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샌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다니는 게 시릴 무렵이었다. 산허리를 감싸 안으며 내려오던 어둠은 생각보다 빠르게 내려왔다.
오후라 하기엔 빛이 조금 모자랐고.
밤이라 하기엔 어둠이 미처 내려앉지 않은.
낙하하는 밤과 낮게 깔린 빛이 사라지는 저녁 무렵.
나는 하릴없이 걷고 있었다.
겨울 밤은 강풍 속을 헤쳐가는 늑대처럼 빠르게 나를 따라잡더니 이윽고 내 주머니 속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겨울 밤을 언제부터 싫어하게 됐을까.
나에게 있어 차가운 겨울밤은 낭만의 계절이었다.
좁아터진 방바닥에 앉아 겨울 영화를 보면서 같이 먹던 음식도. 같이 산책을 하며 보던 조명들과 귓가에 들려오던 캐럴송도. 밤바람을 맞으며 후후 불어가며 마시던 오뎅 국물과 허름한 술집에서 먹던 술도. 그렇게 난 짧은 겨울밤의 낭만을 너와 즐기곤 했었다.
하루 중에 너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이 짧은 순간뿐.
너와 내가 만났던 시간은 이 찰나의 순간만큼이나 무척 짧았으니까. 네 생각이 태양과 함께 타버리며 떨어질 때면 어둠이 기다렸다는듯이 늑대처럼 몰려오고, 나는 그 고요한 무리에 잠겨 다음 날 시간을 양을 세듯이 꼬박 세며 잠들곤 했다.
낭만이 사라져버린 겨울밤은 생각보다 시렸고, 너의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어둠에 잡아 먹혔다.
너를 추억하기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짧다.
너와의 만남은 너무나도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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