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늦은 밤에 편지를 써봅니다.
사실, 이 글은 며칠 전에 썼던 글이기도 해요. 다만 글을 쓰다보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히스토리 한 켠에 놔뒀던 글이지요.오랜만에 저녁에 편지를 쓸까 하다가 이참에 다시 꺼내 보려고 해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하지요.
그래요.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의 선이 달라지는 기간이 오지요. 설렜던 감정들은 어느 순간 사그라지고 그냥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변합니다. 숨 쉬는 것이 당연하듯이 말이지요. 있을 땐 소중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곁에 없으면 허전해지지요. 그냥 내 몸처럼 자연스레 같이 활동하고 같이 숨쉬는 거지요. 그러다가 없어지면 인생의 한 부분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이렇게 사랑의 설렘은 친숙함, 정으로 바뀌어 갑니다.
설렜던 때만을 사랑이라 말한다면 분명 사랑은 끝난 것이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설렘에도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지만, 많은 이들이 이 설렘의 끝을 사랑의 끝이라 착각하곤 해요. 왜냐면 사랑의 시작은 분명히 설렘이었거든요. 그러니 설렘의 끝은 사랑의 끝인 셈이죠.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설렘의 끝은 사랑의 끝이 아니에요. 설렘이 끝난다고 기본적인 관심조차 거둬진 건 아니거든요. 사랑의 시작은 설렘이나 끝은 내 삶의 일부분, 자연스러움인 거죠. 아마 진정으로 사랑이 끝났다는 것은 상대방에게서 관심이 사라질 때가 아닐까요. 그 사람이 무얼 하든, 어떻게 지내든, 내 삶에서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 거죠. 더 이상 삶의 일부분이 아니게 된 것이죠.
아마 사랑한다는 것의 척도는 얼마나 그 사람과 내가 삶을 공유하고 있느냐, 그리고 얼만큼 공유해 나갈 생각이 있느냐 아닐까 해요. 설렘이라는 감정이 아닌, 공유라는 유대감과 지향점이겠죠. 다만 공유해 나갈 생각만 있고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 사랑에 의심이 생길 수 밖에 없고, 감정이 없는 유대감과 지향점은 어떤 의미론 또 사랑과 좀 다른 느낌이죠. 사랑에도 여러 종류(아가페, 루두스, 에로스와 같은)가 있으니, 그 여러 종류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거겠죠.
어쨌든 가슴 뛰게 해주는, 이 셀렘의 감정에 끝이 있다는 건 분명 아쉬워요. 사랑에도 끝이 있다는 것도 안타까운 점이구요. 어쩌면, 공주와 왕자는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 같은 문구로 이야기의 끝을 맺는 것도, 현실은 사랑의 끝이 있기에 맺어지고 난 후의 일을 다루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죠. 아니면 맺어진 것으로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이상을 표현하는 걸지도요. 수 많은 작품들 속에서 우리가 영원불멸이라는 것을 그리도 갈구하는 것은, 사랑이, 인생이, 우리의 모든 것들이, 시작과 끝이 있다는 걸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이 사랑은 두 사람이 시작하기에 속도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어요.
누군가는 아직 에로스적인 사랑을 원하는데 누군가는 이미 유대감에 가까운 사랑으로 변하고 있을 수도 있죠. 어쩌면 시작부터 사랑의 종류가 차이가 났을 수도 있고요. 혹은 총량 자체가 달랐을 수도 있어요. 누군가에겐 그 사람이 절대적 1순위지만, 누군가에겐 남들과 똑같은 정도의 순위였을 수도 있죠. 보통은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라 여겨지는)이 덜 사랑하는 쪽(이라 여겨지는)에게 매달리죠. 하지만 우선순위가 다르다고 해서, 사랑의 종류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애초에 감정을 비교할 수도 없죠. 그건 너무도 주관적인 거니까.
그런데 우린 어느 샌가 저울질하고 있더라고요. 더 사랑하는 쪽이 져주는거야. 덜 사랑하니까 그래. 이 상황에선 어떤 행동이 나와야지 사랑하는 거야. 이렇게 말이죠. 사랑 속에서 정답을 찾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가. 끊임없이 탐색전만 펼쳐요. '썸'이라고 하죠. 분명 과거에는 없었던 단어인데, 생겨난 단어가. 썸과 같은 상황은 분명히 과거에도 있었어요. 단지 지칭하는 단어가 없었죠. 이젠 썸이라고 분명히 지칭하고, 썸 단계에서 일어나는 행동이나 말 등을 통해 끊임없이 상대방을 탐색해요. 그리고 썸의 끝에서 고백을 하지요. 내가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고, 반대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해요.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마음을 정리하지요.
다들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소극적으로 변해버린 것 같아요. 방어적이고, 소극적이고,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일삼죠. 나름 유명한 밈이 있어요. '내가 사랑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요.' 라고. 어떻게 보면 상냥한 것 같은 이 자기비하의 문구가 많은 생각을 갖게 하죠. 마치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말 같아보이지만, 한편으로 이 말엔 상처받기 싫은(거절당하기 싫은) 방어기제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결국 네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모르니까 처음부터 내려놓겠다는 소리죠.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타이밍이 맞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어요. 사랑의 종류도 다양하고 절대량도 다른데.
사랑하는 마음이 다르지만, 그래도 널 좋아하는 거고, 그 좋아하는 마음이 받아들여질지 말지는 그 후에 상대방에 의해 결정되는 거겠죠. 앞서 말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삶을 얼마나 공유하고, 앞으로 삶을 공유할 생각이 있느냐겠죠. 서서히 서로의 색으로 물들어 가는 거니까요.
내 마음이 확실하다면 상대방의 마음을 떠볼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에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게 맞는 거겠죠. 물론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에요. 그리고 그 사랑은(모든 사랑은) 분명 서로 다른 성질과 서로 다른 절대량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걸 이해해야겠죠.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을 가지고 억지로 비교하면서 재지 말고요. 행복하다면 OK 입니다. 사랑도 결국 행복을 위한 거니까요.
'내가 널 사랑해도 네가 날 안 사랑해도 우린 나름 행복할거야' 라는 디핵 - ohayo mㅛ night의 가사를 떠올리며 이만 글을 마쳐요.
p.s
오늘의 추천곡
디핵 - ohayo my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