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접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나치거나, 인지하더라도 내 사람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없는 이상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
생각해보라.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상의 어딘가에서는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곳이 중동이나 아프리카 혹은 어느 남 모를 가정집의 지하실에서 죽어간다고 하면 나는 그것을 인지할 수가 없다. 또한 그 죽어가는 사람이 나와 전혀 무관한,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면, 온 세상 인류를 사랑할만큼 마음이 넓지 않는 나는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 무덤덤할 것이다. 대체적으로 '죽었네'정도로 끝나겠지만 안타까운 사연이나 장면이 추가된다면 약간의 동점심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소시오패스가 아니다. 이성적인 척, 냉철한 척 자랑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즉흥적으로 생겨나는 감정 외에 대부분의 감정은 어느 정도 신뢰나 유대감이 생겨난 뒤에야 생겨난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해서, 연민이나 동정, 공감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딜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람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으며, '사람답게' 보이려고 한다. 그렇기에 공감이 없는듯한 발언들은 매우 사람같지 않은, 순하게 말해서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 나도 공감하는 척, 적당히 슬퍼하는 척, 감성적인 척하려면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내 삶마저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갈까봐. 내 삶이, 사회에서의 내 영역들이 보여주기식으로 그려러니 하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게 될까봐 하는 우려에서다.
내 글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자기모순일지라도, 이 글을 쓰기 위한 출발점이었으니 발언할 수 밖에 없다.
한 연예인이 죽었다.
사실 난 연예계에 관심도 없다.
다들 좋아한다는 여자 아이돌의 인원도 잘 모를 정도다. 그나마 여자 아이돌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은 우연히 인터넷이나 미디어에서 보게 되거나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서 알게 되는 경우뿐이다. 그래서 본명도, 나이도 잘 모른다. 딱 그정도라는 소리다.
나는 그래서 별로 슬프지 않았다.
그 사람이 악플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몰랐고, 악플관련한 프로그램에 나온 것도 몰랐으니까. 그녀의 죽음을 계기로 몇몇 사실들을 알게 됐을 뿐이다. 그녀의 죽음은 비극적이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사회가 다시 한 번 악플에 대한 문제점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그녀를 추모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도 있고,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 방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의 죽음이 호사가들의 가십거리나 SNS용 장식정도로 소비되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이걸 빌미로 익명에 숨은 많은 이들이 상대방에 대해 분노와 혐오를 쏟아냈다. 그 분노와 혐오가 그녀에게 악플달던 악플러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성별로 이끌어가서 성별대결로 향하는 것이. 특정 세대의 분노로 향하는 것들이, 또한 악플달던 이들이 순식간에 아닌 척 추모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더럽고, 추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그녀를 그렇게 생각했다고.
차라리 나처럼 관심이 없었던 사람은 그냥 쭉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거나, 혹은 간단한 명복정도 빌어주는 걸로 그치면 될 일이다. 아니면 이걸 계기로 사회적 문제 관심을 갖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그러나 수 많은 호사가들은 추모를 빙자해서 그녀를 숭고자로 만든 후 일종의 수단-도구로 이용했을 뿐이다. 진정 소시오패스는 이들이 아닐까 한다.
죽음에 대한 슬픔의 크기가, 행동이 저마다 다르기에 어떠어떠한 양식으로 슬퍼하라고 강요할 순 없지만 내가 보는 이들의 행동들은 충분히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슬픈지' 보이고자 애썼고, 그럼으로써 얼마나 내가 '사람다운가', '감성적인가' 은연중에 내비치면서, 혐오를 조장하고, 타인을 비방하는데 써먹었다.
그녀의 죽음을 호사가들은 가십거리,SNS용 보여주기식 장식으로 써먹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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