을 좀 다녀와야겠어요.
슬슬 '벚꽃 엔딩'이 다시 올라오고 있다고 하죠? 벚꽃 연금 말이에요. 벚꽃 엔딩은 정말 잘 만든 곡이지만, 이런 날에 어울린 숨겨진 곡들도 많아요. 음...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에피톤 프로젝트의 '봄날, 벚꽃 그리고 너' 예요. 이 곡도 좋으니 한번 들어보시길 추천드릴게요.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로 활기찬 분위기의 노래가 잘 어우러지겠지만, 때때론 활기찬 것보다 잔잔함과 아련함이 어우러지는 곡을 듣고 싶을 때가 있지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요즘엔 활기찬 노래보단 잔잔한 곡이 더 좋더라구요. 그래도 한창 빛날 시절인 대학생 남녀를 설레게 하는데 활기찬 노래만큼 좋은 게 없죠.
저번 편지에서 저는 연인이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기적이라 말했지만, 생각만큼 그건 대단한 게 아니죠. 아니, 대단한 건 맞는데, 일상적이라고 해야 하나. 저번에 말했다시피 흔한 기적인거죠. 지극히 일상적인. 그건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고, 대단치 않을 수도 있고, 의외일 수도 있죠. 마음이 없는데 사귈 수도 있는 거고, 나쁜 의도를 가지고 사귈 수도 있고, 우연치 않게 맺어질 수도 있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결혼까지 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 행복한 이야기의 시작이 하찮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왠지, 뭔가 행복한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 처음도 좋았고, 과정도 좋았고, 결말도 좋은, 완성된 이야기를 원하잖아요? 가지런히 정리정돈 되어있는 물건들 사이로 사소한 것이 튀어나오면 거슬리듯이. 그런데 우리들이 이야기는 물건이 아니니까. 곳곳에 흠이나 틈이 있을 수 밖에 없죠.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이야기는 없는 거죠. 중요한 건 결말이잖아요? 잘 맺어져서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죠.
때때로 연인들은 과거에 집착해요.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이나 이해심 때문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집착 때문에요. 그건 마치 앞서 말한 것처럼 너와 나, 우리 둘의 이야기가 완벽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죠. 내가 너의 첫사랑이었으면. 내가 너의 처음이었으면. 네가 처음부터 정말 정말 내가 좋아서 만난 거였으면. 하지만 현실은 아름답지 않죠. 첫사랑이 아닐 수도 있고, 그저 비즈니스적인 마음으로 만났을 수도 있어요. 아니면 지금 이 관계가 깨질까봐 혹은 귀찮아서 억지로 만났을 수도 있죠. 당신이라서 좋은 게 아니라, 당신이 아닌 외적인 것 때문에 좋아했을 수도 있죠. 그래도 중요한 건 결국 사랑하게 됐고 한 가정을 꾸리게 됐다는 거죠. 현재가 중요하고, 미래가 중요해요. 물론 과거가 현재에 대한 신뢰의 지표로 작용할 수도 있죠. 백날 거짓말 하던 사람이 오늘부터 솔직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고 말해도 믿을 수 없잖아요? 믿을 지 말 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하죠.
어떤 이들은 "첫 눈에 반하기보다 만나다보면 좋아질 수도 있는 거잖아." 말하기도 해요.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만나자마자 내 속마음을, 내 모든 진심을 보고, 판단할 수 있겠어요. 만나다보면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을 보고 판단하게 되죠. 현실의 모든 것은 불확실성이죠. 특히 사람과의 관계는요. 애초에 어떠한 기대나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면 실망하게 될 거예요. 기대나 기준에 못 미치는 순간 실망하게 될 거고, 기대나 기준에 미쳐도 그건 당연한 거니까요. 흔히들,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이것저것 잘하기 보단 싫어할만한 행동을 안했으면 한다"라고 말하죠. 대게 좋은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의 영향이 더 크니까요. 행복은 모든 것이 충족되어야 하지만, 불행은 한 가지만 흠이 있어도 바로 드러나게 되죠. 그것처럼 마음 속으로 기대나 기준을 상정하게 되면 쉽게 실망하게 되는 거지요. 인간 관계라는 건 불확실성에 뛰어드는 거예요. 스타크래프트에서 조금씩 정찰해가면서 기지를 확장하듯이, 만나면서 천천히 판단하는 거죠. 만나봤는데 안 좋아지면 어쩔 수 없는 거구요.
요즘은 빠른 걸 선호해서 그런가. 사랑조차도 빠르게 판단하는 것 같아요. 빠르다는 것이 나쁜 건 아니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서일까. "첫 눈에 반하기보다 만나다보면 좋아질 수도 있는 거잖아."라는 말은 그저 짝사랑의 구차함에 불과할 뿐이죠. 안 좋아하는데. 안 좋아한다고 이미 판단을 내렸는데, 더 이상 만날 수도 없고, 만난다고 해도 마음이 바뀌지 않을 거라 단정하죠. 안 좋아하는데 만나는 것도 좀 그렇긴 해요. 상대방에게 희망 고문을 하는 거니까요. 그래도 "첫 눈에 반하기보다 만나다보면 좋아질 수도 있는 거잖아."라는 말처럼 우리에겐 관계에 있어서 시간을 두고서 판단을 내려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신 나도, 상대방도 그 끝의 결론을 수긍해야 하고요.
아, "첫 눈에 반하기보다 만나다보면 좋아질 수도 있는 거잖아." 이 말이 시간을 두고서 판단을 내리는 신중함이 된다는 말의 전제는 서로 대등한 관계라는 거예요. 대게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짝사랑인 경우가 많죠. 그래서 눈치를 봐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에 들까 잔뜩 위축되어 있죠. 중요한 것은 사랑에 있어서 갑과 을은 없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승패가 있는 게임처럼 생각하죠. 사랑하며 지는 거라고. 사랑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죠. 그러니 위축될 필요가 없어요. '나는 짝사랑을 했고, 너는 나를 아직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만나다 보면 좋아질 수도 있겠지. 만나더라도 끝내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어. 그 땐 어쩔 수 없어.' 라는 이 마음가짐이 중요하죠. 대등한 관계가 아닌 상태에서 일방적인 짝사랑의 결말은 보통 이루어지지 않죠. 혹은 동정심으로 겨우 이루어지게 된 뒤틀린 사랑이거나. 물론, 시작은 동정심이었어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면 좋은 결말이라 생각해요. 결국 서로 사랑하게 됐잖아요? 그럼 된 거죠.
하지만 이 말이 와전되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처럼 되어 버리곤 해요.
사랑을 빠르게 판단할 지, 좀 더 두고서 판단할 지는 각자의 몫이죠. 그리고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거죠. 합의가 필요합니다.
날씨가 좋아서일까.
결국은 또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편지를 쓰게 되네요. 그만큼 사랑하기에 좋은 날씨라는 얘기겠죠. 오랜만에 쓸 말은 많아요.
다음엔 좀 더 일상적인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p.s
오늘의 추천곡
에피톤 프로젝트 - 봄날, 벚꽃 그리고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