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엔가 매우 좋은 기사를 하나 본 적이 있다.
신문사가 오마이뉴스라 탐탁치 않았으나, 인터뷰를 진행한 교수의 문제 분석과 발언이 매우 인상 깊었으나, 필자가 게으른 탓에 이제서야 글을 쓰게 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해당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는 오랜 기간 재벌개혁을 강조해 온 인물이었다. 대개 재벌개혁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분배만을 강조한 좌파,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을 싸그리 무시하는 좌파만을 떠올리기 쉽다.
기본 이념에 의해 좌나 우가 나뉘긴 해도, 현실이 딱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경제성장, 자유경제, 대기업 옹호 - 우파 / 분배, 사회경제, 재벌반대, 대기업 반대 - 좌파 식으로 딱 고정시켜서 나누곤 한다. 기본 이념이 다른 이상 특정 분야에 대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차이가 날 수도 있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으나, 두 이념 모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면 얼마든지 현실에 따라 변할 수 있는데 말이다.
박상인 교수는 '정부 주도, 재벌중심의 박정희 개발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 교수의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정부 주도, 재벌중심의 개발체제는 쓰레기였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가 아니라, 나름대로 대한민국을 견인하는 개발체제였으나, 현대에 와서 '한계에 봉착하게 된' 구닥다리 개발체제. 이것이 정확한 평가가 아닐까?
어떤 전문가는 미국의 경제배후지 역할로서 대한민국이 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며, 박정희의 공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당시 어려웠던 시대를 살아가면서 국민을 이끌었던 대통령으로서 그의 리더십이나 경제개발 정책 추진이 아무런 공도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생각한다. 물론 그만큼 과도 엄청나게 많았고, 욕을 먹는 대통령이기도 하다. 사실 60~70대가 아닌 젊은 세대나 교수들은 그 시대를 정치인으로 살아간 것도 아니고, 그저 종이에 쓰여진 통계 수치와 자료, 기록물 등을 보고 추정할 뿐이다. 여튼 간에 박정희의 공과 과에 대해 이 글에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건 핵심이 아니니까.
핵심은 기존에 써먹었던 그 경제 개발이 현대에 와서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 아닐까?
박상인 교수는 또 말한다. 과거 정부주도,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는 재벌을 중심으로 관료, 정치인, 언론인, 교수, 법조인 등의 기득권 카르텔이 형성되면서, 변화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바라는 촛불시위의 바람을 문재인 정부가 외면하고 있으며, 이대로 가다간 경제위기가 다시 한번 올 것이라 경고한다.
그 교수는 무수한 사례를 들었다. 언론이 '대기업 때리기'라는 식으로 보도한 것이 많은데, 실상 그것은 대기업 때리기가 아니라, 재벌 총수 일가를 바로 잡는 것이며, 대기업을 살리는 것이라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언론에서 장난질을 많이 하는 것이 재벌 = 대기업을 동일시 하는 것이다. 분명히 재벌 1세들은 황무지 같은 대한민국에서 정말 수 많은 것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며, 대단한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정경유착이니 뭐니 도덕적인 것에 대한 판단은 일단 접어두고서 말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기업도 더욱 커졌고, 재벌들도 2세, 3세나 나오기 시작했다. 스스로 신화를 이룩한 재벌 1세는 이미 검증이 된 기업가지만, 재벌 2세, 3세는 과연 검증이 제대로 된 기업가일까. 그들은 자연스레 재벌 1세의 주식을 통해 대주주로 등극해서 회사를 물려 받는다. 사실 능력만 된다면 물려받아도 상관이 없다.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한 대주주겠다, 주주총회를 정식으로 거쳐서 위임하겠다 하면야. 하지만 문제는 (지금은 금지됐지만) 순환출자라든지, 이런저런 편법을 이용해서 지배체계를 공고히 하고, 이를 통해 사익편취, 황제경영, 재벌의 통제 불능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기소되거나 재판에 가거나 감옥에 갔다가 특사로 풀려난 기업가들은 얼마나 되는가. 그건 기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을 죽이는 길이다.
자본주의의 선봉장 미국마저도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을 침해하는 기업가나 회사에게는 무자비한 철퇴를 내리친다. 징벌적 배상제도, 리콜제도, 분식회계에 대한 어마어마한 과징금을 내리치는 것이 미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유야무야 넘어가버린다. 그것은 교수가 말한대로, 재벌, 정치인, 관료, 언론, 법조인 등이 하나로 뭉친 카르텔에서 비롯된다.
교수가 말하는 것 중 핵심은 바로 '재벌단위 경제블록화'다.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정부는 살아남은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 강화 정책을 펼쳤고, 그로 인해 시장의 독과점이 형성되기 시작됐다고 말한다. 시장의 독과점이 형성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낙수효과의 단절이다. 필자는 낙수효과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분명히 기업을 집중시켜서 경쟁력을 갖추게 만들어 파이를 키우면 낙수효과가 발생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낙수의 수도꼭지를 누가 쥐고 있느냐다. 하나의 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하기 시작하면, 하청업체에 단가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알짜배기들은 친인척들에게 나눠주고 별볼일 없는 사업은 외주를 주되, 경쟁시켜서 단가를 후려친다.
이러한 사례를 솔직히 대기업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대기업이 보는 눈이 많아서 조심한다. 주변에 프랜차이즈나, 중소기업들을 보라. 가족경영을 하면서 친인척들에게 하청을 주는 경우가 쎄고 쎘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필자가 기업가라고 해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가족들과 지인들을 먼저 챙기지, 남을 먼저 챙기진 않을 것이다. 물론 그 기업이 주식을 상장한 회사가 되어 주주라는 주인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따로 챙기는 것은 엄염히 불법이다. 주식을 상장한 이상 더 이상 회사의 주인은 기업가가 아니라, 주주인 것이다. 주주에게 손해를 입히면서까지 기업가들 자산을 먼저 챙긴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일들은 외부 통제권을 잃어버린 재벌경영, 족벌경영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재벌단위 경제불록화로 인해 블록 안에 들어가지 못한 기업은 힘들어졌다고 교수는 말한다.
정확하다. 재벌단위 경제블록화야 말로 인맥, 혈연, 지연과 재벌 경영의 합작품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유통채널은 소수의 대기업들이 꽉 잡고 있는 상황에서 자영업자들,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상대로 경쟁력을 갖출 수나 있을 것인가. 편의점, 마트를 가보면 안 파는 것이 없다. 하다 못해 자영업자들이 주로 하는 음식들 - 커피, 햄버거, 곱창, 짬뽕, 짜짜면, 마카롱, 붕어빵까지 안파는 품목이 없다. 문어발식으로 돈되는 상품이면 쫙쫙 퍼져 나가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식당에서 직접 먹는 것보단 음식상 한계 때문에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상품들은 대개 대기업의 자회사나 1차 하청업체들이 납품하겠지만, 그곳에 납품하지 못하는 업체들은 판로가 없어 말라 죽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이 많이 필요한 대기업들의 상품들(전자제품이나 배, 자동차와 같은 상품들)이 아닌 생활용품, 먹거리, 문화생활까지 대기업 계열사가 점령해가고 있는 마당에 과연 기업이 혁신을 할 것인가. 물론 수출을 주로 하는 대기업 분야는 끝없이 혁신을 하고, 서비스 개발에 힘쓸 것이다. 해외시장을 놓고 해외의 대기업과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유통시장을 꽉 잡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은 굳이 경쟁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냥 포인트 적립, 가격 할인 등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이다. 아직까지는 경쟁을 하고는 있다지만 항상 마지노선은 정해놓는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가격을 슬그머니 올리고, 따라서 슬그머니 올리는 경우는 많지만, 결코 가격을 먼저 내리는 경우는 없다. 출혈 경쟁을 하게 될 경우에나 가끔씩 내리지.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에선 혁신이 일어나기 힘들고, 또한 내수시장의 한계로 인해 이익은 침체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는 대기업의 수도꼭지 조이기로 다가온다. 하청을 쥐어짜는 식으로 이익을 늘리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말할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 최저가를 낙찰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최저가를 제시하지 못할 정도의 회사들은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그것이 경쟁 아니냐고 할 것이다.
물론 맞다. 그것이 경쟁이다. 최저가로 납품할 정도의 기술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쟁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그러한 상황들이 거듭될수록 우리 자신의 목을 죄어 올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왜 최저임금을 규제하는가. 막말로 최저임금 폐지 시켜버리고, 넘쳐나는 노동자도 많은데, 싼 값에 굴리면 상품가격도 떨어지고 좋은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임금이 싸진다고 물건값이 싸질 이유는 없으며, 오히려 소비가 침체되어 재고가 쌓이면 회사는 문을 닫게 된다. 노동자와 소비자는 한 몸이라서 화폐는 돌고 돌 때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전에 말했듯이, 누구 하나 잘못한 것 없이 열심히 살았고, 경쟁했을 뿐인데 모두의 파멸로 이끌어간다.
결국 처음에 이익을 일정하게 늘어나는 상황(경제성장률이 높은 상황-발전상황)에서는 대기업과 대기업의 하청업체들, 다른 중소업체들이 함께 나눠먹겠지만, 이익이 서서히 침체되는 상황에서는 대기업과 대기업의 하청업체들쪽으로 부가 집중될 것이고, 그마저도 후엔 대기업으로만 부가 집중될 것이다. 수도꼭지의 물이 줄어들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가장 물이 필요한 곳 - 가장 메마른 곳부터다. 수도꼭지를 움켜쥔 사람은 최후의 최후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과거 외환위기때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상인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부의 양극화' 처방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단순히 최저임금을 올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재벌블록화 체제를 끊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하는 규제들이 반푼이 규제에 지나지 않는다며, 실상 문재인 정부도 만만 개혁을 외치지 실상 재벌개혁을 할 의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면, 대통령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경제발전을 자랑스레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박정희 개발체제 때의 성공공식이 이제 작동하지 않으니 이를 바꾸자는 것인데, 과거의 성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박상인 교수의 말이 맴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문제 원인 분석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처방이 별로여서 아쉽다고 생각하는 시민으로서 상당히 좋은 기사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제 문제 처방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입장차가 있을 것이고, 직접적으로 처방을 내리기엔 필자의 얕은 식견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기사를 보고 겉핥기 식으로 글이나 끄적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는 내리막길 뿐이라 믿는 비관론자로서 나의 비관이 틀렸으면 좋겠지만, 어쩌겠는가. 전문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겨두고 난 내 삶이나 챙기는 수 밖에.
참고 인용
- 문재인 정부 부 말, 경제위기 온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46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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