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일본식 수제 돈까스를 먹으며 드는 생각

어둠속검은고양이 2015. 12. 25. 11:38

학교식당에서 일본식 수제 돈까스를 먹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다.


 수제 돈까스라고 하는데, 이 돈까스가 과연 '수제'일까, '공장'에서 찍어져 나오는 것일까.

 나는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한다. 이 일본식 수제돈까스는 차이가 있다면, 일본식 공법을 쓴다는 것이고, 다른 돈까스와는 달리 식당조리사분들께서 칼로 직접 썰어주신다는 그 차이뿐일 것이다. 만약 진정으로, 돈까스를 잘 만드는 장인이 있어서 한겹한겹 쌓아서 만들었다면, 이렇게 싼 값에, 대량으로 공급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계는 엄청나게 발전했고, 이젠 상당한 수준을 갖춘 장인의 실력은 기계가 다 따라할 수 있다. 마에스트로급의 진정한 '수제'이거나, 사람들이 '새로운' 디자인으로 '창조'한 제품들이 아닌 이상, 뭐든지 기계가 정밀하게 따라할 수 있고, 가격도 더 싸다. 물론 초기 비용이 더 들어가지만서도.

  과거에는 대부분이 사람이 직접 노동을 해서 만들었다. 가죽 옷이든, 돈까스든 간에. 기술자들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들의 제품들은 늘 공급부족이었다. 사람 이외에 모든 것들이 항상 모자랐다. 자원도, 재료도, 그것을 가공하는 기술자들도. 그렇기에 또 사람들은 그것들을 가질 수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말이다.) 공급도 부족했고, 수요도 부족했다.

  만성적인 생산적자 상태에서 산업혁명은 말 그대로 혁명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저렴한 가격에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만성적인 생산적자 상태는 점차 회복되는 듯했다. 기술 혁신으로 공급이 원활해지니 수요가 늘어났고, 공급이 원활해져 원가가 낮아지니, 경제적인 이유로 수요가 늘어났다. 보다 가난한 자에게도 기술과 자원의 혜택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그 때는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었다. 과학과 기술혁신과 산업혁명이야 말로 만성적자를 해소시키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을 만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실제로 그것들의 발달 덕분에 모두가 더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허나 '과잉생산'에 이른 지금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기계가 찍어내는 속도를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단지 생산만해도 팔리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브랜드'와 '퀄리티'로 승부해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기 공장에서 찍어낸, 그 조잡한 생산은 기술자들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으나, 이제 기술자들은 기계에 쫓기고 있다. 상위 1%안에 들어갈 정도의, 마에스트로급이 아니면, 이젠 기계에게 기술 측면에서 밀린다. 그리고 상위 1%에 들어가는 마에스트로들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기계조차 흉내낼 수 없는 그들만의 재능이기 때문이다.

  과잉생산의 문제는 바로 생계의 위협이다. 이제 어지간한 기술자들과 평범한 사람들은 기계와 경쟁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넘쳐나는 부산물 중에서 자신이 만든 것이, 혹여 자신이 관여한 제품들이 '선택'받아야 한다. 수준높은 장인 뺨치는 기계들을 제치고 말이다. 여기서 밀리는 사람들은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

  결국 과학과 산업혁명, 기술혁신의 장밋빛 유토피아는 끝나고 말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생계가 위협됨으로써 경제체계의 판도가 뒤바뀔 것이고, 결국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성적 생산적자 상태에서의 발전은 장밋빛이지만, 과잉 생산 상태에서의 발전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물론, 이 발전들이 전부 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계속해서 더 나은 삶을 주고 있으니까.) 기술발전으로 인한 과잉생산은, 과잉 공급과 수요부족을 만들어내고 있다.(인간이 돈을 못 버니 어찌 소비를 하겠는가.) 경제체제는 경제활동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 모든 인간들은 이러한 경제활동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체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공급과 수요가 순환적이어야 하는데, 이 경제체제 자체가 뒤흔들리고 있다.

  결국 과학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디스토피아로 끝날 것이다. 유토피아는 먼 과거의 환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