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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인터넷 문화 -혐오, 감시, 검열

어둠속검은고양이 2020. 10. 13. 18:35

어린 시절,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 한국은 인터넷 문화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은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고, 나이를 초월하며, 국적을 초월해서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고 여겼다. 당시에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이 현실적 제약들을 다 극복해줄 것만 같았으니까.

실제로 인터넷은 이러한 제약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긍정적인,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주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도구는 잘못 없다. 문제는 그 도구를 이용하는 인간이지.

우린 인터넷의 익명성으로 온갖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지만, 우리 스스로 선입견을 강화하고, 차별하며, 혐오를 만들어 내고 있다.

관심과 조회수가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무엇이든 컨텐츠화 하려고 하며, 사람들은 관음증 환자처럼 무엇이든 보려고 한다. 좋아요와 구독을 통해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골라보고 있으며, 자신과 맞지 않는 글이나 영상은 밴(ban)을 통해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마치 저마다 동굴 속에서 무리짓고 살던 원시시대처럼 인터넷 생태계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동굴 속에선 소통하지만, 동굴바깥 부족들과는 소통하지 않고 배척을 일삼는다.

그 중에 동굴의 부족장인 컨텐츠 생산자들은 돈에 미쳐 있다. 관심, 조회수, 돈. 물론 이것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냥 이것에 미쳐버린 인간들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극적인 소재, 혐오 컨텐츠를 만들어낸다. 혐오의 대상이 뒤지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다. 혐오의 대상이 죽고 나면 그 죽음마저도 이용해 먹을 사람들이다. 관심, 조회수, 돈에 대한 욕망이 긍정적인 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로지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다. 혐오컨테츠를 일삼는 그들은 일종의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싶은데, 이런 소시오패스들을 추종하는 구독자들은 넘쳐난다. 집단적 윤리성의 결여다.

우린 일본의 이지메 문화를 보고 미개하다고 욕했고, 중국의 천망,황금방패라는 인터넷 검열기구를 비웃었지만, 한국의 인터넷에는 이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다.

혐오 컨텐츠를 제작하고, 대상을 향해 달려가 온갖 욕을 하며 괴롭힌다. 약점을 철저하게 물어뜯으며, 희열을 느끼는데, 더 최악인 것은 그들은 정의롭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왜? 혐오 받을 짓을 했으니까. 욕하는 건 당연한 권리니까. 도덕적인 결함이 있으니 나는 그 불의를 보고도 못 참는 정의의 사도니까.

한편으로 시민들 스스로가 나서서 도덕적 검열을 한다. 이 작품은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라고 지적하며 입맛대로 바꾸려든다. 그들에게 있어서 작품들은 대중들이 향유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저 우매한 대중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저 우매한 대중들과 달리 깨어있는 나는 검열하는 입장이다.

정말 최악이다.
시민단체와 국가는 인터넷을 검열하는데 열을 올리고, 인터넷 이용자들은 온갖 것들을 이슈화하여 이지메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sns와 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우린 일거수 일투족 상대방의 무언가에 기록되고 저장된다. 우린 저장매체의 감옥에서 스스로를 검열해야 하고, 교도관님들어 의해 검열된 작품들만 봐야 한다. 혹시나 불편하신 분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야만 한다. 눈에 띄는 순간,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어서까지 욕먹을테니까.

조회수와 관심, 돈에 미쳐버린 소시오패스와 그런 소시오패스 지지자들에 의해 원시시대까지 퇴화되어 버린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어디까지 회귀할 것인가. 그리고 한국판 황금방패를 바라시는 인터넷 교도관들의 현대판 파놉티콘은 언제쯤 구현될 것인가.

컨텐츠도 그렇고 가십거리도 그렇고 어느샌가 분노와 혐오만 쌓여가는 인터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