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제거되며, 가공된다. 그러나 분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와는 달리, 이러한 정보들을 가공하거나 변형하는 것은 만성적으로 시간과 인력난에 시달린다. 또한 악의적으로 정보를 생성하거나 왜곡하는 경우도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정보화 시대가 진보가 아니라 퇴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만든다.
그렇기에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정보 자체보다는 정보의 신뢰도가 우선이다.
실제로도 수 많은 국가에서 정보 자체보다는 정보의 출처와 신뢰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엄청난 자금과 인맥을 교차검증을 하는데 쏟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개개인들에겐 정보를 가려내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나 사유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오히려 정부처럼 자금이나 인맥이 동원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대 출신자가 현대 사회에 각광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최소한 how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하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벼락이 쳤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조심해야겠다 생각하지만, 공대출신자는 '어째서 벼락이 쳤지?'하고 재실험을 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한국에서의 대우와는 별개로 하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개개인들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모든 개개인들은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을 내리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개개인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량 자체도 다르고, 해당 정보량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식 수준도, 지적 능력도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단도 저마다 달라질 수 밖에 없기에 늘 코끼리 장님 만지듯이 조금씩 정보를 구성해가는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항상 지식의 공유와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이유며, 현실에 비해 이론과 지식이 늘 뒤쳐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론과 지식이 현실을 앞지르는 순간, 그것은 이미 이론이 아니라 하나의 예언과도 같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앞서 말한대로 정보가 끊임없이 쏟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극히 적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덕택에 개인이 고려해야 할 요소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말았다. 최근에 선택장애나 결정장애라는 말이 나타나듯이 압도적으로 많아진 정보가 오히려 판단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판단할 때는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게 되는데, 그러한 요소들을 고려할 수 있는 갯수는 한정되어 있다. 즉, 인간의 판단력은 그대로인데, 시야만 계속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에서 손가락 판사들이 넘쳐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인터넷에는 무의미한 싸움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동물복지에 얼마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저마다 실업자나 노숙자, 가난한 사람이 많은데 동물복지에 예산을 쓰냐며 반발하곤 한다. 결국 생산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예산배분의 우선순위 싸움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논의해서 결정이 나면 다른 이들이 반발할 것이고, 다시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 싸움으로 되돌아가는 식으로 무의미한 우선순위 싸움만 계속 일어나게 된다. 차라리 이미 결정난 것은 내버려두고, 지원할 예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이게 만들 것인지 논의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또한 피장파장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결정을 하여 문제가 된 것이 있다면, 그 문제가 관하여 논의를 하여 피드백을 세우는 것이 적절하나, 항상 다른 문제 상황을 끌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늘 따지는 것은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와 같은 쓸데없는 도덕적 판단 논의만 계속 된다. 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는 이미 사라지게 되고, 이렇게 놓쳐버린 기회를 가지고 또 다시 누가 잘못했는가로 싸운다.
예전의 어느 글에서 필자가 말했듯이, 예산 분배는 why의 물음으로 결정하고, 그 후엔 방식에 관해 how의 물음으로 전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결정들과 논의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 있는, 큼직큼직한 판단력을 해오던 사람이 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끊임없이 번복하게 되어 우선순위 싸움만 도돌이표마냥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 대한 비난도, 대가도 모두 그 사람이 짊어져야 한다.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뎌하는 법이다.)
대한민국은 정보화 시대를 가장 빠르게 맞이했으나,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문화를 가장 느리게 적응하고 있다. 앞서 말한 부정적인 2가지 예시 모두 대한민국에 해당되는 말이니, 과연 대한민국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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