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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은 돕는 것이 아닙니다? - 특정 상황에 상정된 언어 지적과 규제 +수정

어둠속검은고양이 2017. 1. 29. 19:22

언어, 말에는 힘이 있어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우리의 무의식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언어라고 할지라도 때때로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언어에 담겨진 의식, 생각들은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용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언어가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사용자가 어떤 의식을 지니고 그 언어를 쓰는가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에 필자는 도와준다라는 개념에 대해서 언급해보고자 한다.


가끔씩 프로불편러들이 있다.

'집안일은 같이 하는 것이지 돕는 것이 아닙니다.'


오, 훌륭한 말이다. 우리가 집안일은 특정인에게 주어진 책무라는 은연중에 생각하는 부분을 잘 짚어주는 느낌도 분명히 있긴 하다. 하지만 '돕다'라는 단어보다도, 우리가 집안일은 특정인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는 그 의식 자체가 문제의 본질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돕다'라는 뜻에는


1. 남이 하는 일이 잘 되도록 거들거나 힘을 보태다.

2. 위험한 처지나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다.

3. 어떤 상태를 증진하거나 촉진시키다.           <네이버 사전 발췌>


등이 있으며, 집안일을 돕는다는 말은 1번의 해석함이 적절하다.


여기서 일이란,


4. 사람이 행한 행

5. 해결해야하거나 처리해야할 문제, 또는 처리해야 할 행사 


로 해석함이 적절하다.              <네이버 사전 발췌>


정리하자면, 집안일을 돕는다는 뜻은,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하여야 하는 여러가지, 해결해야 하거나 처리해야 할 문제, 또는 행사가 잘 되도록 거들거나 힘을 보탠다는 뜻이다.


저 문구 어딜 봐도 특정인(대게는 여성분들)에게 집안일의 책무가 주워졌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단어, 문맥이 존재하지 않는다. [- 정정합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남의 하는 일' 부분이 문제입니다. ]


그러니 집안일을 돕는다는 말 자체에는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단순히 까탈스러운 프로불편러에 가까울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집안일 중에서 남자가 청소를 담당하고, 여자가 설거지를 담당했다고 할 때, 남자가 설거지를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고, 여자가 청소를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럴 때도, 집안일은 같이 하는 것이지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해야 할까? 이미 같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이 더 잘 풀리도록 협력한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에 가까운데 말이다.


남자가 들어와서 설거지를 해주면서, 집안일 도와주는 나는 얼마나 자상한 남자야? 라고 말한다면, 여기서의 문맥 속에는 집안일은 여자의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파고 들어서, 남자가 외벌이를 하고, 여자가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여자의 의무가 집안일이 될 수가 있다.)


언어 하나하나에는 의식을 담고 있어서 주의할 필요가 있지만, 그 언어는 '적절한 상황'에 쓰임으로써 문맥을 형성하고, 사용자의 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황을 파악 후 언어 사용에 대한 지적이 있어야 한다. 허나, 대부분의 프로불편러들은 특정 상황을 상정해놓고, 그 상황에서 언어 사용한다는 가정에 매몰되어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추가1.

필자는 뭐랄까...어느 장면에 대한 댓글을 보고 한마디 하고 싶어서 쓰게 됐다. 그 때가 아마 위에서 필자가 말한 서로 도와주는 상황에서 나는 집안일을 돕는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댓글이 정색하듯 집안일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써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보았고, 저런 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일단 변명하자면 그렇다.


지인과 위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결과 '도와주다'라는 말에는,  1번의 해석의 남의 일이 잘 되도록... 이라는 말에는, 내 책무가 아닌 타인의 책무라는 의식이 전제로 깔려 있지 않는가? 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집안일을 돕는다 라는 것은 어찌됐든, 내 책무가 아닌 남의 책무인데, 보조해주는 것이라는 의식이 들어 있는 것이다. 집안일을 어느 한 쪽의 책무로 여기는 것이 문제 아닌가 싶다. 그 어느 한 쪽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에...


뭐, 앞서 말했듯이 상황에 따라서  서로의 협약에 의해 맡은 일 외에 돕기도 하는 것이고, 또 같이 살림을 꾸려나가는데 있어서 한쪽이 전적으로 수입담당이라면 한쪽은 살림 유지 및 관리를 담당해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 도울 수도 있는 것이고.


라고 문맥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저 글 자체가 집안일을 은연중에 한쪽의 책무라고 여긴다는 점에 있어서는 필자는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집안일은 돕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입니다.' 라는 말이 맞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돕는다'는 말도 쓸 수 있다고 생각을 끝맺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